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무관의 제왕’ 손흥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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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무관의 제왕’ 손흥민
최동환 취재2부 선임부장
  • 입력 : 2025. 02.10(월) 18:06
최동환 취재2부 선임부장
공자는 천하의 도덕이 무너지자 붓을 들었다. 요, 순, 우, 탕, 문, 무, 주공으로 이어온 왕도정치가 무너지고 신하가 임금을, 자식이 아비를 시해하고 권력을 찬탈하는 세상을 더 방치했다가는 명덕(明德)의 세상은 참으로 요원하다고 여겨 작심하고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역사서를 ‘춘추(春秋)’라 일컫는다.

공자가 유교 경전 춘추를 쓰자 당대의 폭군들이 떨었다. 그의 붓 끝에서 임금답지 못한 임금은 강등되었고 권력의 숨은 악은 그 오명이 만고에 전해졌다. 엄중하게 역사를 기록하는 공자의 붓끝은 그만큼 위용을 자랑했다.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공자는 비록 평생 동안 높은 벼슬을 오래 하지도 못했고, 현실에 좌절하고 떠돌아 다녔지만, 그의 가르침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떠 받든다”고 평가하며 공자에게 무관지왕(無冠之王)의 칭호를 줬다.

‘무관의 제왕’이란 표현이 심심찮게 쓰인다. 이 말은 ‘왕관이 없는 제왕’이라는 뜻으로, 직접적인 권력은 없지만 영향력이 강력한 존재에게 붙여지는 칭호다.

보통은 언론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자들을 이르는 말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된다.

스포츠 분야에서는 뛰어난 실력을 가졌음에도 우승컵을 단 한번도 들어올리지 못한 선수에게 ‘무관의 제왕’이란 표현을 쓴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캡틴’ 손흥민(33·토트넘)은 아시아 선수 최초로 프리미어리드 득점왕에 오르는 쾌거를 달성하며 세계 최정상급 실력을 자랑하지만, 프로 데뷔 이후 클럽 경력과 국가대표 경력을 통틀어 우승을 경험한 적이 없다.

2015 아시안컵 준우승, 2016~17 프리미어 리그 준우승, 2018~19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2021 리그컵 준우승이 최고 기록이다. 2018 아시안 게임 축구 금메달이 있으나, 아시안 게임은 연령별 대회라 정식 A매치가 아니고 그 권위도 낮아 축구계에선 어엿한 우승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손흥민은 올해도 소속팀인 토트넘이 최근 3일간 2개 대회에 탈락하면서 무관의 기운이 드리우고 있다. 토트넘은 10일(이하 한국시간) 영국 버밍엄의 빌라 파크에서 열린 2024~2025시즌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4라운드에서 아스톤 빌라에 1-2로 졌다. 앞서 지난 7일 리버풀과 잉글랜드카라바오컵(리그컵) 준결승 2차전에서 0-4로 크게 지며 우승에 실패했다.

이제 토트넘이 우승 가능한 대회는 16강에 진출한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UEL)뿐이다. 리그 부진에다 FA컵·카라바오컵 탈락으로 우승 도전이 좌절된 손흥민이 유로파리그에서 우승컵을 품에 안고 ‘무관의 제왕’에서 탈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