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후원(後園)·임효경>엄마,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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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후원(後園)·임효경>엄마, 보고 싶어요.
임효경 완도중 前 교장
  • 입력 : 2025. 05.20(화) 17:43
임효경 완도중 前 교장
서울에 사는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언니,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울먹이는 동생 목소리에 언니는 말이 없다.

“나도~~”

5월이 깊어간다. 입하(立夏)에 활짝 핀다고 하는 이팝나무가 하얀 쌀밥을 온 천지에 내놓았다. 풍요롭고 풍성한 계절이다. 온 가족이 다투어 피어나는 꽃들 속에서 행복한 웃음 나눠야 할 5월이다. 5월은 분명 사랑의 계절 한가운데 있다. 집안 가득 빨간 카네이션 꽃바구니와 초록색 화분들 위로 5월의 환한 빛이 반짝거린다. 그런데, 무언가 없다. 특히 엄마가 없다. 내게 엄마가 필요하다. 엄마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 엄마는 어떤 마음이셨어요? 우리 키울 때, 왜 그리 말씀이 없으셨어요?

나의 엄마는 말씀이 적고 지혜롭고 부지런한 분이셨다. 현명한 아내였고, 5남매의 헌신적인 어머니였다. 아파도 평생 병원 신세 진 적이 없으시다. 언젠가 겨울밤 엄마는 단층 한옥 집 옥상에 올라가다 넘어지셨다. 항아리가 깨지고 장딴지에 깊은 자상을 입으셨다. 당장 아침에 하숙생들 밥을 해내야 했으므로 병원 갈 시간을 낼 수 없었겠지만 아마 병원 갈 염사도 없으셨을 것이다.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 듯 또 일만 하고 계셨다. 동네 약국에서 빨간 약 바르고 거즈 몇 장 반창고로 붙이고 끝이었다.

나도 결혼하고 두 아들을 키우면서,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했다. 워킹 맘으로 힘들고 부족한 살림이라 풍족하게 키우지 못했지만 쑥쑥 커가는 아이들로 마음만은 늘 풍성하고 뿌듯했다. 엄마도 그러셨을 것이다. 나도 엄마의 딸이라 그저 묵묵하게 내 일 해 나가면서, 내 자식들 먹이고 키우는 것에 주력했다. 옆으로 새어나갈 시간이 없었다. 아파도 병원 갈 틈이 없었다.

챙겨야 할 식솔이 늘어나면서, 어느새 엄마의 딸이 엄마의 존재는 뒷전이고 지 식구들만 챙기느라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무 말씀 안 하시니 나는 내가 잘하고 있는 줄 알았다. 내가 잘 살아가는 것을 무조건 원하신 줄 알았고, 또 그것이 효도인 줄 알았다. 우리 가족 여행길에 엄마 아버지는 없었다. 근사한 레스토랑에 근사한 식사 대접을 마다하시니 선심 쓰듯 고만고만한 음식과 얇은 봉투로 큰 사랑을 자그마한 내용으로 채워드렸다.

내 이름은 ‘효경’이다. 이름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난 마치 이름값을 다 하고 있는 것 마냥 너스레를 떨었다. 언니들, 오빠 그리고 동생 모두 서울 대처로 떠나가고 나만 광주에 남아 친정 부모님 가까이 살았다고. 또 큰 형님이 서울에 계시니 명절마다 우리 집에서 시부모님 모시고 식사를 준비하고 가족모임을 하고 있다고. 친정아버지의 생의 마지막 날, 먼 퇴근길에서 돌아온 막내딸이 당신의 뻣뻣해진 몸을 한번 만져드리자 ‘휘~~!!’ 마지막 숨을 내쉬며 하늘나라 가셨다고. 위급하시다는 소식에 제일 먼저 달려가 넋이 떠나가시는 어머니를 품에 안으니 ‘둘째, 왔냐?’하시며 마지막 숨을 거두셨다고.

자식은 부모에게 서운한 것만 생각하는 반면, 부모는 자식에게 서운하게 한 것만 생각한다. 엄마, 아버지의 막내딸인 나도 서운한 것이 많았다. 나보다 언니를 더 어여쁘다 하는 것 같았다.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니? 교복조차 새것으로 해 주지 못하는 비루한 살림이 아버지 탓이라 생각했다. 좌골신경통으로 허리가 꼬부라지고 다리의 통증으로 끙끙 앓으면서도, 지방에서 근무하는 큰 아들 걱정에 늘 노심초사하시는 엄마가 싫었다. 자식들 성장하고 가업을 일으켜 살만해졌는데, 요양 병원에 누워계시다니, 그것도 정말 서운했다. 이제는 근사한 식사에 근사한 여행을 함께 할 수 있는데, 기다려주지 않으시고 당신들 갈 길 그저 서둘러 가시고 저 멀리에 계시다니, 참 속수무책이었다. 외로웠다. 나만 외롭게 하다니….

전세(戰勢)가 바뀌었다. 이제 내가 그러한 부모가 됐다. 내 아들들에게도 이러저러한 서운함이 있었겠지만, 장성했다. 자신들의 가정도 이뤘다. 어여쁜 손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지경이다. 내가 이럴 줄 몰랐다. 곧 손자도 이 땅에 우렁찬 울음을 낼 것이다. 대를 이을 장손이라 또 남다른 기다림으로 설렌다. 그런데, 나는 어찌할 줄 모른다. 어떻게 그들을 대해야 할지, 어떻게 그들을 도와야 할지, 그저 눈치만 보고 있다. 이렇게 하면 저렇게 서운해하겠지? 저렇게 하면 이렇게 오해를 하겠지? 아이들은 다 계획이 있는데, 이 구세대가 말을 하면, 잔소리일 텐데... 나 어떡해?!!! 서로 자신들 가정의 틀을 세우느라 정신없는데 내가 가만히 있어주는 것이 최고의 비책인 것만 같다. 아무 소리 할 수 없다. 그저 조용히 기도할 뿐이다. 그저 기다릴 뿐이다.

하나님, 제 소원하나 들어주세요. 꿈속이라도 좋으니 하늘나라 계신 우리 엄마 아버지 한번 만나게 해 주세요. 그 앙상하게 뼈만 남은 가슴을 껴안아 드리며 드릴 말씀이 있어요. 엄마, 미안해요. 아버지 죄송해요. 엄마 마음 이제야 알겠어요. 아버지 얼마나 힘드셨어요?

감사합니다. 그저 고맙습니다. 왜 진즉 그 마음 몰랐을까요? 영민하다고 주변에 늘 자랑하셨죠? 아니에요. 이런 바보 멍청이가 없어요. 지가 겪고 나서야 아는 것이 어디 있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