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이 된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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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횃불이 된 시민들
  • 입력 : 2019. 10.15(화) 19:25
  • 이한나 기자
이한나 기자.
지난 14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돌연 장관직을 사퇴했다. 장관에 임명되고 35일만이다.

조 전 장관이 재임한 기간에 한 일은 지난 8일과 14일 두 차례 검찰개혁안을 발표한 것이었다.

반면 한 달이 넘도록 조 전 장관과 그 일가에 관한 여러 의혹과 검찰의 권력 남용 문제는 우리의 속을 몇 번이고 뒤집었다. 그야말로 이 기간 대한민국은 '조국'으로 뒤덮였다.

특히 검찰이 조 전 장관의 자택을 11시간 압수수색하는 도중 배달 음식을 시켜먹고 조 전 장관의 딸의 중학생 시절 일기장까지 가져가려했다는 것 등이 알려지면서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100만명 이상의 대규모 서초촛불집회가 촉발됐다.

이후 그 규모는 서초 사거리 일대를 모두 장악할만큼 점점 더 커졌고, 끝내 지난 12일 검찰에게 최후통첩을 보내며 잠정 중단을 선언했다.

열성적으로 검찰개혁을 외쳤던 이들은 사퇴 소식에 시민들은 '왜 하필 이 시점에?', '조금만 더 버텨줄 수는 없었을까' 등의 물음을 던지는 등 실의에 빠진 모습을 보였다. 허나 그것도 잠시였다.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조 전 장관의 장관직 사퇴 발표 다음날인 15일 오전까지 잠 못드는 밤을 보냈던 시민들의 글이 계속 올라왔다. 분노와 슬픔, 안타까움이 짙게 묻어 있었지만 부정적인 감정에만 머무르지 않은 모습이다.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자는 메시지가 많았다.

한 네티즌은 "잠 못드는 분들 많으시죠? 어차피 영웅 한 명 믿고 할 싸움 아니었잖아요?"라며 검찰개혁에서 시민의 역할을 강조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조국 장관 그리고 가족들이 희생하고 버티며 만들어 온 검찰개혁안 바통은 이제 고스란히 국회의 몫으로 돌아갔다"며 "어떤 권력이 들어와도 되돌릴 수 없는 개혁, 반드시 우리 모두가 완성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 외 "검찰개혁을 우리 때 해놔야 우리 애들이 살기 편한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 것 같다", "다시 허리띠 동여매고 신발 끈 고쳐 신고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희망을 가지겠다", "슬픔은 오늘 하루만.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겠다", "가슴은 먹먹하지만 나아갑시다. 계속 나아갑시다.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입니다" 등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이것은 솔직히 이례적인 일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아직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무죄를 부르짖는 사람들도 있다. 허나 서초집회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은 인정하고 다시 출발한다. 그것은 어쩌면 패배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른다.

최대 규모의 인력을 투입해도 지난 한달이 넘도록 범죄혐의를 뚜렷하게 밝히지 못하는 검찰을 보면서, 검찰의 이런 행태를 의심하기는커녕 검찰발 기사 쓰기로 단독행세를 경쟁하는 언론을 보면서 이들은 더욱 더 개혁의 필요성을 각인했을 것이다.

시민이 주체로 나서지 않을 때 어떤 개혁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조 전 장관이 자리에 없더라도 털고 일어날 수 있었던 듯 하다. 어쩌면 조 전 장관이 말한 불쏘시개는 이미 시민들 마음 속에 파고들었는지도 모른다.

필자에게도 누가 물었다. "조국이 그만 뒀다. 이제 무엇이 남았나?" 그래서 답했다.

"잘 모르겠지만… 아직 본격적인 싸움은 시작하지 않은 듯 하다. 다수의 대한민국 시민들은…"

이한나 기자 hannah.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