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일(현지시각) 미 워싱턴DC의 의사당 앞에 911테러 22주기를 맞아 성조기들이 펄럭이고 있다. 뉴시스 |
존 볼트라는 네델란드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보수 성향의 신학자가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의 붕괴 장면으로 기억되는 2001년 9·11 사태 발생 두 달 후인 그 해 11월에 쓴 ‘자유 투사와 테러리스트: 그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글에 나온 문장이다. 약간 설명을 덧붙인 걸 보면 뜻이 분명해진다.
“전투에서 우리 편이 죽으면, 그는 자유 투사이다. 적이라면 그건 테러리스트이다.”
헤즈볼라의 근거지라면서 이스라엘이 수시로 폭격을 하고 있는 레바논은 한때 아랍 지역 상업의 중심지였다. 레바논 상인들은 유대인 이상 가는 자본주의의 화신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그런 전통으로 무장한 레바논 기업인과 회의를 하면서 한 친구가 ‘테러’가 자주 일어나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레바논 기업가가 격한 반응을 보이면서 정색을 하고 쏘아 붙였다고 한다.
“테러(terror)가 아니고 저항(resist)이라고 해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입장에 따라 동일한 인물을 두고도 다르게 평가하고 단정할 수 있다. 2001년의 9·11에서 2년이 지난 2003년 10월 한국 국회의 대정부질의에서 한 의원이 펼친 퍼포먼스를 기억한다. 그는 빨간색 렌즈의 안경을 쓰고 나와서 ‘빨간 색안경을 쓰면 모든 게, 모든 사람이 빨갛게 보인다’고 했다. 상대 정당의 케케묵은 빨갱이 공격에 대한 풍자 제스처였다.
“소년처럼 헝클어진 머리 아래에 나이 든 칼 마르크스가 숨어 있다.”
배우 출신으로 소통도 뛰어났지만, 한편으로 반공 보수의 기치를 높이 걸었던 로널드 레이건이 한 인물을 두고 이렇게 묘사했다. 1960년의 미국 대선을 앞두고 레이건과 같은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에게 보낸 편지에서 민주당의 대선후보였던 존 에프 케네디를 두고 이렇게 묘사했다. 매카시즘의 광풍에 불을 지피기도 했고, 냉전의 전사를 자처했던 레이건이나 닉슨이 자신들의 이념적 기준으로 보니, 엄청난 부호 집안에 태어나, 귀족같은 생활을 즐기고, 방탕할 정도로 호화롭게 놀기 좋아했던 케네디조차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에 물든 빨갱이로 단정했다. 그 레이건이 1960년대에 공산주의적인 정책으로 손꼽으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인 게 가난한 이들에게 의료 지원을 하는 메디케어였다. 그런데 1980년 지미 카터와의 대선 후보 토론에서는 자신이 처음부터 메디케어를 지지했다고 주장했다. 상대를 어느 한쪽으로 몰고 가고, 나중에 유불리를 따져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었던 양 하는 뻔뻔함이 정치에서 성공하는 덕목일지도 모르겠다.
“백악관에 들어앉은 사회주의자 때문에 경제가 망해 간다.”
냉전이 한창이던 1958년 미국 중부의 인디애나 중에서 은퇴한 사업가가 ‘존 버치 협회(John Birch Society JBS)’라는 반공을 앞세운 모임을 창립했다. 한때는 직원 수만 200명이 넘으며,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그 존 버치 협회의 열성 회원이자 고위 간부를 지낸 부모 밑에서 자란 이는 자신의 아버지가 케네디 대통령을 두고 자주 위와 같이 개탄했다고 회고했다. 레이건과 같은 이들의 칼 마르크스 운운하던 말에서 영향을 받은 게 틀림없다. 존 버치 협회의 창립자는 1960년대 초에 이런 말을 했다.
“공산주의자들이 6년 이내에 미국을 정복할 것이다.”
열렬 회원이었던 이들은 6년도 길다고 생각했는지 ‘6개월이면 공산주의자들이 미국을 손에 넣을 것’이라고 염려했다. 6년설을 주장했던 창립자는 30년의 세월이 흘러 1990년대 초에도 미국은 6년에서 8년 사이에 공산화가 될 것이라고 떠들고 다녔다. 존 버치 협회의 사람들은 인종 문제를 이렇게 정의했다.
‘남부의 백인과 흑인 사이를 이간질하여 사회적 혼란에 불씨를 당기려는 목적으로 순전히 공산주의자들이 꾸며낸 것.’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공산주의자의 음모이자 조작이 되었다. 2001년의 9·11까지도 공산주의자가 획책한 것이 된다. 강경보수 기독교계에서는 공산주의에 대하여 이교도, 낙태 옹호론자, 페미니스트, 게이와 레즈비언들에게 원인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보수 기독교 목사로 유명한 제리 포웰은 1970년대에 우익 기독교를 재창조했다는 팻 로버트슨의 TV 프로그램에서, 9·11을 두고 이런 말을 했다.
“그들은 미국을 세속화하려 애쓰고 있어요. 나는 그들의 얼굴에 삿대질을 하며 ’9·11은 당신들 때문에 벌어진 일이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이들일수록 희한할 정도로 폭력에 의한 해결 방안을 너무 쉽게 선호한다. 존 버치 협회의 열렬 회원이었던 이는 이차대전 때 ‘무고한 민간인은 없다’라며 도쿄를 비롯한 일본 도시를 무차별적으로 폭격하고, 한국전 때도 초토화작전으로 100만 이상을 죽였다며 스스로 자부했다는 공군 대장 출신의 커티스 르메이를 찬양했다고 한다.
“르메이 장군은 뭘 좀 아는 사람이야. 핵무기가 필요하면 간단히 핵무기를 쓰면 되지.”
협회와 사람들의 이름과 관련 사건들과 장소 배경만 바꾸면 우리나라에서 지금 흔하게 보고 들을 수 있는 언행들이지 않은가. 위에서 든 레바논 기업인과의 회의 얘기를 들었던 시기에 세계의 분쟁지역의 취재를 전문으로 하는 한국인 기자의 경험도 듣게 되었다. 미국 정부가 테러리스트라고 지목한 아랍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단체의 리더를 만났다. 기자의 국적이 한국이라는 걸 알게 된 그 리더가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당신이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른다면 나를 그렇게 불러도 좋다.”
요즘 같아서는 기꺼이 그렇게 부를 사람들도 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요즘 같아서는 기꺼이 그렇게 부를 사람들도 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