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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 중의 한 장면이다. 후세인 정권을 몰아내는 군사작전에 성공한 후 한 미군의 무리가 이라크 고대문명의 자부심이라 말 할 수 있는 바빌론 유적지에 주둔하고 있었다.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낸다는 구실로 포장된 전쟁이었지만 단지 입맛에 맞지 않는 독재 정권을 축출하는데 그쳐 이권을 위하고 세계에 군림하려 한다는 침략전쟁이라는 비난의 화살을 피하지 못했다. 이들을 만난 당시에도 곳곳에서 산발적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이 주둔지 안에서만은 모두가 관광객처럼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라크의 자존심을 차지하게 된 것에 대한 승리를 만...
편집에디터2021.04.29 16:09수 백 명의 참사를 불러일으킨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던 세월호 그 자체를 인양하는데도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유가족들은 물론이고 전 국민들의 염원 속에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각고의 노력 끝에도 끝내 수습하지 못한 죽엄들이 있어 우리 모두를 안타깝게 했다. 이제 그만 떠나보내려고 하지만 잊지 말자고 하면서 쉽지가 않다. 뭍에 올려져 잠자는 듯한 그 괴물 같은 모습의 세월호 그 자체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마는 야속하게만 느껴진다. 아직도 속 시원히 풀지 못한 사건의 진실을 머금...
편집에디터2021.04.15 17:17코로나19로 세상이 딱 막혔다. 뭔가 돌파구를 찾고 싶어진다. 명절에 부모님도 찾아뵙지 말라하고 지인들끼리도 만나지 말라하고 문화공간들도 문을 닫아버려서 그야말로 갈 곳이 없다. 얼마 전에는 산에 가서 맑은 공기나 실컷 마실까 했더니 그곳도 코로나 때문에 들여보낼 수 없다 해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지구를 떠나라고 할 날이 올지도…… 이 어수선한 시국이 풀리면 많은 이들이 가장 먼저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여행을 떠나는 것이란다. 물론 지금의 우리들의 삶 자체가 여행인 것은 분명하지만 뭔가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
편집에디터2021.04.08 11:08그때 그 봄날에 남녘 어디에서,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진달래꽃을 한 아름 꺾어 든 당신의 모습이 여기 있네요. 아주 오래 전에 찍어서 잊고 있었던 사진이지요. 사람의 기억이란 이상한 것이어서 이번에도 봄을 또 맞이하다가 불현듯 생각났답니다. 한줄기 희미한 기억만으로 수많은 필름 속에서 며칠을 뒤지다가 어렵게 찾아냈지요. 마치 잃어버린 자식을 다시 보는 듯합니다. 지금은 모두가 장년이 되어서 이만한 자식들도 거느리고 있을 테니까 자신의 모습도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겠네요. 계절은 어김없이 또 봄이지만 그때 그 당신은 지금 어디에...
편집에디터2021.03.25 11:10봄이 오는 길목에서 굳게 다문 입술 왕방울의 애리한 눈빛 봄을 기다리는 천하대장군의 각오는 무엇일까 꽃바람을 타고 오는 봄처녀의 치맛자락에 숨어서 바람둥이 손님으로 왔다가고 말거라면 이번에야말로 그냥 보내지 않겠다 이건가? 언제나처럼 꽃샘추위가 있겠지만 여기 산촌에도 봄을 알리고, 저기 들녘에도 봄이 피어나고 있다. '봄날같은 인생'이라는 말이 있듯이 저 장승이 길목을 잘 지켜서 모두에게 따사로운 봄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편집에디터2021.03.11 11:09세상이 시끄러워도 계절과 절기는 어김없이 돌아온다. 어느 틈에 입춘인가 싶었는데 엊그제 설날을 맞이했고 며칠 있으면 또 대보름이다. 맞이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는데 이렇게 밀어닥치면 어쩌란 말인가. 지리산 왕시루봉에 뜬 보름달이다. 휘헝찬 저 달이 지난 시절 쥐불놀이 하던 때를 그립게 하고 보는 이들의 마음을 풍성하게 만들기도 하겠지만 그리움에 사무쳐 뭇 청춘들을 눈물짓게 했던 저 달이기도 하다. 옛 묵객들의 시늉이라도 내어보면서 술잔이라도 기우려야 하는가. 왠지 쓸쓸함만 더해 가고 가슴 숙연해 질뿐이다. 달아, 달아, 밝은 달...
편집에디터2021.02.25 13:21지리산 북쪽 골짜기들을 찾아다니면서 내심 눈발이라도 휘날려 주기를 바랐지만 때 아닌 안개비가 내리고 있다. 비구름 속에서 들락날락 거리는 산봉우리들은 더 높아 보이고 그 산비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네들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듯하다. 산청군 삼장면 내원골을 찾아가고 있다. 분단시대의 아픔과 울분을 보여줬던 최후의 빨치산 정순덕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정말 깊고 깊은 곳에 자리한 작은 동네다. 세월이 제법 흘러서 이젠 당시의 흔적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아니 어쩜 처음부터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
편집에디터2021.02.04 12:55여기는 함평군 월야면의 작은 언덕 남산뫼. 소나무 한 그루가 그 곁에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광풍이 몰아치던 역사의 현장을 찾아와서인지 오늘 따라 하늘빛도 음산하다. 기억하게 하는 것조차 힘들게 하는 것일까. 남산뫼의 이 소나무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오늘도 허공을 향해 '나는 보았노라!' 하면서 울부짖고 있다. 국군 11사단 20연대 2대대 5중대가 함평 일대에 투입되어 불갑산의 빨치산 토벌 목적으로 '견벽청야(堅壁淸野)'작전을 수행하던 그 해 겨울은 잔인했다. 빨치산에 당한 분노를 엉뚱한 양민들에게 화풀이 한 것이다. 민가마다 ...
편집에디터2021.01.21 12:35또 새해가 시작되고 있네요. 그럼 우리도 모든 것에서 새롭게 시작해야겠지요. 그렇다고 우리가 다시 태어나게 된 것도 아닐테고 지난 시간을 지워버리는 것도 아니지만 새로 시작해 볼 수 있다는 것에서 그 의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요즘은 계절이 하 수상해서 눈내리는 정취도 만끽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함박눈이 내리는 도심을 걸어보고도 싶고, 드넓은 들판에 휘날리는 눈 속으로 내달려보고도 싶고, 토굴의 창가에서 따스하고 향기로운 차를 마셔가며 소복소복 쌓여가는 새하얀 눈들을 보며 멍때리는 것도 좋지않을까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자신의...
편집에디터2021.01.07 11:28간밤에 눈이 내렸다. 확실한 방향도 모른 채 비탈길을 힘들게 올랐다. 칼바람이 드세 지는가 싶던 그때였다. 잡목 사이로 찾고 있던 고인돌이 눈에 띄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마주한 그 고인돌은 만주 일원에 흩어져 있는 다른 고인돌에 비해 그 규모는 작았지만 아담한 돌집을 연상케 했다. 주인이 떠나버린 지 오래인 듯한 돌집 형태의 고인돌. 외로움에 지친 모습이라고나 할까. 2천년, 3천년, 아니 그 이상의 세월을 삭히면서 내가 오기를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촬영 장비를 내려놓고 숙연한 마음으로 고인돌의 덮개석을 어루만지면...
편집에디터2020.12.17 11:11바람 따라 백제의 흔적들을 찾아다니면서 충청남도 서산에 있는 마애여래삼존상 앞에 서게 되었다. 용현리 산기슭의 바위에 새겨진 이 삼존상은 섬세하기도 하지만 조각상의 미소가 일품이어서 '백제의 미소'를 대표하는 국보로 지정된 문화유산이다. 이곳은 중국의 불교문화가 태안반도를 거쳐 부여로 가던 행로상에 있으며, 600년경 이름 모를 석공에 의해 조성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삼존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일화가 재미난다. 1959년 부여 문화재 관계자가 근처의 보원사지의 답사를 마치고 이 근방을 지나다가 나뭇꾼 한 분을 만났다. "혹 ...
편집에디터2020.12.03 13:01세상의 온갖 것들이 야단법석을 떨면서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계절은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가을인가 싶더니 어느 새 겨울의 문턱에 들어서는 것인가. 여행도 마음대로 떠나지 못하는 이 답답한 시절이지만 이 또한 흐르는 시간 속에 묻혀서 지나 갈 것이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 이맘 때 쯤에 두만강변을 떠돌던 생각이 났다. 강이라기 보다는 동네의 개천이라고 해야 할 정도지만 우리 민족의 눈물을 모아 흐르는 한(恨) 많은 강이지 않던가. 힘들게 살아간다는 북한 동포들의 삶도 지척에 보이는 중국 쪽 '숭선'의 조선...
편집에디터2020.11.19 12:41연해주 크라스키노의 벌판이다. 온 사방으로 드넓게 널려있는 갈대숲을 헤집고 다녔다. 이 근처 어딘가에 성터의 흔적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서. 하지만 잃어버린 천 년의 세월은 천명(天命)을 받든 이 몸에게도 감당키가 만만치 않았다. 두만강 하류의 북한과의 국경이 지척인 곳이다. 배낭을 메고 카메라 삼각대를 총처럼 들고 다니는 것이 오해 받기 쉽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을 때 일은 이미 터졌다. 러시아 국경수비대의 포위망이 좁혀 온 것이다. 위기에 처한 황제의 밀명을 받들고 적진으로 뛰어든 것도 아니면서 꼴사납게 되었지 뭔가. 그들은 ...
편집에디터2020.11.05 13:33고구려 유민들이 망국의 한(恨)을 딛고 다시 세운 나라가 발해(渤海)다. 하지만, 그 또한 대가 끊긴 폐허 위로 천 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남아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무언가 남아 있기를 기대하는 그 자체가 모순일 것이다. 지금은 남의 땅이 되어버린 그곳에서 잡초속의 토성(土城)들의 흔적과 주춧돌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무엇을 보여주자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느낌을 전달하는 것에 무게가 있기에 허허로운 벌판에 서서 들풀에게, 나무에게, 그리고 지나가는 바람에게 말을 건다. 연해주 우수리스크 지역의 발해성터...
편집에디터2020.10.22 13:07요즘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곤욕을 치루고 있다. 이 난리가 앞으로도 얼마동안 이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기회에 우리 인간들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세계의 꼼꼼한 곳들을 찾아다니면서 작업을 하며 즐거움을 찾던 일도 벌써 옛 일이 되어가는 듯 해 아쉬움이 많다. 몇 해 전에 다녀 온 트레킹으로 유명한 북인도의 잔스카르의 여행을 떠올려 본다. 아직도 문명의 손길이 크게 미치지 못한 오지에서의 순수한 삶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게 했던 기억들이 새롭다. '빠둠' 인근의 '카르차' 사원의 원경이다. ...
편집에디터2020.10.07 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