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헤즈볼라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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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헤즈볼라의 절규
이용환 논설실장
  • 입력 : 2024. 09.26(목) 17:13
이용환 논설실장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전쟁 그 후다. 따뜻했던 가정은 사라졌고, 사랑스러운 아들딸은 처참하게 죽어 갔다. 죽은 가족의 빈 자리는 무너진 집보다 더 크고, 죽은 자는 산 자의 가슴 속에서 매일 매일 다시 죽는다….” 2007년 9월, 함평 출신 박노해 시인이 레바논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책 ‘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를 펴냈다. 글과 시와 사진으로 전하는 레바논의 진실. 그가 직접 목격한 레바논은 지옥이었다. 이스라엘 탱크는 레바논의 민가를 무차별 파괴했고, 하늘을 뒤덮은 전폭기는 무자비한 폭탄비를 쏟아부었다. 피 흘리고 쓰러지며 아무도 없느냐고 울부짖는 아이들의 모습도 처참했다.

이슬람 ‘무장테러단체’로만 알았던 레바논의 핵심 세력 헤즈볼라의 실체도 뜻밖이었다. 아이들과 환자들을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고, 가족과 친구를 위해 자신이 먼저 희생하는 그들의 생각과 행동은 깊고 따뜻했다. 부당한 폭력 앞에서 노예로 살지 않겠다는 각오에서는 그들의 강한 의지가 읽혀졌다. 헤즈볼라가 꿈꾸는 사회도 ‘자신들 고유의 문화 정체성을 유지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삶의 지향을 미국 방식의 물질적 풍요에 두고 싶지 않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중동과 13억 이슬람 인구의 구심점으로 주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헤즈볼라의 리더십도 평화에서 나온다. ‘이스라엘은 파괴하지만 우리는 건설한다….’, ‘우리의 승리는 파괴를 막고 친구의 죽음을 막는다’는 그들의 이야기에 헤즈볼라가 유지돼 왔던 끈질긴 생명력의 이유가 담겨있다. “우리는 결코 단 한 번도 민중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지도자는 항상 뒤가 아니라 앞에 서 있어야 합니다. 희생은 지도부가, 평화는 민중에게, 헤즈볼라는 적에게 한 말과 약속도 꼭 지켜왔습니다. 그래서 적들조차 헤즈볼라의 말은 신뢰합니다….” 시인 박노해가 헤즈볼라 지도부와 만나 직접 들은 이야기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쟁이 일촉즉발이다. 2006년도 그렇지만 이번에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은 탐욕과 강대국의 비호가 부추긴 불의한 전쟁이다. 무자비한 침략에 희생을 당한 피해자도 죄 없는 레바논의 어린이와 여성 등 민간인이 대다수다. ‘도움도 침략도 필요하지 않다’는 헤즈볼라. 분명한 것은 ‘죄 없이 죽은 자와 정의를 위해서라면 자신도 기꺼이 죽음을 택하겠다’는 그들을 과격한 이슬람의 테러집단으로 폄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자비한 침략으로 절망에 빠진 헤즈볼라의 아이들, 평화와 공존을 외치는 그들의 절규가 가슴 아프다. 이용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