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하 작 ‘무등산의 봄’. (재)광주비엔날레 제공 |
‘무등(無等, equity)’은 광주의 물리적, 문화적, 정신적 근간으로, 차등의 전제 자체가 사라진 초월적 차원을 뜻한다. 무등산은 오랫동안 연약한 존재들이 찾아와 위로와 안전을 구했던 장소로 광주가 겪어야 했던 5월의 아픔을 목도하고 보듬었던 신체이다.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첫 광주관은 ‘무등’정신이 불평등과 이기심이 만연한 국제 정세 속에서 소외된 것들을 소환하고 그들과 함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향해야 할 언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전시는 크게 세 개의 키워드인 ‘혁신적 연대’, ‘창의적 저항’, 그리고 ‘지속 가능한 정의’로 구성된다. 특히 시각예술 뿐만 아니라 공동 프로젝트, 아카이브, 인터뷰, 집담회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른다.
‘혁신적 연대’는 ‘무등’이 표상하는 여러 함의 중 어떠한 위계도 없이 다양한 객체들이 서로 지지하며 형성하는 ‘연대의 실체’에 주목한다. 연구자, 언론인, 문화기획자, 작가, 디자이너 등의 참여자들과 광주정신이 오늘날 제시할 수 있는 가치와 의미의 다양성에 대해 논의한다.
‘창의적 저항’은 ‘무등’의 정신이 어떻게 불합리한 기준과 장벽들에 대항하는 힘을 담지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 참여 작가들과 작품들은 세대나 시기, 장르 구분에서 탈피해 도처에 편재하는 고정관념과 부조리의 상황에 응답한다. 이들은 광주의 5월과 그 이후의 시간에 축적된 시민들의 저항 정신을 가시화한다.
‘지속 가능한 정의’는 ‘무등’의 화두를 전 인류가 마주한 시급한 문제와 도전으로 확장시킨다. 전시는 기후 위기, 경제 불균형,기술의 남용, 지속되는 전쟁과 에너지 고갈 등 전 지구적인 이슈를 인식한다. 더불어 참여 작가들은 예술을 통해 문명의 욕망이 초래한 기후와 환경의 위기를 가시화하며, 자연을 향한 인류의 왜곡된 태도를 재검토해야 함을 주장한다.
이세현 작 ‘푸른 낯 붉은 밤_옛 국군통합병원’ (재)광주비엔날레 제공 |
김웅현은 데이터 환경과 개인의 주체성 연구를 토대로 영상 작품과 퍼포먼스, 조각을 선보인다.
나현은 역사와 예술을 융합하는 다층적인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송필용은 만물의 근원인 ‘물’을 소재로 앞으로 나아갈 역사의 힘을 그려낸다.
안희정은 근대 문화유산인 건물을 육방체의 큐브로 재구성하여 이를 사진으로 담아내고 있다.
양지은은 그래픽 디자인 겸 출판 스튜디오인 프레스룸(PRESSROOM)을 운영하며, 데이터 시각화와 시각 정체성에 관한 확장 가능성을 탐구한다.
오종태(1917~2008)는 흑백 사진을 통해 광주·전남의 역사와 풍경을 기록했다.
윤준영은 단절된 화면 속에서 주로 콩테와 먹을 통해 내재화된 불안을 끌어내어 묘사하고 있다.
이강하(1953~2008)는 독자적 리얼리즘 화풍으로 남도 사람의 애환과 삶, 남도의 풍경들을 보여주었다.
이세현은 역사적 장소를 사진으로 담아내어 잊혀진 기억을 상기시킨다.
임수범은 불안정한 세계를 확장하며 그려 나감과 동시에 신화적 자연의 생태계를 묘사한다.
장종완은 유토피아적 장면을 묘사함과 동시에 불안이라는 현실적 감각을 자극하며 낙원에 대한 믿음의 이면을 다룬다.
장한나는 암석화된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집하여 예술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현준은 소외된 이들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가시화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사진과 영상으로 담아낸다.
조정태는 굴곡진 시대상을 드러내고자 역사의 상흔을 찾아 묘사하고 있다.
최종운은 공존의 순간에 존재하는 고요한 긴장의 상태를 시각화하여 공감각적 경험으로 펼쳐낸다.
하승완은 신화, 설화, 성서에서 수집된 이야기 속 서사구조를 추출하여 사건을 재구성한 뒤 담화를 묘사한다.
함양아는 국가와 사회 시스템 속 개인과 집단, 나아가 환경 사이의 문제를 탐구한다.
광주 파빌리온 관계자는 “광주의 5월을 경험한 세대들뿐만 아니라 이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 그리고 광주 밖의 무수한 공동체들과 연대 의식을 도모할 수 있는 공통의 기억이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