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임스 맨골드 감독 ‘컴플리트 언노운’ 포스터.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
![]() 제임스 맨골드 감독 ‘컴플리트 언노운’.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
가수 밥 딜런의 젊은 시절을 마치 다큐멘터리인 듯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다른 배우들 역시 자신의 육성으로 그 시대의 가수와 노래를 못지않게 구현해서 슈퍼 리얼리즘적 감동이었다. 1961년, 자신의 우상인 포크송 가수 우디 거스리를 만나기 위해 미네소타에서 뉴욕으로 무작정 상경한 19세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 그의 주머니에는 달랑 2달러뿐이다. 우디 거스리는 신경퇴행 질환인 헌팅턴 무도병으로 투병중. 밥은 어렵지 않게 우디의 병실을 찾는다. 복도에 울리는 기타 반주의 포크 송을 따라가면 문병중인 피트 시거(배우 에드워드 노턴)가 우디를 위해 노래를 부르는 병실에 다다르게 되므로. (이 노랫소리에서 필자는 1970년대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던 윤형주의 음색처럼 들려 왈칵 친근함부터 느껴졌다.) 병실에서 밥은 우디를 위한 자작곡 ‘Song to Woody’를 연주하고 피트는 밥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본다. 피트 덕에 무대에 서게 되고 앨범도 내는 밥, 공연마다 놀라운 음악으로 주목을 받고 커버곡이 아닌 자신의 곡으로 앨범을 발매하자 밥은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다. 뉴욕 타임즈 기사 중 ‘옷솔기 사이로 그의 재능이 뿜어져 나오는’이라는 극찬의 표현이 재미있었다.
거장 뮤지션, 싱어송라이터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밥은 한밤중을 불사하고 작사 작곡을 하는가 하면 아침에 일어나 눈꼽도 떼지 않은 채 기타부터 집어든다. 그곳이 어디건 상황이 어떻든 무관하게 무연하게 그저 기타를 집어들고 음악에만 집중할뿐이다.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를 사이에 두고 소련과 대치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고 1963년의 케네디 대통령의 저격과 사망 사건 등등을 그는 음악으로 대변한다. 당시의 포크송 가수 태반이 그러했다. 조안 바에즈(배우 모니카 바바로)며 피트 시거 역시 노래하는 인권운동을 벌였다. 자유를 추구하는 미국인들의 열광 포인트를 그들은 가사와 멜로디에 담았던 것이다. 조안 바에즈와 흡사한 목소리로 그녀를 구현한 배우 모니카 바바로도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 가수로 치면 박인희 비스름한 맑고 청아한 음색이다. 그런데 밥 딜런은 우리나라 가수 중 닮음꼴을 찾기 어려울 만큼 대체불가한 독창적 음색을 가졌다. 그런 독특함이 60년 음악인생을 이끈 기반이었을는지도 모르겠다. ‘컴플리트 언노운’이란 타이틀은 밥 딜런의 무명시절을 얘기한 것이 아니고,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밥 딜런이지만 실상은 잘 알 수 없었던 그의 음악적 고뇌, 내적 갈등, 시대를 향한 저항정신,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새로운 음악 장르를 열었던 혁신적 창의성 등을 함의한다. 밥은 세 번째 참가하게 된 1965 뉴포트 포크송 페스티벌에서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락(Rock)’ 공연을 시도함으로써 자신의 음악에 대한 확신과 음악적 자유를 향한 저항을 펼친다. 이로써 시대적으로 ‘락 포크’ 장르를 개척한 음악적 전기를 이루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이라 “가롯 유다”라며 포크송의 배신자 취급을 받았을 만큼 대중에게는 충격적이었다.
예명 ‘밥 딜런’은 본명인 로버트의 애칭인 ‘밥’ 그리고 영국 시인 ‘딜런 토마스’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는 10대 때부터 시인이었다. ‘노래하는 음유시인’이 제격이었을만큼 그의 자작곡 가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훑고 지나간다. 그가 75세이던 2016년 스웨덴 한림원은 ‘훌륭한 미국음악의 전통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냈다’는 평가와 함께 노벨문학상을 수여했다. 가수로서는 최초의 기록이다. 드로잉과 회화 서적 6권을 출판하고 주요 국립미술관에 그의 그림이 걸릴 만큼 화가로서 할동을 하기도 했던 밥 딜런은 예술 전반에 걸쳐 탁월한 감성을 갖춘, 분명 비범한 인물이다. 3일 열린 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티모시 살라메는 비록 남우주연상은 실패했지만 영화를 보면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밥 딜런이었다. 출연하는 영화마다 자신의 배역을 충실히 수행하는 20대 젊은 배우에게 경의를 표한다. 백제예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