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후원(後園)·임효경>자연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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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칼럼
배움의 후원(後園)·임효경>자연의 세계
임효경 완도중 前 교장
  • 입력 : 2025. 06.03(화) 13:48
임효경 완도중 前교장.
6월로 접어들었다. 날씨는 점점 더워지고, 감기 바이러스가 여기저기 발발해 나이 들고 심신이 약해 진 자들을 공격하고 있다. 거기다가 우리나라 새로운 대통령이 새로운 대한민국을 잘 만들어가야 할 텐데 사뭇 걱정이 태산이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 나누다가 결론은 늘 우리나라 정치이다.



어이, 어디 이 나라가 제대로 살아남겠는가?

정말 힘들어 못 살겠네. 코로나 때가 차라리 더 나았어.

차라리 자네가 나가서 좀 잘해 보소~~

아니, 무슨 소리 하는가?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녀~~

그 진흙탕에 들어가서 치고받고 싸우고 살아남는 사람이 대단한 것이제~~



나도 나른해 늘어지고 있다. 정년한 지 아직 일 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간다. 무등산 숲길은 졸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와 개안한 진한 초록색 옷을 입고 창창하다. 어두운 집에서 나오길 참 잘했다. 나 혼자 걱정한다고 천지가 개벽하겠는가? 연두가 변해 초록이 된 나무들은 뜨거워지는 태양에 반짝반짝 빛으로 답하고 있다. 그 초록빛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소쩍새도 울고, 꿩도 울고, 가끔 딱따구리가 나무둥지 찍는 소리도 난다. 숲길 가 꽃이 다 지고 이파리가 무성한 나무 가지 사이 작은 새들이 왔다갔다 분주하다, 찌~찍, 호로~로롱.

숲길은 옛날 옛적부터 나무꾼들이 다니던 좁은 길이다. 그 길을 따라 터벅터벅 산에서 내려와 개천을 따라 걷다 보면 배고픈 다리가 나오고, 그곳을 지나 걷는 길 끄트머리에 남광주시장이 있다. 거기에 내다 팔 장작을 이고 지고 힘들게 다녔을 길을 내가 지금 이렇게 걷는다. 생계를 유지해 주던 삶의 노선이 나에겐 힐링의 길이다. 그 노고에 감사하고 그 치열함을 느껴보고자 맨발로 걸어본다. 제법 깊은 숲길을 걸으면 더욱더 발바닥이 차갑다. 그 시절 버텨내 준 이름 모를 사람들이 지나다니던 길에 신발 하나 벗어보니, 그 신발 두께만큼 그들의 삶에 다가간 듯하다.

더 놀라운 것은 숲의 땅에서 올라온 풀들이다. 이렇게 다양한 풀들이 있었다는 것인가? 겨우내 땅속에 씨앗과 뿌리로만 남아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풀들이다. 마침내 초여름 때를 맞이하니, 자기 자리에서 앞다퉈 제 모습을 자랑하고 뽐내며 모두 다 피어있다. 이름 모를 풀들이지만 다 모양이 제각각 매력을 뿜어내고 있다. 엊그제 내린 비로 모두 싱싱하게 파릇파릇하다. 동그랗게 반질반질한 이파리, 뾰족하게 뻗은 이파리, 옹기종기 귀엽고 작은 솜털 가득한 이파리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걷는 숲길이 나를 다시 충만하게 한다. 아~ 모두 다 귀하고 사랑스러워. 모두 다 독특해. 저기 저 자리엔 저 풀이 딱 맞는 자리야. 모두 다 서로를 존중하며,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며 고만고만 어울려 잘 지내니 얼마나 평화롭고 얼마나 보기 좋은가.

너희가 우리 인간들보다 낫다. 제 이익 앞에서 인정사정없이 싸우며 서로를 치유할 수 없는 큰 상처를 주고받으며, 어떤 이는 억울해 죽고, 또 어떤 이는 미워 죽는 우리들이 참 부끄럽다. 잘살아 보라고 명문대학교, 특히 서울대학교를 보낼 것이 아니라, 너희를 연구하고, 너희의 마음을 배워야 할 것이야.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좀 가르쳐 주라.

그들이 바라보는 것은 그저 태양의 빛, 바람의 호흡, 목을 적셔 줄 빗줄기와 뿌리를 받쳐 줄 흙이다. 더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그저 자신에게 부여된 것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연 속에서 났다가 자연 속으로 돌아간다. 억지로 욕심낼 것도 없고, 억지로 얻어냈다고 또 그만큼 부요해 지지도 않는 것이 인생이다.

나도 바람처럼 왔다가 그들에게 감탄하고, 가끔씩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으로 나의 역할을 한다. 나의 역할은 미약하건만 그들이 주는 선물은 창대하다. 하릴없이 주변을 서성이는 나에게 생생한 현장의 중심을 허락한다. 무심하고 아무렇지 않은 나에게 아기다람쥐가 윙크를 해 주었다. 돌 틈에서 쪼르르 내 앞으로 달려 나와 까맣고 작은 눈망울로 날 쳐다보고, 두 다리를 올려 마주 잡은 모습 한번 보여주고 휙 달려간다. 깜짝 감동한다. 어머나, 숲은 살아있구나. 작은 동물들도 품어주고,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온갖 벌레들도 지 모습 그대로 살아가도록 허락해 주고 있구나. 우리도 그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 숲을 이뤄 간다. 이름 모를 풀들도, 저 작은 동물도. 그렇다면 나도 나 나름대로 이 세상의 중심이고, 나도 이 세상의 일원이 되어 아름다운 세상을 지켜내는 것이다. 나도 내 역할을 하고 있구나, 자신감을 갖게 한다. 나른함이 생생함으로 바뀐다.

친구들과 걷기를 하는 길가에서 이름 모를 어여쁜 꽃 무더기를 발견했다. 체력 단련 공원 화단가에 황금사철나무 앞에 가지런하게 나란히 피어있는 진한 분홍색 꽃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주변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꽃 검색을 해 보니, 분홍바늘꽃이었다. 이파리가 바늘처럼 뾰족했다. 더군다나 원산지가 우리나라였다. 아, 우리나라 꽃이라니 더욱 정이 가고 눈이 가서 우리 모두 감탄을 했다.

분홍바늘꽃, 너야말로 우리를 정녕 개안(開眼)하게 하는 대단한 꽃이로구나. 이처럼 너를 발견하고 눈을 크게 뜨는 기쁨이 있는 날, 나는 어깨가 펴지고, 그래? 그랬었구나~~!! 깨닫고 자존감 바짝 챙기게 됐단다. 우리 모두 그러한 자연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우리나라 만세, 새로운 대통령에게 분홍바늘꽃의 갈채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