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자본과 과학윤리의 딜레마는 극복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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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자본과 과학윤리의 딜레마는 극복될 수 있을까
나가이 타츠유키 감독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 입력 : 2025. 07.07(월) 14:57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포스터.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영화 ‘쥬라기 월드(Jurassic World): 새로운 시작(Rebirth)’은 쥬라기… 시리즈로는 7번째 영화다. 30년이 넘도록 같은 소재의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관객들의 요구가 있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영화관은 다른 때보다 팝콘 내음이 가득했고 예상대로 부모 손 잡고 관람하러 온 아이들 관객이 많아 보였다. 아이들 관객이 많은 만큼 쥬라기 시리즈는 앞으로도 계속될 모양이다. 필자의 경우, LA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던 공룡뼈 모형 보는 정도의 관심이라 영화 ‘쥬라기 공원’(1993) 이후에는 시리즈를 감상하지 않았다. 그러다 손녀가 그림책 독서를 시작한 후로 공룡의 이름, 식성, 성질 등을 줄줄 외는 것을 보고 따라 알게 되었다. 공룡이 그렇게도 좋을까 하면서.

이렇듯 관객의 열광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영화에 어린 아이가 등장해야 한다. 그러려면 그 보호자나 가족이 있어야 자연스럽다. 델가도 패밀리의 등장은 우연을 가장한 합류로 스토리에 개입된다. 벨라(아역배우 오드리나 미란다)는 아동 관객에게 친숙함을, 테레사(배우 루나 블레이즈)와 자비에르(배우 데이비드 아이아코노)는 공룡놀이 과정을 거친 틴에이저에게 친근함을 그리고 아빠 루벤(배우 마누엘 가르시아 룰포)은 아이들 손 잡고 영화관에 온 보호자의 입장을 그린다.

인류의 신약 개발을 위해 조라(배우 스칼렛 요한슨)와 루미스 박사(배우 조나단 베일리) 그리고 거금을 투자하는 제약회사는 용병팀을 꾸린다. 육·해·공을 대표하는 공룡의 살아 있는 DNA 추출을 위해. 그들이 향하는 곳은 ‘지구의 허파’라 일컫는 남미 아마존에 가까운 적도 부근의 섬이다. 공룡 유전자 변형 실험을 위해 연구소를 설치했다 폐쇄된 이곳은 종래에는 유전자 괴물을 만들어내고 접근금지 구역이 되어 공룡의 새로운 생태계가 조성되어 있다.

쥬라기 시리즈나 시리즈를 거듭하는 스타워즈, 스파이더맨 등 영웅 영화에는 구성의 공식이 있다. 우여곡절이 동반된 숱한 모험 끝에 빌런의 방해를 무릅쓰고 주인공(영웅)은 목적(인류구원)을 달성하고 생존을 한다는. 시리즈가 거듭되어도 이 공식은 변함이 없다. 이제 더 세진 우여곡절의 강도를 덧칠하는 것으로는, 뻔하다 여기는 영리한 관객들을 설득할 수 없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이 영화의 부제는 그래서 의미가 없다.

영화에서 아름다운 장면으로 구성된 신은 브라키오사우르스 무리의 등장이다. 루미스 박사가 경탄해 마지 않아 하며 평화로운 채취가 가능한 이 장면은 장대한 음악과 함께 항공샷을 통해 거하게 전달한다. 이 신을 보며 단순하게 평화로움을 강요받는듯함은 왜일까. 아무래도 공식에서 벗어나지 않은 진부한 연출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관객의 눈을 중심으로 한 샷이었더라면 그 감동이 깊숙이 들어왔을 법도 했다. 자비에르가 처음 보는 정경에 절로 나오는 문구 한 구절을 얹고 델가도 가족의 눈에 비친 정경의 감동이 객석에 그대로 이입되던 신, 한밤중 자비에르의 등 뒤에서 벌어지는약육강식의 생태계 구현 등은 도리어 그 놀라움이 생생했다.

문제의 유전자 변형 괴물 공룡은 이 영화의 중심체다. 감독은 이 존재를 부분촬영으로 때론 그림자처럼 화면 밖에 남겨둔다. 이른바 스필버그 감독이 즐겨 썼던 절제된 공포 연출이다. 관객의 눈에도, 배우들의 눈에도, 카메라의 눈에도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거대 미스터리 악령 같은 공포감은 구조 헬리콥터를 씹어버리는 데서 존재를 드러낸다. 그런데 그 크기감이 불분명하다. 그 큰 덩치가 어느 신에서는 하수구에 몸을 집어넣기도 하는데, 여러 종이 등장한 것이라 해도 납득이 잘 안 된다.

영상이 주는 딜레마 외에 단순 구도의 스토리 행간에 담긴 딜레마가 더 크게 다가온다. 미국의 자본주의는 어느 만큼인가. 코로나 위기 국면에도 미국이 개발한 백신을 둘러싸고 기업의 탐욕과 국가적 거래 그리고 인류의 구원이라는 이중잣대를 과연 현명하게 조절하는지 우리는 시시각각으로 절박하게 주시해야 했던 경험이 있다. 유전자 조작이 가져오는 자가당착, ‘신을 흉내내서는 안 된다’는 전작 ‘쥬라기 공원’의 딜레마도 있었다. 자본과 과학윤리의 딜레마가 과연 단순 명쾌하게 ‘인류 모두에게 유익을 주고 평등하게 나누는’ 방식으로 극복해 나아갈 수는 있을까. 딜레마가 딜레마를 낳는 영화라 할밖에…. 백제예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