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지혜 기자 |
1993년 정치 개혁을 주장하며 자민당을 탈당했다가 1997년 재입당한 그는 당내 주류를 향한 쓴소리도 서슴지 않으면서 좌우명과 같은 비주류의 길을 성큼성큼 걸어왔다. 특히 극우 성향의 아베 신조 전 총리와는 정적으로 꼽히는데, 번번이 아베와의 경쟁에서 고배를 마시다가 마지막으로 여겼던 이번 선거에서 드디어 총리직을 거머쥔 것이다.
그의 취임이 한국에서 비교적 환영 받는 이유는 그동안 이시바가 던진 메시지들 때문이다. 이시바는 지난 2019년 한국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우리나라가 패전 후 전쟁 책임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은 것이 많은 문제의 근저에 있다”며 “그것이 오늘날 여러 가지 모양으로 표면화하고 있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이어 태평양 전쟁을 ‘일본의 침략 전쟁’이라고 지적하거나, 피해국인 한국과 중국이 납득할 때까지 일본이 사과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발언하고,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2차 세계대전 A급 전범들을 분사하기 전까지는 참배할 수 없다고 밝히는 등 과거사 문제에 일본의 책임을 인정하는 몇 안 되는 인물이라는 평가다.
다만 국회의원 시절 그의 친한적 발언만으로 한일 과거사에 대한 사죄가 이뤄지거나 관계에 엄청난 발전적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는 것은 섣부르다는 지적이다. 방위력 강화 기조나 독도 문제에 대해선 일본 영토라고 주장해 오는 등 여전히 마찰을 빚을 소지도 충분하다. 이시바에 대한 과한 호감으로 오히려 ‘新 친일’을 표방하며 그릇된 역사관에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득세하는 기회가 되진 않을지 우려스럽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가 입으로 뱉었던 올바른 역사 인식이 총리의 자리에 올라 실행에 옮겨질지는 지금부터 더 날카롭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한일 관계에 필요한 것은 낙관도, 비관도 아닌 정관(正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