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창·추교준>사회대개혁의 시간, 시민의 손으로 교육의 대전환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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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창·추교준>사회대개혁의 시간, 시민의 손으로 교육의 대전환을 만들자
추교준 지혜학교 철학교육연구소장
  • 입력 : 2025. 04.20(일) 18:19
추교준 지혜학교 철학교육연구소장
지난 글쓰기 수업 시간에 한 청소년이 제출한 글의 한 대목이다. (그 사람은 대안학교에서 5년간 뛰어다니다가 지난 겨울, 고3이 되어 처음으로 논술학원에 등록했었다.) “나는 논술이 내 생각이 들어가는 글쓰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두 달간 내가 배웠던 논술은 예시 답안을 얼마나 비슷하게 쓰냐의 차이였다. 내가 써야 하는 모범답안은 이미 존재한다. 그러면 나는 대체 뭘 써야 하나. 단순하다. 내 생각은 일체 제외하고, 그 답안과 최대한 비슷하게 쓰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작성한 답안의 내용은 다 똑같다. 그저 단어 하나, 문장 뉘앙스의 미세한 차이인 것이다. (중략)

난생처음 해보는 입시 공부에 이상함을 느낀 나는 친구에게 물어봤다. 내가 하고 있는 공부가 공부가 맞는지 모르겠다고. 교육의 본질은 이게 아니지 않냐고. 시험지 안에서만 놀아나는 것이 아니라 이 개념들을 내 삶에 어떻게 적용하고 생각해 나갈지 알려주는 것이 교육 아니냐고. 내 물음에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나도 중학교 때까지는 그런 고민을 좀 했었거든? 근데 이제 그런 고민 안 해. 해도 바뀌는 게 없어. 그냥 공부하는 이유고 뭐고 닥치고 죽어라 내신 챙기고 시험공부하는 거야. 결국 성적 잘 나오는 애들은 그런 고민 안 하고 그 시간에 계속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는 애들이거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 한국 사회는 답이 없다고. 아니었다. 답이 있었다. 단 하나의 답만이 있기에 노답인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 답은 순전히 각자의 이익만을 위해 사용된다.”

수십 년간 되풀이되는 풍경이다. 우리 모두는 왜 이 잔인한 구조에 이토록 무감각한가. 매년 특정 언론에서는 이런저런 기준으로 대학을 한 줄로 세운다. 그러고는 입시 경쟁을 통해 청소년들을 한 줄로 세운다. (요즘에는 의대가 맨 앞줄을 차지한다) 그 줄의 순서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정해진다. 계급을 구분하는 거대한 행사가 매년 되풀이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오랜 시간 학벌체제라는 이름의 구조적 폭력에 의해 장악되어 왔다.

이것을 과연 교육이라 할 수 있을까? 여기에 삶을 생각하고, 배운 것을 적용해 보는 일은 어디에 자리 잡을 수 있을까? 학교는 더 이상 아이들이 삶을 배우는 곳이 아니다. 교사는 입시 기술자가 되었고, 청소년들은 마음속으로 서로를 경쟁자로 여긴다. 생각과 질문이 사라졌고, 우정과 협력은 흩어졌다. 남는 건 불안과 소진뿐이다.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이 사회는 어떤 곳이며,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등의 질문은 공부에 방해된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잘 살기 위해 공부하는데, 정작 삶에 대한 생각이 공부에 방해가 된다니!

미래 사회를 대비하기 위해 입시 제도를 개선하겠다. 수능 과목을 조정하겠다. 고교학점제를 확대하겠다. AI 교과서를 도입하겠다. 정부는 언제나 이런 말만 되풀이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문제는 틀렸고 해법은 엉뚱하다. 이 지옥도를 만든 것은 단지 입시 선별 방식이 아니라, 그 시험에 모든 것을 걸도록 만든 교육체제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미미한 기술적 조정이 아니라 ‘대전환’이다. ‘새로운 상상’이다. 사람을 살리는 교육을 하자. 다시 사람이 태어나는 사회를 만들자. 학벌체제를 철폐하고, 입시경쟁교육을 해체하자. 대학에 가지 않아도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들자.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시대에 노동자들이 일하는 일터를, 부품처럼 소모되는 곳이 아니라 계속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배움터로 만들자.

이 거대한 노력의 출발은, 지금 이 구조가 얼마나 잔혹한지, 그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 똑바로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윤석열, 김건희를 포함한, 저 내란 잔당들의 비루한 몸부림을 보라. 저 모습이 한국 교육의 결과다. 처참하지 않은가? 저들이 권력의 끄트머리에서 자기 살겠다고 허둥지둥하는 모습은, 청소년들이 교실 책상 앞에서 자기 생각을 지우고 오직 시험 문제 하나 더 맞히겠다고 아등바등하는 모습과 정확히 겹친다. 저들을 몰아내려면 교육을 바꾸어야 한다.

이런 거대한 이야기 뒤에, 한낱 개인에 불과한 자신이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묻는 나의 학생에게, 여기,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교육대전환>을 소개하려 한다. 지난 4월 4일, 윤석열 파면 선고에 손뼉을 치다가 ‘내란 이후의 교육을 더 적극적으로 상상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없을까 검색해보니, ‘한국교육네트워크’에서 지난 1월,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교육대전환> 운동을 제안했었다. 이 운동에 관심 가지고 눈여겨보자. 할 수 있다면 참여해서 함께 의견을 내고, 필요하다면 뜻이 있는 시민들이 힘차게 움직여서 광주·전남 지역에서도 교육대전환을 위한 토론회를 열자. 지금은 사회대개혁의 시간이다. 시민의 이름으로 내란 이후의 교육을 크게 상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