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거리 그 벤치에서 – 대륙 횡단을 위해 다시 만난 하바롭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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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국의 유라시아 탐험기
그 거리 그 벤치에서 – 대륙 횡단을 위해 다시 만난 하바롭스크
  • 입력 : 2018. 11.22(목) 13:07
  • 편집에디터

하바롭스크 지방으로 들어서면서 "마쉬끼"라 불리는 날벌레가 등장한다. 어떤 이유로 모터바이크가 멈출 때면 어디선가 이 벌레들이 몰려든다. 눈동자를 향한 이 벌레들의 공격은 집요하다.

오전 일곱 시에 눈을 떴다. 머리 맡 위에 놓여 있던 성경책을 집어 들고 의자에 앉았다. 유라시아 대륙횡단을 위해 내가 가져온 말씀 구절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읽고 기도함으로써 여행자로서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달려도 달려도 끝이 없는 대륙의 길을 감당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좋은 성능의 이동 수단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이다. 길을 따라 숨 쉴 틈도 없이 빽빽하게 둘러싸고 이어지는 숲이나 휭하니 시선 끝을 넘어 무한대로 펼쳐져 버린 평원을 마주대하며 달릴 때, 나는 길 위에 갇혀 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두려움이나 불안은 본능적으로 머리를 돌려 지금까지 달려왔던 익숙한 곳을 향해 되돌아가도록 유혹한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도 결국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나에게서 낯선 길을 홀로 걷는다는 것은 매일 매일이 한계와의 만남임을 의미한다-생략가능) 흔들리는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게 만드는 힘은 자신을 잘 바라볼 수 있게 비추어 주는 거울 같은 역할을 하는 친구이다. 어느 순간부터 성경책은 홀로 다니는 나와 함께하는 친구가 되어 있다.

다음으로 나는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된 자료들이 클라우드(가상의 저장 공간)에 백업이 되었는지를 확인하고 분실을 대비해서 구간별로 기록된 자료들을 페이스 북에 올려놓았다.

호주에서 온 바이크 여행자 패트릭이 하루 전에 보내온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나는 그가 '호르' 강변에서 며칠째 야영하고 있다는 것을 '달네레첸스크'를 출발하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시베리아의 저지대에는 겨울에 쌓인 눈이 녹으면서 많은 호수가 만들어지며 강은 녹은 눈으로 인해 홍수가 자주 일어난다. 많은 강을 만나고 지나가게 되지만 강에서 맑은 물을 보는 것이 쉽지 않다. 하바롭스크 전 76km에 위치한 이 강은 물이 맑고 야영하기에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었지만 나는 그와 서로 다른 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모터바이크로 시베리아라는 대자연을 마음껏 달려보는 것과 자신의 조상들의 고향인 영국까지 달려가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표였다. 나는 대륙의 길에 대한 자료를 구축하기 위해서 달리다가 멈추기를 자주 반복해야 하는 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보내온 메시지는 현재 '하바롭스크'로 들어와 있고 숙소 환경이 매우 좋은 곳과 인연을 맺었다는 내용이었다. (바이크 여행자에게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숙소는 매우 중요하다. 잠을 깊이 못자거나 잠의 양이 부족하면 다음 날 졸음운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가 머무르는 숙소의 주소도 함께 보내왔다. 여행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서 상대방과 정보를 공유하고자 하는 패트릭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가 느껴진다.

방안에서 짐을 꾸리고 밖으로 나와 다시 모터바이크 위의 짐을 고정 시키는데 한 시간이 넘게 소요되었다. 튼튼하고 가벼운 밧줄을 현장에서 구입해 바이크 위의 짐을 단단히 묶었지만 달리다보면 밧줄이 느슨해져 있었다. 이로 인해 짐이 흔들려 달리는데 신경이 많이 쓰인다.

두터운 나무 성벽 안에는 'M60' 숙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커다란 자재 창고와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식당이 있다. 식당은 저렴한 가격으로 여행자도 이용할 수 있다. 이외에도 자동차 정비소와 자그마한 상점도 들어와 있다. 마치 성 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외부와는 철저히 단절된 채로도 생활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이 갖추어져 있다.

나는 아침 겸 점심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들어갔다. 기름에 통째로 튀겨진 물고기 한 마리와 삶은 양배추와 양파와 당근이 들어간 소스가 뿌려진 으깬 감자와 빵 두 조각과 후식을 위해 썰어놓은 토마토와 사과와 홍차 한잔을 주문했다. 전부가 사천 원 정도로 나에겐 저렴한 가격이다. 식사 후에도 식당에 모인 사람들과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제 사고 소식을 가지고 오는 사람이 없나를 기다리다가 일어섰다.

오후 1시, 숙소 M60 밖으로 나왔다. 읍 정도의 인구를 가진 '뱌짐스키'에서 '하바롭스크'까지는 130km정도의 거리이다. 길을 따라 이어지는 마을을 벗어날 무렵 길 한편에 멈추어있는 승용차 한 대와 세 명의 젊은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보닛이 올라가 있어 차가 고장이 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적을 짧게 울리고 도움이 필요하냐는 사인을 보내지만 윗옷을 벗고 상체를 드러낸 남자가 문제없다는 몸짓을 보여 그냥 지나쳤다.



뱌젬스키로부터 50km 정도를 달려 나가자 패트릭이 말했던 강 '호르'를 가로지르는 다리 위를 지나게 되었다. 그의 말처럼 강물은 맑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물줄기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우수리 강을 향하여 흐르고 있다. 빛바랜 색을 가진 나무 집 몇 채가 강을 따라 조용히 서 있었다.

소나기가 반복되는 푸른 하늘 아래에서 모터바이크가 길 위를 달리고 있다.

하바롭스크 지방으로 들어서면서 '마쉬끼'(러.한 사전에는 '작은 벌레'라고만 소개되어 있다)라 불리는 날벌레들이 등장한다.

광활한 대지 위에 푸른 하늘과 먹구름이 동시에 존재한다. 달리는 바이크에 의해 푸른 하늘이 뒤로 밀려나고 진한 먹구름이 눈앞으로 다가오면 비옷으로 갈아입기 위해 모터바이크를 멈춘다. 이때마다 등장하는 날벌레들. 눈을 공격하기 위해 머리 위로 시커멓게 모여드는 이 벌레들의 공격은 집요하다.

('하바롭스크'에 들어가 시 외곽 쪽에 위치한 모터바이크 클럽에서 숙소로 제공해준 콘테이너 박스 안에서 잘 때도 이 벌레로 인해 문들 잠그고 살충제가 들어있는 스프레이를 마구 뿌려대거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야만 했다 – 생략 가능)

숲의 환경에 적응해 길고 많은 속눈썹을 가진 러시아인들은 이 벌레에 대해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간략하게 말해주었다. 사람의 눈 안에 알을 까서 눈 안의 수분을 먹고 자란다는 내게는 끔찍한 내용이었다. 하바롭스크 지방과 아무르 주에 걸쳐 등장하는 이 벌레들이 나에게는 모기와 피부에 달라붙어 맞아 죽어가면서도 물어대는 벌 파리와 함께 야영할 때 만날 수도 있는 곰보다 더 무서운 존재이다.

마구 달려드는 날벌레들로 인해 비옷으로 갈아입지 못하고 빗속으로 뛰어 들었다. 삼십여 분을 달리자 비가 내리는 구간을 지나 푸른 하늘 아래로 다시 들어왔다.

이번에는 비포장도로의 시작이다. 하얀 구름을 안고 있는 푸른 하늘 아래 비포장도로는 그림 같은 풍경이다. 모터바이크를 멈추고 사진 촬영을 하는 동안 등 뒤로부터 거대한 트레일러가 먼지 폭풍을 일으키며 지나간다. 먼지 속에서 잠깐씩 드러나는 여러 대의 차량들이 트레일러 위에 실어져 있다. 흙먼지를 등으로 막고 웅크린 자세로 한참을 기다린 다음에야 푸른 하늘을 되찾았다.

'하바롭스크' 가는 길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북방향으로 760km 거리에 있다. 중국과 국경을 이루는 우수리 강을 따라 계속해서 북상하게 된다.

오후3시20분 하바롭스크로 들어가는 입구에 들어섰다. 하바롭스크를 의미하는 키릴문자와 돛단배가 조형물로 서 있다. 하바롭스크로부터 우수리 강은 아무르 강으로 흡수된다. 1891년 시베리아 횡단 철도 공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존재하던 이 도시는 강이 주요 운송로가 되었다. 돛단배 조형물이 이 도시의 정체성을 말해주고 있다. 탐험가 하바롭스크에 의해 개척되었다.

한참을 내리 달려 도심의 외곽에 들어서자 길 위에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들이 눈에 자주 들어왔다. 한바탕 소나기가 내리고 지나간 흔적이었다. 공중 위에 있는 전선에 긴 막대를 대고 달리는 트란 바이 버스와 일반 버스와 차량들이 웅덩이를 지나며 튀기는 물세례를 받거나 물웅덩이를 피하지 못한 채로 흙탕물을 뒤집어쓰면서 도심 가운데를 목표로 하여 달려 나갔다.

어느덧 내 눈에 익은 건물과 거리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곳에는 비가 내린 흔적이 전혀 없었다. 차들이 정체되는 구간을 두 차례 겪으면서 햇볕이 쨍쨍한 도심의 한복판으로 들어섰고 옆으로 달리는 차량들과 함께 달리면서도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바이크 위의 내 눈은 무척 바쁘게 움직였다.

이 도시에서 한동안 매일 걸어 다녔던 거리일지라도 모터바이크를 타고 그 도로 위를 달리는 것은 다르다. 바이크를 멈출 만한 공간을 지나쳐버리게 되면 유턴해서 돌아올 수 없다. 목표를 지나가 버리게 되면 일단 계속 직진해야 한다. 그 거리를 벗어나서도 한참을 달리다가 결국 다른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경우가 많아 여행자는 도심에서 오히려 길을 잃어버리거나 헤매이게 될 확률이 많다. 이때까지 나는 네비게이션도 gps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도심 밖으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불법유턴을 몇 번 한 뒤에 내가 겨우 도착한 곳은 투어리스트 호텔 주차장이었다. 1995년 처음, 이 도시를 찾았을 때 학생이었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비용으로 며칠 동안 나의 숙소가 되었던 곳이다. 실내에서도 바라볼 수 있도록 바이크를 현관 문 앞쪽에 가까운 곳에 세웠다. 흙탕물이 튀어서 입고 있는 옷들이 젖어있는 상태였지만 사이드 거울에 비친 모습에서 여행자의 이미지를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실내를 둘러보면서 프런트를 바라보았지만 예전의 그런 한가한 모습이 아니었다. 프런트 앞에 방에 대한 가격표들을 알 수 있는 안내서들이 있었다. 나는 방이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물론 어떤 종류의 방도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내 복장으로 인해 거절당한 것은 아니었다. 긴 겨울을 감당해야 하는 러시아인에게 강렬한 햇살이 경험할 수 있는 여름은 휴가의 계절이다. 이것은 어느 도시에서나 숙소를 구하기 쉽지 않음을 의미한다. 프런트에서 와이파이를 잡아 모터바이크가 있는 밖으로 나왔다. 와이파이의 강도가 약해지자 현관문에 가까운 곳으로 이동했다. 나는 흥분해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친구 지마와 븨딸리 그리고 내가 머무르던 이 도시의 신학교 학생들을 만나고 있었다. 하지만 18년 만에 만나는 이 도시는 무척 낯설어져 있었다. 시내에서 이사가 버린 신학교의 위치가 생각나지 않았으며 지마의 집도 마찬가지였다. 숙소를 구하는 것이 우선 순위였다. 패트릭이 가르켜 준 호스텔 주소를 구글 맵에 넣어보니 와이파이 없이는 주소를 찾아갈 수 없는 낯선 장소였다. 고민하고 있을 때 호텔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차 안에서 나온 한 남자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두터운 나무 성벽 안에는 'M60' 숙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동차 정비소와 상점, 커다란 자재 창고와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식당이 있다. 식당은 저렴한 가격으로 여행자도 이용할 수 있다.

폐차에 가까운 차들을 싣고 거대한 트레일러가 비포장 길 위를 지나가고 있다. 흙먼지를 뒤집어 쓴 차들에게 다시 생명을 넣어줄 곳은 어디인가

그지없이 맑고 푸른 하늘 아래 펼쳐져 있는 비포장 길

하바롭스크로 들어가는 입구. 돛단배 조형물을 통해 이 도시가 아무르 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왔음을 알 수 있다. 17세기 중엽에 활동했던 탐험가 하바로프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