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문화 독점' 기득권에 침묵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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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취재수첩>'문화 독점' 기득권에 침묵 안돼
박찬 취재2부 기자
  • 입력 : 2025. 05.12(월) 16:32
  •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
박찬 취재2부 기자.
선거철마다 정치인들이 지역 유세를 벌일 때 하는 단골 공약이 있다. 수도권과 지방 간의 불균형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서울과 지역의 균형 발전은 단순히 경제뿐 아니라 문화예술 향유 차원에서도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오랜 주장에 유의미한 첫걸음이 될 수 있는 정책이 얼마 전 베일을 벗었다. 바로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문화한국 2035’이다.

이 정책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건 국립예술단체·기관의 지역 이전 전략이었다. 발표와 동시에 문체부는 서울예술단을 내년 상반기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으로 이전을 결정했다.

광주광역시는 그간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자부하며 광주비엔날레, ACC 등 양질의 문화 콘텐츠로 시민들에게 예술 향유 기회를 제공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인식이 지역 내에서 팽배했다.

특히 전문성과 파급력을 고루 갖춘 국립예술단체의 지난 5년간 공연은 광주 21회(0.5%), 전남 26회(0.6%)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서울에서의 공연은 3656회(86.3%)에 달했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단체가 그동안 지역을 얼마나 소홀히 대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러한 극단적 문화 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립예술단체가 지역으로 전면 이전해 편중된 문화 생태계를 쇄신할 필요가 있다는 게 다수의 주장이었다.

서울예술단의 광주 이전이 결정된 후 지역과 예술 각계에서는 환영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단체 측의 반발도 거셌다. 공공 책임을 감당해야 할 기관이 지역 이전에 반기를 들며 문화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실제 서울예술단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문체부에 이전 발표를 철회하라고 요구하는 성명서가 버젓이 뜨고 반대 서명운동 등으로 조직적 반발을 이어가고 있다.

중앙 주요 언론들도 사설을 통해 서울예술단의 이같은 반발에 힘을 싣는 글들을 게재해 마치 서울 문화계·언론 유착의 행태를 자행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지역 내에서 이런 서울의 여론전을 통한 맹공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다. 기득권은 가지지 못한 자들의 침묵이 길어질 때 더욱 견고해지는 법이다.

지역민들은 오랜 기간 수도권의 시민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문화 복지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국가가 제도적 장치로 이를 타개하는 것은 의무이며 이에 공공 책임을 다하는 것은 국립기관의 책무다.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 서울 중심의 불균형한 독점 구조에 언제까지 침묵으로 일관해야 하는가. 반대 측의 주장에 대항해 더 강한 타당성을 내세우며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와 복지를 지켜내야 하는 것 또한 지역 언론과 관계자들의 사명이다.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