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일 광주 동구 전일빌딩 245에서 항쟁 당시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데이비드 돌린저(David L. Dolinger)씨가 광주 명예시민으로 선정돼 고광완 광주시 행정부시장(왼쪽)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
광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14일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245에서 5·18기념기획전 ‘증인: 국경을 넘어’의 일환으로 돌린저 씨를 초청해 기자회견을 열고, 외국인의 시선으로 본 5·18민주화운동의 현장을 증언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당시 전남 영암에서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 중이던 돌린저 씨는 광주에서 발생한 계엄군의 강경 진압과 헬기 사격 등을 직접 목격했다. 그는 시민군의 일원으로 외신 기자들의 통역을 돕고, 부상자 구조, 감청 업무 등 다양한 활동을 수행했다.
귀국 이후에는 유엔에 한국 인권친해 보고서를 제출하고, 지난 2022년에는 ‘나의 이름은 임대운’이라는 책을 출간해 광주의 진실을 알리고자 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헬기 사격으로 추정되는 총상을 입은 시민을 직접 목격했다”면서 “당시 건물 높이를 고려해도 총격은 명확히 육안으로 식별됐고, 사용된 연성탄은 국제적으로 금지된 탄환이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당시 정부의 외신 통제를 우회하기 위해 통역 가능한 평화봉사단원들과 통역을 통해 광주의 진실을 외부에 알리고자 노력했다.
돌린저 씨는 “시민군은 정부 통제를 받는 통역을 신뢰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일했다”고 말했다.
돌린저 씨는 옛 전남도청에 초대돼 시민군 활동에 참여했고, 그 자리에서 윤상원 열사와의 깊은 인연도 기억했다.
그는 “윤상원 열사는 외국인 참여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그는 광주시민의 행동을 하고 있다’며 나를 감쌌다. 그의 카리스마와 리더십은 인상 깊었다”고 회고했다.
5·18 항쟁에 대한 개인적인 아쉬움을 묻는 질문에 그는 울먹였다.
돌린저 씨는 “항쟁 마지막 날 도청 앞에 나가지 못한 것이 평생의 후회로 남는다. 그날의 참혹한 장면을 다시 보고 싶진 않지만, 거기 있었어야 했다”며 “만약 희생이 필요했다면 기꺼이 했을 것이다. 죽더라도 보람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정치는 시민의 삶을 대변해야 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면서 “대한민국은 여러 측면에서 세계의 본보기가 되도 있고, 앞으로는 세계시민으로서의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광주시는 돌리저 씨의 헌신과 공로를 기려 그를 ‘광주 명예시민’으로 위촉했다. 돌린저 씨는 “광주시민은 나에게 가족이다. 명예시민이 되어 진심으로 감사하고 영광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유철 기자 yoocheol.je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