전일광장>분식집과 미슐랭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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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광장>분식집과 미슐랭스타
천세진(문화비평가, 시인)
  • 입력 : 2020. 01.15(수) 13:19
  • 편집에디터
지난해 7월 문화비평서쯤에 해당하는 책을 한 권 냈다. 기획에서부터 자료 준비, 원고 집필, 출판까지 꼬박 5년이 걸렸다. 물론 잘 팔리지 않았다. 책이 출간된 후 몇 달이 지났을 즈음 누군가 필자에게 물었다. SNS 세계에서 뜨거운 명성을 얻고 있는 '박막례' 할머니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데, 당신의 책은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느냐고. 얼굴이 뜨거워지고, 말문이 막혔다.

팔려야만 존재를 인정받는 세상에서, 팔리지 않는 책이란 가치를 따지기 전에 책으로서 생명력을 갖고 있는지의 여부부터 물어야한다.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책의 가치는 판매부수에 있는 것일까?" 우리가 사는 세상이 다양한 가치를 품고 있다고 믿는 분들은 책의 가치는 판매부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팔리는 것으로 가치를 매기는 것이 편할 수도 있지 않을까? 팔리는 책들은 적어도 대중의 삶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쳤을 테니까.

궁금해졌다. 가치를 정하는 기준은 누가 어떻게 정하는 것일까? 그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잠시 음식 업계 얘기를 좀 해야겠다. 프랑스의 타이어 회사인 미슐랭이 1900년부터 고객들에게 여행 안내책자를 나눠주었다. 안내책자는 여행과 식당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는데, 프랑스 내무부 산하 지도국 직원이었던 앙드레 미슐랭의 이름을 따서 '미슐랭 가이드'로 불리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미슐랭 가이드'는 음식점에 매기는 '미슐랭 스타'를 통해서 음식점 업계에서 막강한 권위를 가진 기준으로 등장했다. 미슐랭 스타는 이제 음식비평가들의 기호를 넘어서서 대중적으로 공인되는 가치를 의미하게 되었다. 미슐랭 스타는 프랑스 하늘에만 뜬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 음식점들의 권위와 가치를 결정하던 미슐랭 가이드는 이미 오래전 프랑스를 벗어나 주요 선진국들의 식당들을 장악했다. 그리고 이제 한국도 그 우산 속으로 들어갔다. 한국에도 미슐랭 평가 시스템이 도입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도 국제적 기준을 갖춘 국가가 되었다고 격하게 반겨야 하는 것일까?

어떤 음식들은 대중적 기호나 인기와 무관하게 문화적 의미 때문에 가치를 지니는 것들이 있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역한 냄새의 음식들, 이를 테면 한국의 홍어, 아이슬란드의 하칼, 하우카르들, 스웨덴의 수르스트뢰밍, 그린란드의 키비악 같은 음식들을 취급하는 요리점에 '미슐랭 스타'를 부여하기는 꽤나 어려울 것이다. 우선 그 음식들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그처럼 호불호가 갈리는 전통 음식과 대중적 평가 기준은 그 자체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쌍이다.

대중적 평가 기준이 정말 대중적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어야 한다. 라면과 떡볶이를 파는 분식집에 '미술랭 스타'를 부여했다는 얘기를 아직 듣지 못했다. 수요의 대중성을 따지자면 라면과 떡볶이만큼 많이 팔리는 것도 드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식집에 미슐랭 스타를 부여한다면 오히려 대중이 몹시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다시 책의 세계로 돌아가 보자. 책의 세계는 음식의 세계보다 난해하다. 음식은 평하기 쉽다. 어떤 재료들이 들어갔는지 눈에 확연히 보인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들어간 재료만으로도 어느 수준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다. 음식에 투입된 재료가 다르기 때문에, 음식마다 가격이 다른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책도 돈으로 환산되는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책은 읽어보기 전에는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알 수 없다. 재료를 확인한 후에도 재료들의 가격에 대한 보편적 동의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책의 가격은 내용적 재료가 아니라, 페이지 분량에 따라 매겨진다. 음식으로 치면 무게를 재서 가격을 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대중은 책의 가격에 대해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유튜브 스타들의 책은 상업적 가치를 지닌다. 예술적, 미학적 가치인지는 따로 따져보아야 한다. 상업적 가치가 뭐 어떠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 식이라면, 미술시장에는 뽀로로와 둘리가 앞자리에 등장해야 한다. 독서동아리가 7천개가 넘고, 책을 소개하는 TV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다. 바람직하지만, 누군가의 평가에 따라 양적 성장의 시장이 아니라, 다양한 가치가 자생적으로 살아남는 질적 성장의 시장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