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땅꺼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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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땅꺼짐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국장
  • 입력 : 2025. 04.16(수) 16:49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국장
“기우(杞憂)에 불과하다.” 앞일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다. ‘열자(列子)’, 천서편의 고사, 기인지우(杞人之憂·기나라 사람의 걱정)에서 나온 말이다. 어떤 중국 기나라 사람이 있었는데,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해 잠도 못자고 음식도 먹지 못했다. 이를 보다 못한 지인이 하늘은 기운으로 가득 차 있어 해와 달, 별이 떨어지지 않고, 땅 역시 기운이 뭉쳐 이뤄진 것이니 꺼지지 않는다고 충고한 데서 유래됐다.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 등을 표현할 때 쓰는 천붕지괴(天崩地壞)(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라는 말도 기우에서 나왔다. 그만큼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을 강조할 때 쓰는 고사성어다.

하지만 이제는 쓸데없는 걱정이 ‘기우’가 아닌 시대가 됐다.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에서 땅이 꺼지고 있다. 지난 14일 부산에선 이틀 연속 땅꺼짐(싱크홀)이 발생했다. 11일에는 경기도 광명시 신안산선 지하터널 공사 현장에서 대형 붕괴사고가 발생했다. 서울 마포구 애오개역 인근 도로가 꺼지고, 강동구 명일동에선 지름 20m의 대형 싱크홀이 발생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크고 작은 땅 꺼짐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지금 우리 땅 밑은 안전한가?

땅 밑은 도시관리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지상 가용토지와 도시기반시설의 한계를 해결할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인구밀도가 높은 대도시일수록 그렇다. 도시팽창 문제를 풀기 위해선 지하공간을 넓혀야 한다. 지하철과 지하상가, 지하주차장, 지하도로 등은 일상에서 자주 마주하는 공간이다. 도시를 유지하는 기반시설들도 지하에 있다. 상하수도 시설과 전기, 통신, 가스, 열수송관, 그리고 방재시설인 지하 저류조나 빗물배수터널 등이 도시를 겹겹이 떠받치고 있다.

그런 땅 밑에서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다. 블랙홀처럼 갑자기 꺼져 지상의 물체를 집어 삼키고 있다. 존재조차 잊고 사는 땅 밑의 불안감, ‘땅꺼짐 포비아’가 확산되고있다. 노후관 누수, 지하 건설로 인한 지하수의 다량 유출, 지반침하 현상의 가속화. 땅 아래의 안전 사각지대가 넓어지고 있다는 경고다. 땅 위엔 매년 폭우와 폭설이 쏟아져 도심기능을 마비시키고 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 같은 기록적인 양이다. 엊그제는 봄과 겨울이 뒤섞인듯, 4월 벚꽃 위에 눈이 쌓였다. 극단적인 기후변화가 일상 속으로 뿌리내리고 있는 것일까. 이 모든게 ‘기우’였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