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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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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이승현 강진 백운동 원림 자이원 동주

게재 2019-12-11 14:51:10

잎이 다 떨어지고 나니 보이지 않던 나뭇가지들이 고스란히 제 모습을 보여준다. 주렁주렁 열린 감도 다 떨어지고 그 자리엔 새들이 감처럼 매달려 있다. 송년회를 한다고 불러대는 지인들의 성화에 다녀온 도시에서는 택시를 잡으려는 취객들로 법석대고 수십여 개의 전구를 외투처럼 입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추위에 떨고 있다. 한해의 끝자락 풍경이다.

잠시 올해를 돌아보니 7인조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이 세상을 춤추게 했고 영화 기생충은 한국영화의 위상을 한껏 높였다. '트로트 신데렐라' 송가인 덕택에 한국의 트로트계는 '송가인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는 과장된 찬사를 받았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주는 위로와 무명가수의 성공에 애잔한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그런가 하면 조국의 수렁에서 우물쭈물하다 정치는 마비되고 얼토당토 않는 주장을 강요하는 사람들의 깃발은 무기처럼 나부낀다. 패스트 트랙 정치판에서는 한해가 다 되도록 정쟁의 트랙에서 달리기를 멈출 줄 모르고 야당 원내대표는 싸움이 특기라며 대놓고 자랑질 한다. 협상과 타협이라는 제 본분도 모르는 인사다. 대책없는 싸움꾼을 정치인으로 뽑아 놓으니 온 나라를 분탕질하고 있는데 우물쭈물하며 아직도 국민들의 분노를 모르고 있는 듯하다. 미국과 북한은 서로를 치켜세우며 평화의 성화를 봉송하는 듯하더니 다시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 대고 있다. 장사꾼 트럼프는 자릿세를 내라고 윽박지르고 있고 일본여행은 언제나 눈치 보지 않고 갈 수 있을지 기약조차 없다. 모두가 힘들고 낙담이 큰 한 해였다.

나랏일이야 기대할 것도 없으니 그렇다 치고 후회를 늘상 안고 사는 개인의 삶은 어땠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바위는 앉은 채 그 자리에서, 거북이는 기어서, 달팽이는 굴러서 한해를 보냈다'고 하는데 나는 어떻게 보냈는가. 사람들은 빠르고 정신없이 흘러가는 삶속에서 자신을 돌아볼 시간조차 갖지 못한다. 여럿이 마시고 흥청거리는 송년보다 자기존재와 마주하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게 필요한 이유다. 겨울 문턱에서 주위를 돌아보니 온갖 꽃과 향기, 벌레들과 색채가 사라지고 제 몸뚱이조차 시들어 감춰버린 겨울의 생명들이 얼마나 지혜롭고 경이로운 일인지를 느끼게 된다. 돈이 없어서, 능력이 모자라서, 시간이 없어서, 도움을 받지 못해서, 운이 없어서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그래서 원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지 안타깝다.

아일랜드 극작가 버나드 쇼는 95세에 임종하면서 묘지명에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줄 알았지' 라고 새겼다. 나이 먹고 늙기 전에 빨리 삶의 목적과 방식을 수정해야 한다. 마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세상과 주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삶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사소한 것에 관심을 둬야 한다. 겨울을 살아내기 위해 제 이파리를 아낌없이 떨궈 버린 나목들에서, 어쩌다 마주하는 미세먼지 없는 저 청정한 하늘과 바람, 모퉁이 찻집에서 빈둥거리는 혼자만의 시간, 살 좀 빼라는 마누라의 잔소리, 허름한 선술집에서 친구와 기울이는 술 한 잔, 작은 식물들의 특별한 향기 같은 것들 말이다.

이렇듯 사소한 일에서 기쁨을 찾아내야만 원하는 삶을 엮어갈 수 있다. 삶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조금 더 절제하는 습관도 필요하다. 더 많이, 더 크게, 더 빠르게가 삶의 목표가 된다면 죽기 살기로 일한다 해도 이루기 어렵다. 여행도 군사작전처럼 하고 여가를 즐기는 것조차 프로젝트처럼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지는 않는가. 경험해 보니 없는 행복을 만들어 내기 보다 이미 주변에 와있는 것을 발견해서 누리는 것이 더 쉬웠다. 새들은 부러진 나뭇가지로 집을 짓는다. 나무는 이런 방식으로 새들을 사랑하고 베푼다. 나에게도 이런 배려심과 기쁨이 없을리 없다. 한해의 끝자락은 내가 잘살고 있는지 진정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기 좋은 때다. 우물쭈물 하다 한해를 허송했다고 생각하면 다시 찾아올 새해를 계획하면 된다. '마음 속에 푸른가지를 품고 있으면 새가 날아와 그 곳에 앉는다'는 중국 속담처럼 이번 송년은 그런 마음으로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