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잊혀진 영암농민운동 재조명 계기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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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잊혀진 영암농민운동 재조명 계기 되길
기념비 건립기금 1억 원 돌파
  • 입력 : 2024. 08.05(월) 17:16
일제강점기 영암농민항일운동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들의 항일정신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 건립 기금도 모금을 시작한지 3개월 만에 1억 원을 돌파했다. 일제의 불의에 맞서 분연히 떨쳐 일어난 선조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계승·발전시키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겠다는 모두의 헌신이 만든 결과다.

‘영암 영보 형제봉 사건’으로 불리는 영암농민항일운동은 농민과 청년들이 1932년 5월 1일 노동절을 기념해 덕진면 영보정에서 항일운동을 벌인 사건이다. 1919년 3·1운동 이후, 더욱 교묘해진 일제의 탄압에 저항하기 위해 모인 100여 명의 농민과 청년들은 1932년 6월 4일에는 영암 영보리 형제봉에 모여 소작권 이전 반대를 결의하고, 마을에서 항일 만세시위를 벌였다. 국가보훈부도 이 같은 공로를 인정해 지난 2021년까지 ‘영보 형제봉사건’에 연루된 40명을 항일운동 독립유공자로 추서했다.

조선 말기부터 식민 통치가 이루어진 일제 강점기까지 영암은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활동하던 ‘의향의 고장’이었다. 국가보훈부가 독립 유공자로 지정한 인물 가운데 영암과 관련된 인사도 모두 63명에 이른다. 이들은 의병 활동은 물론이고 3·1 운동에 참가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일제 강점기 불합리한 소작 제도의 개선을 요구하며 농민들의 소작쟁의를 주도하고, 사회단체 활동과 애국 계몽 운동 등을 통해 국내 항일 운동도 꾸준히 이어갔다. 많은 이들의 헌신으로 만들어진 영암의 항일운동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자양분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쌓아 올린 영암 항일운동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들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영암군과 전남도부터 이들에 대한 전수조사와 함께 이들을 기리는 기념사업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작은 기념관이라도 지어 마을의 역사를 오래 기억했으면 한다’는 최윤호 영암농민항일독립운동 기념사업회장의 소박한 바람이 들불처럼 번져 그동안 외면받았던 영암농민항일운동을 재조명하는 새로운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