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 문화담론> 당신은 '정준영 단톡방' 사건과 무관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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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대 문화담론> 당신은 '정준영 단톡방' 사건과 무관하십니까
김꽃비 ㈜쥬스컴퍼니 매니저
  • 입력 : 2019. 12.05(목) 15:53
  • 편집에디터
화장실에 들어가면 수상하게 뚫려있는 구멍이 없는지 가장 먼저 확인한다. 집에서도 노트북 카메라 부분은 꼭 가려두고 개방형 와이파이는 웬만하면 쓰지 않는다. 어디든 숙소에 가면 쓸데없이 놓여있는 물건이 있는지 꼭 들춰보고 '숨어있는 몰래카메라 찾는 방법'도 가끔 검색해본다. 몰래카메라 포비아에 시달리는 대한민국의 여성, 바로 필자의 평소 모습이다. 유난을 떠는 것처럼 보인다고? 주변 여성들에게 물어보자. 이제는 여성들에게는 일상이 된 행동들이다.

클럽 버닝썬 사태와 함께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정준영 단톡방(단체카톡방) 사건'의 판결이 얼마전 내려졌다. 가수 정준영은 불법 촬영 유포와 집단 성폭행 혐의로 징역 6년을, 단톡방의 멤버이자 앞서 언급한 범죄들에 함께 가담한 혐의를 받는 FT아일랜드 출신 최종훈은 징역 5년을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정준영과 최종훈이 여성을 단순한 성적 쾌락의 도구로 여겼으며 이들의 범죄행위가 습관적이었음을 지적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정준영은 2015년 12월~2016년 6월까지 아홉 차례에 걸쳐 여성들의 신체 일부나 성관계 모습을 불법 촬영했고, 이를 자신의 지인들에게 불법으로 유포했다. 자신의 집을 비롯해 유흥주점, 비행기, 호텔 등 범행 장소도 다양했으며 많게는 하루 3번이나 영상을 촬영하고 유포했다고 하니 그들이 얼마나 범죄의식 없이 이러한 일들을 행했는지 짐작케 한다.

불법 촬영은 물론 단톡방을 통한 불법 공유도 큰 문제다. 사실 단톡방에서 불법 공유들이 문제 된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이제야 당연한 법적 처벌 대상으로 공론화되는 것이 오히려 놀랍다. 몇 년 전 유명대학 한 학과 남학생들이 여학생 외모 품평회를 했던 단톡방이 공개되면서 파문이 일었다. 얼굴은 어떻고 몸매는 어떻고, 사귀기는 아쉽고, 자보곤 싶고. 이후 비슷한 카톡방 성희롱 사건들이 수도 없이 수면위로 드러났다. 외모 품평회는 빙산의 일각이다. 특정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해 희롱하거나 모욕을 주는 것 외에도, 불법 촬영한 사진과 영상들이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 많은 사건 중 가해자가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제대로 들은 사건은 없다. 촬영물들은 카톡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카톡 이용자로 10여년을 살아온 필자 역시 이런 불법촬영물들을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고는 말 못하겠다. 많은 사람들이 익명성에 숨어 자신도 모르게, 혹은 알면서도 범죄에 가담했다.

불편하겠지만 묻고 싶다. "과연 당신은 정준영 단톡방 사건에 무관하십니까" 정준영 단톡방 사건에서 그들의 추악한 범죄만큼이나 치가 떨렸던 것은 이 익명성에 숨어 2차 가해를 가하던 사람들이다. 사건이 뉴스에 오르내리자 카톡방에서 정준영 동영상을 볼 수 있는 링크와 함께 동영상에 등장하는 여성을 지목하는 수많은 루머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동영상 출처나 사실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살을 찢는 고통이 대중들은 그저 재미로 스낵처럼 소비했다. 실시간 검색어에는 하루종일 '정준영 동영상'이 상위 랭크됐다. "진짜 안타깝지만 '찍혔거나' '찍었으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앞서 말한 몰래카메라에 대한 필자의 유난이 근거없음이 아님을 알았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은 우리 사회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준영 사건을 대하는 언론의 보도태도 역시 초반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해 피해자를 부각시키는 등 기존의 보도행태를 답습하는듯 했으나 2차 가해에 대한 비판이 제기 되면서 외부의 비판을 수용하며 자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온라인에서는 "경고장-우리는 피해자가 궁금하지 않습니다. 피해자를 추측하는 모든 사진·동영상 유포=2차 가해, 지금 당신이 멈춰야 합니다" 라는 문구를 담은 이미지를 공유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었다. 단톡방에서 정준영 동영상과 관련된 루머들을 재미로 공유하는 친구에게 "이런 건 궁금해 하지도, 공유하지도 말자"고 말하는 친구들이 생겼다. 그 동안의 과오를 서로 반성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