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케 쇼 감독 ‘새벽의 모든’. ㈜미디어캐슬 제공 |
미야케 쇼 감독 ‘새벽의 모든’ 포스터. ㈜미디어캐슬 제공 |
영화는 낡은 필름인 양 지글거림에서 시작된다. 첨단 디지털로 나아가는 시대에 낡은 아날로그 감성을 고집하려는 의도인 듯. 후지사와(배우 카미시라이시 모네)는 갈수록 심해지는 PMS 때문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신입사원으로서 실수를 범한다. 평소에는 예의 바르고 친절하며 조신한 그녀이지만 이때만 되면 극도의 날카로운 신경이 되어 짜증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상사의 태블릿에 고스란히 녹화돼 있는 그녀의 상황은 본인이 결코 원치 않는 이중적 모습이다.
도망치듯 대기업을 그만두고 정착한 회사는 아동용 과학 키트를 만드는 ‘쿠리타 과학’이다. 중소기업이 그러하듯 회사 분위기는 가족적인 편이다. 어느날 신입인 야마조에(배우 마츠무라 호쿠토)의 사소한 행동에 후지사와는 또 한 번 분노를 터트린다. 그럴 때마다 동료들의 만류로 상황이 마무리되고 후지사와는 간식을 돌리며 이 작은 사회에 누를 끼침에 대한 사죄의 뜻을 표한다. 후지사와가 퇴사보다는 주변인의 이해로 그런 대로 적응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래도 본인의 마음은 얼마나 괴로움에 얼룩져있을지 짐작이 간다. 그러던 어느 날, 발작 증세를 보이며 쓰러진 야마조에가 극심한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후지사와는 야마조에에게 동병상련의 우정으로 한발 다가선다.
대단한 스토리가 있다기보다는 있음직하지만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잔잔한 이야기를 감독이 섬세하게 주목하고 감독의 시선에 따사롭고 큰 마음을 보탠 영화라는 생각이다. 마치 영화의 소품인 현미경과 망원경처럼 아주 작은 것을 들여다 보고 아주 먼 곳에 있는 우주를 끌어다 보는 것처럼. 급변하는 현대사회를 살아내는 현대인들에게는 나름대로 크고 작은 증세를 안고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불면증’ ‘중독’ ‘공황장애’나 ‘PMS’ 정도는 그다지 큰 질환으로여겨지질 않는다. 일반적 시선으로는 그렇다 쳐도 정작 공황장애나 PMS 환자들은 치료를 요하는 자신들의 질환보다 더 두려운 것이 사회적 시선이다. 그렇다면 후지사와나 야마조에처럼 숨을 곳을 찾게 만드는 사회로 두어서는 안 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사람들의 모임처럼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주고 불안을 극복하는 커뮤니티가 중요해 보인다. 무엇보다 크고 작은 사회 내에서 이들에게 따뜻한 시선과 함께 무관심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만 일본 사회에서도 쿠리타과학과 같은 회사가 어디 있느냐는 반응이라 한다.
원작 소설을 쓴 세오 마이코 작가나 미야케 쇼 감독이 자신의 작품에 이런 회사를그린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증세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고충을 알 리 없는 일반인들에게 쿠리타과학의 구성원들처럼 이들을 이해하는 시선으로 거두어달라는 당부가 아닐까 싶다. 미야케 쇼 감독은 원치 않는 현실로부터 숨어버린 존재들이 자신을 드러내고 서로다른 세계에 속한 이들과 공감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다. 그의 전작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2023)에서처럼 아날로그 시대의 유산을 통해 균열을 봉합하고 이해를 완성하려 하는 것이다. ‘새벽의 모든’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가운데 무언가 일어나고있는 우리네 인생처럼 영화는 느리게 천천히 돌아간다.
타이틀에 담긴 ‘새벽’이 원제에는 ‘야명(夜明)’이다. 어두움과 밝음이 공존하는 새벽은 매우 희망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한편 가능성이 내재돼 있다. 영화 대사에도 등장하듯 “해가 뜨기 전의 어둠이 가장 어둡다”면 고통스러울 만큼 고통스러운 나의 불행이란 곧 뭔가 잡힐 희망의 예비단계라 할 수 있다. 9월 18일 개봉.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