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욱의 도자이야기>소중하고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전승하기 위한 도자의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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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욱의 도자이야기
한성욱의 도자이야기>소중하고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전승하기 위한 도자의 관리
  • 입력 : 2019. 10.15(화) 18:12
  • 편집에디터

01-17세기에 戴進(대진, 1388∼1462)의 册頁所見舞鑽圖(책혈소견무찬도)를 모방한 그림(독일 개인 소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전승하기 위한 도자의 관리

도자기는 고온에 의해 새롭게 탄생된 쓰임새 좋고 아름다운 그릇이지만 단단한 유리질의 경도로 인해 쉽게 파손되는 치명적인 단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공예품의 가장 큰 목적 가운데 하나인 쓰임의 과정에서 세심하고 소중하게 다루어야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이러한 단점 때문에 도자기는 한 때 서구에서 밀려온 플라스틱 신소재에 밀려 우리의 식탁을 떠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건강과 환경 등의 이로운 조건을 갖추고 있어 다시 인기를 얻고 있으며, 예전 도자기와는 다른 더욱 강하고 단단하며 새로운 미감을 자랑하고 있다. 따라서 미래의 훌륭한 문화유산을 위해 현재의 명품 도자기를 소중하게 사용할 필요도 있으나, 이에 앞서 우리 조상들이 남겨주신 세계의 자랑거리인 청자와 백자 등의 전통 도자기를 더욱 잘 보관하고 간직할 필요성이 있다. 조사와 연구, 운반, 전시 등을 위해 도자기를 옮기거나 다룰 때 신중하여야 하며, 파손되고 훼손된 도자기는 더 이상 훼손을 방지하고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수리를 실시하여야 한다.

고려 청자를 비롯한 전통 도자기는 조상 대대로 내려온 전래품도 있으나 대부분 오랜 동안 땅 속에 있다 출토되어 새로운 환경에 취약하므로 보관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 당시에 아무리 아름답게 만든 도자기라 하더라도 보존 상태에 따라 아름다움에 큰 차이가 생길 수 있다. 때문에 안전한 관리와 보관뿐만 명품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중요한 것이 보존 환경이다. 한편, 도자기는 화학적 변화를 거쳐 반영구적인 재질이지만 충격을 비롯하여 온도와 습도의 급격한 변화, 산성에 의한 유약의 변화 등 여러 조건에 취약한 측면도 있으므로 다른 유물들과 같이 안정적인 환경을 조성하여야 한다. 온도와 습도가 급격하게 변화하면 유약 층이 떨어져 바탕 흙이 노출되거나 보존 수리를 실시한 부분의 재료들이 손상될 수 있다. 또한, 자외선의 영향으로 수리한 부분이 변색되거나 접착력이 약화되어 새로운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

도자기의 보관은 가능하면 재질이 가볍고 단단한 오동나무 상자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보관 장소에 여러 점을 함께 놓을 경우 넘어졌을 때 충격이 없도록 충분한 간격을 유지하여야 한다. 가급적 작은 유물을 앞에 놓고 큰 유물을 뒤쪽에 배치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또한, 밀폐된 공간보다 보관 상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유리장으로 만드는 것이 관리에 효율적이다. 조그만 공간에 단순하게 보관만 한다면 빈 공간이 없도록 완충재를 충분하게 채워 넣는 것도 고려하였으면 한다. 그리고 미세한 진동도 장기간 계속되면 균열을 발생시키고 유물이 파손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최대한 진동을 흡수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야 하겠다.

전시와 정기적인 점검, 학술적 조사 등을 위해 도자기를 옮기거나 다루어야 할 때는 매우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반드시 주변이 청결하고 정리정돈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유물이 놓이거나 다루는 장소는 안정적 자세로 포장을 풀거나 유물을 다루어야 하므로 높은 곳은 금물이며, 바닥에 완충 시설이 깔려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사전에 유물의 취약한 부분과 수리 여부 등을 확인한 다음 다루어야 한다. 그리고 유물을 다루는 모든 과정에 대해 사진으로 찍고 여러 기록을 남겨 논다면 유물의 안전과 효율적 관리를 위해 매우 좋다.

유물을 다룰 때는 복장이 간결 단정하고 반지와 시계, 귀걸이 등 장신구는 반드시 신체에서 분리되어야 하며, 신발도 끈과 굽이 없는 것을 신어야 한다. 그릇의 크기와 관계없이 한 손으로 입술이나 목을 잡고 다른 손으로 그릇의 바닥을 잡거나 받쳐 들어야 한다. 뚜껑이 있는 그릇은 뚜껑을 먼저 옮기며, 주전자와 손잡이가 있는 잔 등 돌출된 부분이 있는 그릇은 돌출 부분을 잡지 않으며 몸통과 바닥을 받쳐 다루어야 한다.

도자기를 운반하고자 할 때는 그릇이 움직이지 않도록 빈 공간에 중성 한지(韓紙) 등의 완충재를 채운 다음 상자에 담아야 안전하다. 또한, 한손으로 상자의 바닥을 받치고 한손은 상자 위 끈을 잡고 운반한다. 바퀴가 달린 이동 수단을 이용하여 운반할 때는 완충재를 충분하게 채우거나 움직이지 않도록 단단하게 묶은 다음 운반하여야 한다. 차량을 이용하여 장거리를 운반하다면 무진동 차량을 이용하여야 한다. 그리고 도자기는 충격에 매우 약해 파손될 가능성이 높은 유물이므로 가능하다면 전문가에게 취약 부분이 없는지 자문을 받은 다음 포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도자기를 전시 감상한다면 넣고 빼는데 이상적인 높이의 전시 공간을 선택하여야 한다. 어깨 이상의 높이는 절대 금물이며, 역시 충분한 간격을 유지하여야 하겠다. 또한, 병과 호, 항 등의 키가 높은 그릇은 충격에 쉽게 넘어지지 않도록 내부에 깨끗하게 세척된 정갈하고 미세한 모래 등을 넣어 안정감을 갖추도록 한다. 유물의 형태와 무게 등을 고려하여 안전대를 놓거나 낚시줄 등을 이용하여 유물이 움직이는 것을 방지할 필요성이 있다. 우리 나라도 이제 지진에서 안전할 수 있는 곳이 아니므로 작은 충격에도 쉽게 파손되는 도자기를 안전하게 보관하고 감상하는데 많은 주의가 요구되고 실정이기 때문이다.

도자기는 소중하게 간직하고 사용한다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있지만 충격에 매우 약한 단점이 있다. 충격에 의해 파손된 그릇은 쓰임을 목적으로 하는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대부분 버려진다. 그러나 역사와 추억이 깃든 소중한 도자기와 고가의 도자기는 간단한 파손 때문에 버릴 수는 없다. 또한, 물자가 귀할 때는 깨진 그릇을 수리하여 계속 사용하였다. 근래에도 수리하여 계속 사용하는 옹기를 우리 주변의 장독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현대는 그릇이 흔하고 생활이 윤택해 졌기 때문에 수리된 그릇을 찾기 쉽지 않다.

그릇을 수리하여 사용하는 것은 도기가 처음 등장한 신석기시대부터 확인되고 있다. 서울 암사동 유적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 도기를 살펴보면 파손된 부분을 역청 등으로 접합한 다음 양쪽에 구멍을 뚫어 나무껍질이나 가죽 등으로 묶어 수리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도자기의 수리가 도기가 탄생하면서 바로 시작되었음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 시기에는 그릇이 귀해 재사용을 위한 목적으로 수리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세종실록에 "하사한 자기를 쓰면 곧 깨어져 일찍이 금과 은으로 입술을 장식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중국의 황제에게 받은 그릇을 수리한 것으로 사용하기 위한 그릇의 원래 기능보다 황제에게 받은 그릇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서유구(1764, 영조 40∼1845, 헌종 11)의 '임원경제지'등 여러 문헌에 깨진 도자기를 수리하는 방법 등이 남아 있으나 실제 수리된 그릇을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는 선인들께서 파손된 그릇을 수리해서 다시 쓰는 것을 긍정적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현재도 파손된 그릇은 대부분 버리고 있어 깨지거나 금이 간 도자기를 쉽게 찾아 볼 수 없다. 식당에서 깨지거나 금이 간 그릇을 내놓으면 손님은 불쾌한 언사나 표정을 짓는다. 이는 기본적으로 파손된 그릇을 터부시하는 감정이 우리 심성에 남아 있는 결과이다.

도자기를 수리하는 것은 그릇의 생산 목적인 재사용을 위한 기능을 복원하는 것과 감상(전시)을 위한 수단으로 실시된다. 감상을 위한 수리는 이를 통해 역사와 추억을 복원하고 또한 미술품(유물)으로서의 전시 기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그릇의 재사용과 개인적인 추억을 위해 수리하였다면 현재는 미술품 복원을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중국과 일본에는 수리하여 대대로 사용한 그릇들이 많은데, 거부감이 없으며 오히려 세월의 멋과 유구한 역사를 증명하는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도자기 수리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확인되는 방법은 깨지거나 금이 간 부분을 접착제를 이용하여 수복하는 것과 그릇에 생긴 균열 좌우에 구멍을 뚫고 고리나 끈으로 고정한 꺾쇠기법이 있다. 이외에 그릇을 다시 번조하여 수리하거나 다른 그릇의 파편을 파손된 부분에 맞추어 접착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접착제를 이용한 방법은 우리 조상들도 많이 활용하여 여러 문헌에 그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대체로 미세하게 걸러낸 삶지 않은 밀가루와 석회를 섞은 가루를 곱게 갈아 물로 반죽하여 접착하였다. 이외에도 찹쌀 죽과 계란 노른자를 아교와 섞거나 달걀 흰자위와 백반가루를 섞어 사용하였다. 또한, 생옻이나 역청을 녹여 접착하거나 쇳가루와 초를 섞어 수리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접착제를 사용하면 꺾쇠수리처럼 그릇에 구멍을 뚫지 않아도 되고 거친 흔적이 남지 않는 장점이 있다.

접착제를 이용한 수리 방법은 일본에 그 사례가 많이 남아 있는데, 아교나 칠, 석고 등으로 수리한 다음 그 부분에 금이나 은을 칠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은 16세기부터 등장하는데 금이나 은빛을 강조한 것은 수리한 도자기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소유자의 권위와 위엄을 드러내기 위한 위세품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도 금분과 은분으로 수리한 청자 등이 많이 남아 있는데, 이는 대부분 일제강점기 수리된 것으로 그릇을 예술적 감상을 위한 목적으로 소유하여 수리 자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생각한 결과이다.

꺾쇠를 이용한 수리는 다양한 기록과 함께 중국에 풍부한 자료가 남아 있다. 이 방식은 그릇의 떨어진 부분을 메우거나 그릇에 생긴 균열의 좌우에 구멍을 뚫고 고리나 끈으로 연결 고정하여 수리하는 방법이다. 특히, 일본 동경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중국제 청자완은 수리에 사용된 꺾쇠들이 마치 메뚜기가 뛰는 것처럼 보인다는 의미에서 마황반(馬蝗絆)이라는 이름을 얻고 있다.

고려 청자를 비롯한 조상들이 물려준 유물은 비록 개인이 소유하였다 할지라도 영원히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없는 우리 공동의 문화유산이며 소장자는 이를 잠시 보관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하겠다. 전통 도자를 대할 때는 크기와 가치 등을 떠나 언제나 경건하고 신중한 자세로 임하여야 한다. 반드시 두 손을 사용하여 잡아야 하며 침착함을 잊지 않아야 한다. 전통 도자의 감상은 이를 만든 장인과 사용하였던 선조들과의 역사적 묵언의 대화이다. 또한, 명품 도자가 갖추고 있는 만든 이와 지닌 이의 예술성과 역사성, 학술성 등을 잊지 않고 살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유물의 객관화된 아름다움과 함께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보는 것도 유물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유물을 부분에 따라 세분화하여 그 특징을 파악하고 앞뿐만 아니라 옆면과 뒷면도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능력을 갖추려면 많은 유물을 반복적으로 접하고 느끼는 것이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도자 이외의 미술품을 공부하고 역사와 문화를 함께 이해하여야 한다.

이와 같이 유물을 소중하게 보관하고 관리하며 수리하면서 조사 연구하는 것은 선조들이 물려주신 아름다운 도자기와 우리 시대에 만든 명품 도자기를 보고 느낄 수 있는 정신적 심리적 기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의 도자와 현대의 명품에 대해 우열을 나누는 것보다 이들을 미래의 문화유산으로 후손들에게 물려줄 의무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즉, 전통 도자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내가 사용하고 있는 도자기를 명품으로 만들어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는 현재 침체된 전통 도자 시장을 활성화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자의 생활화와 함께 우리 집에 후손들을 위한 명품 도자를 하나쯤 장만할 것을 권하여 본다. 그리고 좋은 도자기를 소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공공재로서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소양도 반드시 필요하다.

02-오리모양잔(진동 방지, 국립광주박물관)

03-청자음각연화문병(진동 방지, 중국 余姚博物館)

04-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서울 암사동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05-분장청자박지철화문병(금분 수리, 국립중앙박물관)

06-청자화형완(꺽쇠 수리, 동경국립박물관)

07-옹기(꺽쇠 수리, 고려청자박물관)

08-청자상감국화문'계유'명접시(수리 전, 고려청자박물관)

08-청자상감국화문'계유'명접시(수리 후, 고려청자박물관)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