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에 빛날 소작항쟁의 역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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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에 빛날 소작항쟁의 역사를 찾아서
암태도
송기숙 | 창비 | 1만2800원
  • 입력 : 2023. 01.26(목) 11:03
  • 이용환 기자 yonghwan.lee@jnilbo.com
암태도 송기숙 | 창비
암태도 소작쟁의 100주년을 기념해 지난 해 4월 열린 유족 초청 간담회에서 독립유공자 후손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신안군 제공
민족주의 리얼리즘의 본령을 지켜온 고(故) 송기숙(1935~2021)의 장편소설 ‘암태도’가 1981년 초판 출간 이후 41년 만에 다시 독자들을 만난다. 농민들의 삶과 투쟁을 깊숙이 파고들어 생생하게 그려낸 민족문학의 빛나는 성과가 2023년 암태도 소작쟁의 100주년을 맞아 새로운 장정으로 선보인다.

1920년대 목포 앞 섬 암태도에서 일어난 ‘암태도 소작쟁의’는 우리나라 소작쟁의의 효시로,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항일농민운동으로 평가받는다. 턱없이 높은 소작료를 내리기 위해 1923년 8월부터 다음해 8월까지 소작인들이 벌인 암태도 소작쟁의를 소설화한 이 작품은 매몰되었던 억압적 일상에서 깨어나 인간다움을 찾아 몸부림치는 농민들의 삶과 투쟁을 묵직하고도 감동적인 필치로 보여주는 송기숙 문학의 역작이다. “투박한 인물들의 낡은 정서 안에서 민중적 전통의 진보적 역동성이 살아 있음을 읽어낸다”(염무웅 추천사)는 말처럼 ‘암태도’는 가진 자들이 민중을 착취하는 오늘날의 현실 앞에서 시대를 초월하는 역사적·문학적 의의를 선연하게 빛낸다.

암태도 소작쟁의는 암태도의 농민들이 지주 문재철을 상대로 돌입한 쟁의이지만 크게는 일제 당국을 상대로 한 싸움이었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100년간 그 정신을 계승해 온 역사적 사건이기도 하다. 소설은 그 역사적 사건을 충실히 좇아 농민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고도 거침없이 펼쳐놓는다. 소작인들은 목숨을 걸고 항쟁을 시작했지만 지주 문씨 일족은 일본 관헌과 경찰의 힘을 믿고 버티기만 할 뿐이었다. 기어이 문씨 일족 청년들과 농민들 사이에 유혈극이 벌어지자 이를 빌미 삼은 경찰이 소작회 간부들을 구속하고 이에 분노한 농민들은 경찰서와 지주 문재철의 집이 있는 목포로 나가 역사에 길이 남을 치열한 싸움을 시작한다.

치열하고도 뜨거웠던 이 항쟁을 소설화하기로 마음먹은 계기에 대해 작가 송기숙은 “사건 자체의 극적인 발전과정도 흥미롭거니와 반봉건적·반일적 순수한 민중운동이 암태도라는 작은 단위의 섬에서 또 아주 밀도 있게 진행되어 민중의 의지를 관철시킨 것이 통쾌했기 때문”(초판 작가의 말)이라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실존인물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담아낸 이 작품에는 작가가 창조해 낸 허구적 인물 또한 등장한다. 그중 암태도 사건 때만 해도 불과 30년 전에 불과했던 동학농민전쟁에 가담했던 인물로 극화된 ‘춘보’는 1920년대 전성기를 구가한 소작쟁의의 물결이 1894년 동학농민전쟁의 연장선에 있다는 작가의 작중 의도와 역사인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인물이다. 동학농민전쟁의 영향을 제외하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이 작품은 하여 송기숙의 대하소설 ‘녹두장군’으로 나아가는 “중간단계의 역작”(염무웅 추천사)이라 평가받기도 한다.

착취당하는 현실에서 깨어나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 뜨겁게 투쟁하고 연대하는 이들의 모습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본에 휩쓸려 붕괴된 농촌의 현실, 핍박받으며 살아가는 민중의 모습은 100년이 흐른 현재에도 ‘오늘’의 일이다.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 대항하는 사람들이 가진 연대의 힘은 무엇보다 강하다. 암태도 소작쟁의 100주년을 기념하는 ‘암태도’ 개정판 출간을 계기로 故 송기숙 작가의 뜨거운 시대정신이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를 기억하길 기대한다.

1935년 완도에서 태어난 송기숙은 전남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분단과 민중의 삶을 깊숙이 파고든 중량 있는 작품을 속속 발표하며 민족문학의 중추 역할을 감당해 왔다.2021년 12월 별세했다.
이용환 기자 yonghwan.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