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정성현> 트라우마 고려하지 않은 ‘재난보도준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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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정성현> 트라우마 고려하지 않은 ‘재난보도준칙’
정성현 취재1부 기자
  • 입력 : 2024. 12.30(월) 18:35
정성현 취재1부 기자.
한 해 마무리를 앞두고 있어서는 안될 최악의 참사가 발생했다. 이번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179명 고인들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다.

지난 2022년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사고에 이어 2년 만에 마주한 ‘지역 참사’에 언론인으로서의 사명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매 재해재난 사고마다 기자들은 앞다퉈 ‘속도전쟁’을 다툰다. 또 어떠한 실마리라도 하나 건지기 위해 무자비한 취재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이번 제주항공 참사에서도 그 모습은 여과없이 보여졌다.

모 중앙지와 지역지는 지난 29일 사망자의 이름·소속 등 개인 신상정보를 온라인·지면에 노출했다. 특히 해당 중앙지는 이번 사고의 원인을 ‘무안공항의 짧은 활주로’로 들며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항의가 이어지자 뒤늦게 수정·삭제조처 했지만 이를 본 많은 이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기레기는(기자+쓰레기) 여전하다’는 지적을 했다.

유가족들은 현장에서 무모하게 들이미는 언론의 카메라·마이크에 ‘진절머리 난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이들의 피울음과 통곡은 모자이크 없이 유출됐고 소위 ‘조회수 장사’의 희생양이 됐다. 수많은 피해자들이 미디어 횡포에 ‘2차가해’를 받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박한신 제주항공참사유가족협의회 대표는 30일 “유족 개별 인터뷰를 자제해 달라. 유족 대부분이 (트라우마 등)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협조를 당부했다.

한국기자협회 소속 기자들은 협회 내 재난보도준칙을 통해 ‘비윤리적인 취재를 금지하고 무리·선정적 보도 경쟁을 자제하라’는 내용을 적용받는다. 특히 제18조 피해자보호는 ‘보도과정에서 사망자와 부상자 등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사람들의 의견이나 희망사항을 존중하고, 그들의 명예나 사생활, 심리적 안정 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번 참사에서는 이 준칙이 제대로 적용되지 못했다.

내년 1월4일까지 국가애도기간이 진행된다. 최소한 이 기간만이라도 ‘지역·정치적 갈라치기 논조’는 지양돼야 한다. 또 무조건적인 추측보다 명확한 원인·책임 규명을 위한 보도에 힘써야 한다.

기자로서 사회적 재난을 책임있게 애도하는 것은 단순히 사건 자체를 짚는 것이 아닌, 비극이 남긴 구조적 문제를 묻고 이를 바로잡도록 이끄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희생자에 대한 최선의 예우임을 기억해야 한다.

또다시 소중한 목숨이 황망하게 뺏겨서는 안 된다. 존경하는 기자 선배를 비롯해 희생자 모두의 영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