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무안학 심포지움을 열었다. 무안군 후원 무안문화원 주최 프로그램이다. 우후죽순 지방학이 생겨나는 와중에 아마도 꼴찌로 이름을 올린 게 아닌가 싶다. 내가 2년여 두 번의 기획과 섭외 등을 맡아 진행해서가 아니라, 향후 지역학을 고민하고 구성해나갈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페이스북에 간략한 성과를 공유하였고, 오프라인의 독자들을 위해 다시 풀어쓰는 셈이다. 그동안 몇 차례 무안학이라는 이름으로 발표와 토론이 있었지만 등 지역연구의 맥락을 넘어서는 지역학 화두를 내걸었다. 무안문화원 이...
편집에디터2022.09.15 17:10압록강을 건너고, 구련성에서 호랑이를 쫒다가 책문을 통과하면 비로소 청나라에 들어서는 것이다. 지금부터는 사신단의 먹을거리와 잠자리는 청나라쪽에서 제공한다. 멀리서도 우뚝솟은 것이 바로 봉황산이다. 여기서 연암 박지원은 기운이 힘차보이기는 하나 밝고 윤택한 기운은 한양의 도봉산이나 삼각산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정말 그런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여기가 고구려 최고의 요새였던 봉황산성이 잃어버린 안시성을 생각하며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곳이다. 800m 높이의 봉황산과 고려성자산의 산새가 자연 성벽이고, 그 사이의 좁은 남문과 북문만...
편집에디터2022.09.15 15:461971년 미국의 미술잡지 Artnews 1월호에 실린 에세이에는 미술사가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이 "왜 지금까지 위대한 여성 예술가가 없었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은 당시 가히 혁명적이었다고 할 수 있었는데(사실 50여년이 흐른...) 지금도 미술사의 주 이론으로 적용되던 사고들은 현대 미술사에 권력으로 독점한 백인 남성들의 성차별적인 구조 뿐 만 아니라, 예술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의미로확장되어 사회적 이슈의 숙제로 남아있다. 노클린은 '예술이란 오로지 천재적 재능을 지닌 한 개인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 속에서 발생 한다.' 는 점을 지적했다. 여성 천재 미술가가 탄생할 수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은 여성에게 불리한 사회 환경과 교육제도 때문이라는 것이 질문의 주요 관점이었다. 이후 '페미니즘feminism' 미술...
편집에디터2022.09.04 17:20죽림사원. 차노휘 베트남 사람들 70%가 불교신자이다. 그 뒤를 가톨릭(20%), 까오다이교(5%) 그리고 민간 토속신앙이 잇는다. 다소 생소한 까오다이교는 20세기 초에 생긴 베트남에서만 볼 수 있는 신생종교이다. 모든 종교는 하나라는 것을 증명하듯 불교, 가톨릭, 도교, 유교, 이슬람 다섯 신을 모신다. '높은 곳을 보게 되(높은 곳을 가게 되)면 진리를 깨닫게 된다'고 하는데, '까오다이(高台)' 또한 '높은 곳'이라는 의미로 신이 있는 곳 즉, '천국'을 가리킨다. 인류구원의 날에 천안이 나타난다고 믿는데 '천안(天眼)'은 지구본처럼 생긴 둥근 '눈'이며 이 종교의 심벌마크이다. 불교 또한 지난한 그들의 역사만큼이나 수난을 겪었다. 대표적으로 '틱꽝득(석광덕, 1897~1963)' 스님의 소신공양을 들 수 있다. 소신공양(燒身供養)은 자신의 몸을 불사르면서 부처에게 공양...
편집에디터2022.09.01 16:32영화 왕의 남자 광대들의 연희장면. 맥스무비에서 캡쳐 "근데 그때는 뭐, 광대 뭐, 딴따라 뭐, 이럴 때지(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4)." "그러니까 떠돌이들은, 유랑극을 하는 사람들은 조심을 해야된다. 이래가 부모들이 말렸어요(한국영화사연구소, 2010)." "영화 한다고 그러께네 뭐 뭐 기생 사람 된다카고 뭐. 그때 영화라는 게 인정도 안 했지, 그래께 내가 몰래 나왔지(한국영화사연구소, 2007)." "어어, 그리니까 완고하지요. 그니까 풍각쟁이한테 누가 딸을 주겠느냐(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5)." "아, 보나 마나 그런 딴따라니까, 이혼했지(한국영화사연구소, 2009)." 이승연의 '서사를 통해서 본 1950~60년대 대중문화 예술인의 정체성-예술관과 직업관을 중심으로(인문사회 21)'라는 글의 인용문들이다. 광대, 딴따라, 떠돌이, 풍각쟁이는 물론이요, 각설이, ...
편집에디터2022.09.01 16:24법화마을 표지석.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져 있다. 이돈삼 여수에서 돈 자랑하지 말고, 장성에선 인물 자랑하지 말라고 했다. 벌교에 가면 주먹 자랑하지 말라고 했다. 오래 전부터 전해지는 말이다. 나름 고개가 끄덕여진다. 바다가 넓은 여수는 고기잡이로 돈을 많이 벌었다는 이야기다. 장성은 학덕 높은 하서 김인후와 고봉 기대승, 노사 기정진의 영향이 크다.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벌교는 주먹과 무슨 상관이 있지? '벌교 주먹'에는 왠지 좋지 않은 이미지가 앞선다. 벌교에 폭력을 쓰며 행패를 부리는 깡패가 많았다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말이나 행동이 거친 왈패가 많았을까? 궁금증이 에서 풀린다. 일제강점기 의병들의 투쟁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벌교주민(한만호, 손공현)의 구술이었다. '장터에서 나뭇짐을 지고 내려오다가 보니께. 일본 헌병들이 조선사람 장사...
편집에디터2022.09.01 16:292001년 진도 소포마을 상가에서 열린, 고 정숙자의 씻김굿 중 손님굿. 이윤선 "경상도는 대풀이요/ 전라도는 중천의 풀이란다/ 잔도 잔도 새로 속잎이 났네/에라 만수야 에라 대신이야/ 많이 흠향하고 평안히 돌아가소서" 진도를 중심으로 하는 남도 씻김굿의 대표적인 마무리곡이다. 시나위나 굿거리 연주를 하다가 당골 혹은 음악의 리더격인 누군가가 이 노래를 꺼내면 모두 합창하며 해당 거리를 끝내게 된다. 이 곡을 꼭 집어 이름을 붙인 예는 없다. 어떤 굿거리를 마무리하는 곡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나는 '갈무리조'란 이름을 쓴다. '갈무리'는 일을 처리하여 마무리한다는 뜻의 순우리말이고 '조(調)'는 시가나 노래의 음수에 의한 리듬 단위라는 의미로 차용한 것이다. 부언하자면 하나의 굿판을 이루는 십수 개의 하위 굿거리들이 있다. 대개 열두 개 정도로 구성된다. 그 중 중요한 하위 굿...
편집에디터2022.08.25 16:15압록강을 바라보고 있다. 연암 박지원은 고려시대에 지어진 의주의 통군정에서 압록강을 바라보면서《열하일기》를 시작하고 있지만, 나는 지금 강 건너 중국쪽에서 압록강을 바라보면서 시작한다. 시대의 차이는 있다지만 같은 강이다. 그러나 바라보는 연암과 나, 두 사람의 심정은 다를 것이다. 그리운 땅을 눈앞에 두고도 갈 수 없어 안타까워하는 것이 나라면, 연암은 눈 앞에 펼쳐지는 드넓은 땅을 바라보며 새로운 것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감이 압도적이었을 것이다. ...... 나는 중국 쪽 호산장성에 올라 망원렌즈로 통군정을 찾아보다가 유람선을...
편집에디터2022.08.25 16:15심적암 의병 위령탑(대흥사 입구) 심적암 전투지 안내판 '남한폭도대토벌작전' 당시 체포된 호남 의병장들(윗줄 맨 왼쪽이 황두일) 심적암 현장의 우물터 황준성(黃俊聖, 1879~1910)은 대한제국 국군의 참령(參領)이었다. 국권 피탈 과정에서 이루어진 군대 해산에 반대한 후 완도와 해남 일대에서 의병을 일으켜 저항하다 순국한 인물이다. 참령은 계급 체계상 현재의 소령에 해당되지만, 당시는 대대장으로 3품 품계였고, 장군으로 불렸다. 지금의 소령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급 군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대한제국의 황궁과 황실을 지켰던 박승환 시위대 1연대 1대대장이 군대 해산에 반대하고 자결하였는데, 당시 계급이 참령이었다. 참령 이상으로 의병장이 된 분은 만주에서 활동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와 황준성, 두 사람뿐이다. 이동휘는 군대 해산 당시 참령으로 강화진위대...
편집에디터2022.08.24 15:14"해모수와 사통한 뒤 버림받은 유화를 이상하게 여긴 동부여의 왕 금와가 그녀를 방에 가두었는데 햇빛(日光)이 비추니 몸을 이끌어 이를 피하고 해그늘(日影)이 좇아와 비추니 받아들여 이로 인해 잉태했고 하나의 알을 낳았다." '삼국유사' 「고구려조」 주몽 탄생 기사를 김지하가 인용한 대목이다. 흰그늘이란 작명의 출처를 엿보게 해준다. 이렇게 설명한다. "햇빛(日光)과 해그늘(日影)이 분명히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병도는 각각 '햇빛'으로 번역했으니 '해그늘' 곧 흰 '그늘'의 깊고 무궁한 신화적, 신비적, 미학적 의미, 그 창조적 ...
편집에디터2022.08.18 16:56탑동마을 전경. 영랑생가 뒤편 세계모란공원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이돈삼 이 새끼, 저 새끼, 내부총질 등 비속어가 일상으로 들려온다. 정제되지 않은 저급한 언어들이 정치권에서 난무한다. 말의 품격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옛말에 '벼슬이 높은 1품은 아홉 번 생각한 다음 한마디 말을 하고, 9품은 한번 생각하고 아홉 마디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 정치인들은 한번 생각하고, 아홉 마디 이상의 말을 뱉어내고 행동하는 것만 같다. 우리말을 잘 다듬어 쓴 '언어의 정원사'를 만나러 간다. 언어의 정원사는 내면의 서정을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한 영랑 김윤식(1903∼1950)을 가리킨다. 목적지는 '남도답사 일번지' 전라남도 강진이다. 강진은 김종률․정권수․박미희 트리오가 부른 '영랑과 강진'의 노랫말처럼, 영랑의 글이 음악이 되어 흐르는 곳이다. 감성길로 단장된 탑동마을의 골목길...
편집에디터2022.08.18 15:46랑비앙 라다 언덕에서 바라본 풍경. 차노휘 달랏 시내에서 12km 떨어진 곳에 달랏의 지붕이라고 하는 산 두 개가 있다. 두 산은 락즈엉현에 위치한 두옹산(Núi Ông)과 바산(Núi Bà)이다. 바산은 해발 2,167m, 옹산은 해발 2,124m이다. 달랏시 중심에서 바라본 바산은 왼쪽에 있고, 옹산은 오른쪽에 있다. 이 두 산을 묶어 사람들은 랑비앙( Langbiang)이라고 부른다. 랑비앙은 꼬호족의 전설에서 끄랑(K'lang)과 호비앙(H'biang)의 이야기에 나오는 두 사람의 이름을 합성한 것이다. 랑비앙 입구 매표소 그리고 지프. 차노휘 옛날 이 산악지대는 소수민족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그 중 라트족(tộc Lát) 족장에게 '끄랑'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두옹산으로 사냥을 갔고 그곳에서 열...
편집에디터2022.08.18 15:43임실필봉농악-블로그 후니의 감성기행에서 인용 "수컷 굴뚝새는 영토를 얻게 되면 흔히 있기 마련인 침입자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음악상자 리토르넬로'를 만들어 낸다. 그러고 나서 영토 안에 직접 집을 짓는다. 심지어 12개씩이나 지을 때도 있다. 암컷이 다가오면 한 집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집 속을 들여다보는 암컷에게 들어오라고 재촉한다. 꼬리를 낮추고 노랫소리를 점차 약하게 한다.(중략) '구애'의 기능 역시 영토화되어 있다. 하지만 영토의 리토르넬로를 매혹적으로 만들기 위해 강도를 바꾸기 때문에 그 정도는 집짓기보다 덜하다."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이하 들뢰즈)의 「천개의 고원」에 나오는 설명이다. 오래전 소리의 영토와 재영토화에 대해 소개하면서 인용해둔 대목이다. 리토르넬로에서 공명(共鳴)까지란 부제를 붙였던 이유는 지난 칼럼에서 다룬 'ᄆᆞᆷ톨로지'와 수렴 및 확장...
편집에디터2022.08.11 15:18연변의 '용정'에 있는 대성중학교 교실의 칠판에 윤동주의 '서시(序詩)가 작곡된 악보가 쓰여 있었다. 1941년 11월 20일에 쓴 이 시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유고집에 수록된 서시다 독립운동의 열혈청년은 아니었지만 진실한 자기 성찰을 바탕으로 순수하고 참다운 인간의 본성을 되새기게 함으로써 일제의 감옥에서 비운의 생을 마감했던 항일애국 시인 윤동주 오늘도 그가 그리워짐에 시로 대신한다. 윤동주의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
편집에디터2022.08.11 14:29대한민국 임시정부 환국기념 사진 속 김재호(원안 인물) "3·1운동의 주동자는 나다. 쇠는 불에 달구고 두들길수록 더욱더 단단해진다. 얼마든지 해볼 테면 해봐라!" 광주 3·1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된 김복현(金福鉉, 1890~1969)이 법정에서 한 말이다. 이후 김복현은 '철(鐵)'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얻게 되면서 김철로 불린다. 그는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추대되지만, 그가 꿈꾼 통일 조국의 꿈을 가슴에 묻은 채 생을 마감한다. 김철이 남긴 항일 정신은 장남 김재호(1914~1976)로 이어진다. 김재호는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 단원이 되고,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치열한 독립전사였다. 김철에서 김재호로 이어지는 항일 정신의 뿌리는 한말 나주 의병을 이끈 김철의 부친 의병장 김창곤이었다. 할아버지를 이어 아들이, 그 아들의 아들이 또 하...
편집에디터2022.08.10 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