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지붕에서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는 옛 석현정미소. 옛사람의 삶과 이야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
커피 열매. 콩알보다 큰 열매는 처음 연녹색에서 하나씩 빨갛게 익어간다. |
커피 시장도 빠르게 성장했다. 국내에서 영업하는 커피 전문점만 2만8000여곳에 이른다. 크기도 갈수록 대형화 추세다. 지난해 커피 관련 매출이 11조원을 넘었다는 보도도 있다. 가히 커피 전성시대다.
‘대나무 고을’ 담양에도 커피 전문점이 많다. 현재 300여곳 넘는 것으로 추산한다. 군 단위 지자체 가운데 전국에서 가장 많다는 게 정설이다. 커피농장도 있다. 담양군에서 아직껏 커피 축제를 하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그윽한 커피향 넘실대는 커피마을로 간다. 커피 전문점 많고, 커피농장도 있는 곳이다. 오랜 역사 지닌 금성산성을 마주하고 있는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 석현리다. 석현리는 석현, 무림동 2개 마을로 이뤄져 있다. 예부터 돌이 많았다고 돌고개, 석현(石峴)이다. 무림동(茂林洞)은 풍수지리에 따른 지명이다. 뒷산의 모양새가 누워있는 호랑이를 닮았고, 호랑이는 숲에서 살아야 한다는 데서 유래했다.
석현마을에 행정복지센터, 농협, 파출소, 우체국 등 각급 기관이 자리하고 있다. 1923년 문을 열어 100년 넘은 역사 지닌 금성초등학교도 여기에 있다. 금성면 소재지다. 담양읍에서 순창으로 가는 길목이다. 사철 많은 여행객을 불러들이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도 이 마을을 지난다. 메타길 주변에 소문난 맛집과 커피 전문점이 많다. 담양별미 대통밥과 떡갈비, 청둥오리고기 전문점이 있다. 담양커피농장도 있다.
커피농장엔 커피나무가 자라고 있다. 커피 열매를 언제라도 볼 수 있다. 봄날엔 새하얗게 꽃이 핀다. 커피 열매를 따고, 볶아보고, 갈아서 내려 마시는 로스팅 체험도 가능하다. 커피꽃차, 커피잎차, 카스카라차도 맛볼 수 있다. 카스카라차는 과육, 열매 살로 만든다. 커피잼도 별미다.
“이쁘게 크고 있죠? 기온이 낮으면 나무가 죽습니다. 너무 따뜻하면 열매를 맺지 못해요. 적정 온도와 일조량을 맞추고, 환기를 잘 시켜야 합니다. 담양에서도 커피나무가 이렇게 잘 자라고 있어요.”
임영주 담양커피농장 대표의 말이다. 임 대표는 30년 넘게 신문기자로 일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커피나무 키가 크다. 몇 년 만에 성인 키만큼 자란다. 이파리는 반드럽다. 새로 나오는 잎은 봄날 연한 찻잎처럼 후부드럽게(닿는 느낌이 딱딱하거나 거칠지 않고 매우 매끈함) 생겼다. 순백의 꽃향은 보드랍다. 열매는 3년 이상 자란 나무에서 열린다.
커피 열매는 체리를 닮았다. 열매가 콩알보다 크고, 새끼손가락 마디 하나만 하다. 빛깔은 연녹색에서 빨갛게, 진홍빛으로 익어간다. 잘 익은 열매에서 달달한 맛과 향이 묻어난다. 탐스럽게 생겼다. 임 대표는 여기서 생산한 커피에 ‘골드 캐슬(Gold Castle)’이란 이름을 붙였다. 농장이 자리한 금성면과 연결시켰다.
“묵은쌀보다 햅쌀로 지은 밥이 훨씬 더 맛있죠? 커피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일리지, 이동거리가 길면 신선도가 떨어지기 마련이에요. 커피도 다른 농작물과 똑같습니다. 신선한 게 더 맛있어요. 커피 좋아하는 분들은 금방 알고, 또 느낍니다.”
임 대표가 커피농장을 하는 이유다. 오래전부터 자신이 꿈꾸던 커피였다. 소비자들한테도 신선한 커피를 전하고 싶었다. 커피 농사가 궤도에 오르자, 임 대표는 가공과 체험을 버무렸다. 이른바 6차 산업이다. 커피인문학, 커피식물학 강연도 곁들였다. 입소문을 타고 커피 애호가와 여행객 발길이 이어졌다. 커피농장은 지금 담양의 새로운 관광자원이 됐다.
마을에 소소한 볼거리도 있다. 커피농장 앞에 있는 옛 정미소가 정겹다. 양철지붕에서 세월의 더께가 묻어난다. 세로로 길게 ‘석현정미소’라고 쓴 나무 간판도 소박하다.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의 삶과 이야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머지않아 근대문화유산이 될 정미소다.
석현정미소도 임 대표의 것이다. 커피박물관으로 꾸미거나 카페로 쓰려고 샀다. 임 대표는 가을 한 철만 방아를 찧는다. 대형 미곡종합처리장에 치이고, 방아 찧을 인력도 없어서다. 그땐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돌리지 않을 수가 없어요. 동네 어르신들이 ‘자식한테 보낸다’고 방아를 찧어달라 하시는데…. 달리 생각하면 자식들한테 보낼 쌀만 찧는 정미소죠. 부모님 정까지 가득한 쌀을 생산하는 곳입니다. 하하.”
커피농장 뒤편 영산강변에 마을숲도 있다. 느티나무와 팽나무 고목 30여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보호수로 지정됐다. 강변에 ‘소나기 마을학교’도 있다. 소통과 나눔, 기쁨의 첫 글자를 따 ‘소나기’로 이름 붙였다. 담양교육지원청이 지정한 마을교육 공동체다. 작은 버스를 고쳐 만든 버스도서관도 멋스럽다.
“쇠락하는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습니다. 커피가 마을주민 일거리를 만들고, 미래 희망도 주면 좋겠어요. 그 일에 매진하려고 합니다. 고향 어르신들과 함께 살아야죠.” 커피와 함께 인생 2막을 꾸리고 있는 임 대표의 큰그림이다.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