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착민 삶·군국주의 유물·소멸하는 생태계의 애통함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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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
토착민 삶·군국주의 유물·소멸하는 생태계의 애통함 담아
알고보면 더 재미있는 화제의 작품들||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샤머니즘 등 화두로 전지구적 문제다뤄||공동체 등 다양한 형식 네트워크 통해 집단지성 해법 도출
  • 입력 : 2021. 04.13(화) 15:48
  • 박상지 기자

현대미술이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미술의 상식'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의 세계에선 첫눈에 아름다운 모습 보단 도통 무슨 의미인지, 여러번 생각해도 와닿지않는 이미지가 작품으로 출품된다. 현대미술 감상에 안내자가 필요한 까닭이다. 광주비엔날레는 아시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의 현대미술 비엔날레다. 제한된 짧은 기간동안 500여점에 이르는 현대미술 작품을 감상하기란 무척이나 고된일 일런지 모른다. 20일 남짓 남은 현대미술 축제기간 동안 독자들이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본보에서는 전시 섹션별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광주비엔날레 4개 주제관 중 하나인 비엔날레 전시관은 5관으로 구성 돼 있는 만큼 이번 행사에서 대부분의 작품들이 망라돼 있다. 5개 전시관에서는 50명이 넘는 작가들과 사상가들이 작품을 통해 서로 조응하고 상호작용하며 전시관을 묵직하게 채우고 있다. 토착민 생활세계, 군국주의의 유산, 모계 중심의 공동체 등을 경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회의 집단지성이 눈앞에 펼쳐진다.

존 제라드 작 '옥수수 작업(코리브)'. 광주비엔날레 제공

●존 제라드, 1관=광택 알루미늄 거울로 주조된 입방체에 투사한 시뮬레이션은 마치 켈트 이교도들의 형상인 네병의 '밀짚소년'을 보여준다. 젊은이들이 밀짚으로 만든 의상을 입고 결혼식 전에 신부를 방문하는데, 이는 익명의 인물들이 축하 또는 무아지경의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제의를 상기시킨다. 존 제라드 작가는 작업을 위해 16세부터 70세까지 여러 연령대의 현대무용수들과 협업했다. 각 무용수들은 춘분, 하지, 추분, 동지의 교체 형석에 따라 도착하고 떠나며 인류 초기 태양의 상징인 태양 십자 뿐만 아니라 방아의 원운동을 통해 제분 활동을 상기시킨다. 코리브 강을 배경으로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생태계 파괴의 우울한 유산을 담고있다. 인구가 번성하고 급증함에 따라 소멸해가는 비인간 세계를 애통해 하는 작업이다.

소니아 고메즈 '무제(꼬기 시리즈)'. 광주비엔날레 제공

●소니아 고메즈, 2관=소니아 고메즈의 작업은 아프리카 민속 전통, 초현실주의 양식, 브라질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았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꼬기'시리즈는 직물, 그물, 밧줄을 엮어 자궁 모습의 풍경으로 만들거나 목재 몸통에 묶어 수축하는 근육을 표현하고 있다. 작품에 대해 작가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그 부분에 대한 것'이라고 규정한다. 재료를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직관적 작업을 일찍부터 시작해 온 작가는 흑인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백인 아버지로부터 기독교 방식의 양육을 받았다고 한다. 도피, 기념, 자기 치유를 위해 공예를 찾은 그는 외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아프리카계 브라질 정신을 기린다.

시안 데이리트 '전쟁의 책략'. 광주비엔날레 제공

●시안 데이리트, 3관=이번 광주비엔날레에서는 군국주의의 무게와 투옥의 음지로 훼손된 삶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시안 데이리트는 장기간 연속적인 서사로 이어지는 프로젝트를 만들며, 이벤트를 조직해 제국주의 역사, 광범위한 국가폭력, 주인 의식과 환경정의의 공동실천을 철회하는 신자유주의 경제 토대에 이의제기 했다. '적대의 책략'에선 고문의 책략과 수세기에 걸친 부채의 덫, 신식민지의 싸우는 문화를 담은 남성적 호전성을 엿볼 수 있다. 트로피 진열실 형태를 띤 '권력의 연출법'은 여러 곳에서 구한 제복과 장식 천, 배지, 사진, 토템, 무기 등으로 만들어져 규율 권력의 대담한 구호를 떠올린다. '광기의 방법'의 수공예 목조각은 체벌의 육화된 트라우마, 꼭두각시 정권의 반복적 조작, 일상의 신경과 안정을 뒤흔드는 세뇌 전략 등을 전달한다.

문경원 & 전준호 '빚는 달, 항아리 안의 삶'. 광주비엔날레 제공

●문경원 & 전준호, 4관=2009년 듀오로 결성한 두 사람은 미술의 권력관계와 사회적 기능을 근본적인 선상에서 탐구한다. 문경원 & 전준호는 공상과학 문학과 영화를 참조하며, 이 장르의 진화를 동시대적 순간과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가속화된 전망에 대한 알레고리로 파악한다. 작품 '빚는 달, 항아리 안의 삶'(2016)은 자각몽과 인간의식의 한계 사이의 문턱에서 작동한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재해석한 이 영상에는 악마와의 계약을 해소하기 위해 완벽한 지식을 찾아 나서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주요 모티프로 작용하는 한국식 백자 달항아리는 미적인 불완전함과 인간의 끊임없는 완벽함의 추구를 반영한다.

릴리안 린 '중력의 춤'. 광주비엔날레 제공

●릴리안 린, 5관=릴리안 린은 1939년 뉴욕에서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파리에서 시인이자 연금술사 엘리-샤를 플라망을 비롯한 초현실주의 모임의 회원들을 만나고 밀라레파의 불교시와 리처드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에 빠져들면서, 1950년대 후반에 미술계에 입문한다. 여성 신들의 원형에 관심을 가졌던 작가는 1980년대 초부터 그리스와 힌두 신화에서 나타나는 가부장제 이전의 님프 여신들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중력의 춤'(2019)에선 최고조로 회전하는 치마의 움직임을 소용돌이 치는 형상으로 표현했다. 작품 속의 공전은 물질과 정신을 움직이는 우주의 힘을 다룬다. 또한, 작가의 초기 키네틱 작품에 영감을 준 블랙홀의 중력, 수피파 고행자들의 무아지경의 회전, 불교의 마니차를 모두 상기시킨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