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금석 대한주택관리사협회 광주시회장 |
주택건설촉진법에서 ‘공동주택’ 용어가 출현한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의 일이다. 개정된 이 법이 1979년 1월 15일 시행되면서, ‘공동주택’이 법률 용어가 되었다. 이때의 ‘공동주택’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규모 이상의 련립주택과 아파트를 말한다.”라고 짤막하게 소개된다. 공동주택이 무엇인지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채 급조되었다. 마치 잘못 끼워진 억지 체인(chain)과 같았다.
주택건설촉진법을 대신한 지금의 주택법 제2조에서, ‘공동주택’이란 “건축물의 벽·복도·계단이나 그 밖의 설비 등의 전부 또는 일부를 공동으로 사용하는 각 세대가 하나의 건축물 안에서 각각 독립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는 구조로 된 주택”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그 종류는 주택법시행령 제3조에서 아파트·연립주택·다세대주택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공동주택이란 ①각 세대가 하나의 건축물 안에서 각각 독립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는 구조로 된 주택이며, 동시에 ②건축물의 벽·복도·계단이나 그 밖의 설비 등의 전부 또는 일부를 공동으로 사용하여야 한다. 요컨대, 하나의 건축물 안에서 독립된 주거생활 공간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시설 공간이 서로 구분되어 있다. 법의 정의가 그렇다. 전유부분과 공유부분이 한 건축물 안에 있다. 그러나 이것은 착시현상을 불러왔다. ‘한 건축물 안에서’, 사적 공간(전유)과 공적 공간(공유)으로 구분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소유적 관점에서 가능한 정의일까?
바로 이 구분으로 인해 공동주택의 갈등 해결은 애초부터 어려웠다. 중요한 것은 공동주택이 ‘하나의 건축물’이라는 사실이다. ‘하나의 건축물’에 ‘각각 독립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는 구조로 된 주택’이 여럿이 있다면, 이미 공공의 기능, 즉 ‘공공성’을 띄고 있어야 했다. 만약에 ‘하나의 건축물’ 안에서 ‘독립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는 주택’에 비중을 둔다면, 공동주택의 ‘공공성’은 사라져버린다. ‘공공성’이 없다면, 이 건축물을 공동주택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공동주택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는 이 착시현상에서 비롯되었다. 공동주택을 짓기 시작한 때부터 공동주택에서 ‘공공성’은 없었다. 공동주택이기 때문에 공공성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공공성이 제외된 공동주택이 공공재로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재정적 부담과 관리책임 부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대신 이 기막힌 착시현상을 통해, 이 곳에서 사는 입주자들에게 관리비 부담과 공동주택 생활 민원 피해를 한꺼번에 떠넘겼다.
‘공공성’의 부각뿐만 아니라, 국민의 대부분이 사는 공동주택에서 아무런 생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도 큰 문제였다. 아파트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가르치거나 배우려 하지를 않았다. 최근에서야 공동체 관련 사업이 이루어진다고는 하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식이다. 이제부터라도 튼튼한 바닥 다지기가 필요하다. 교육이다.
묘하게도, 짧은 아파트 역사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한국의 아파트 주거 문화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다. 한국에서 아파트 선호와 발전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특이한 현상이다. 층간소음문제, 주차문제, 재활용문제, 흡연문제, 관리문제, 의사결정문제 등등 많은 불리한 여건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거 공간으로서 아파트는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현상은 경이롭다.
우리의 아이들은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성장했다. 아파트에서 생활을 누리고, 삶을 마감할 것이다. 당연히 이곳에서 우리는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따라서 이곳의 운영과 관리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참여함으로써 공공성을 담아내야 한다.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주민들과 관리하는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야 한다. 공공성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한편, ‘공동주택 생활 교육’이 필요하다. 학교 교과 과정에 편성돼야 한다. 국민의 대부분이 사는 주거 공간이다. 아파트를 비롯한 공동주택은 이미 공공재로서 삶의 터가 되었다. 오히려 뒤늦은 감이 있다. 아파트 삶의 목적은 ‘행복’이다. 생활 교육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