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의 부파 오페라 ‘팔스타프’ 공연 장면. 출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
베르디 <팔스타프>의 이전 50여 년간 자신의 오페라에서 여주인공은 항상 비련과 한탄의 죽음이 전부였다고 할 수 있다. <오텔로-Otello, 1887>까지 74년 평생 비극에만 익숙했던 베르디는 지인들에게 평소 이제는 극장이나 관객을 위한 작품이 아닌 자신을 위한 작품을 작곡하겠다고 언급했으며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오페라 부파 <팔스타프>를 작곡하였다. 새로운 장르에 관한 그의 도전은 자신만의 새로운 형식 실험으로 성취감의 발로에서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명예와 부를 전부 얻은 베르디는 자유로운 작업환경 아래서 자신의 마지막 오페라 <팔스타프>를 마음껏 해학의 나래를 펼쳤다. 당시의 오페라 부파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던 로시니는 “희극 오페라를 베르디는 절대 쓸 수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으나 베르디는 보기 좋게 로시니의 이런 언사를 꾸짖듯이 명작 <팔스타프>를 통해 한없이 기쁨을 만끽했다. 그는 밀라노 라 스칼라 오페라극장에서 초연 후 “저는 <팔스타프>를 작곡하는 동안 정말 기쁘고 행복했다. 이는 주문자에게 의뢰를 받고 제작하는 피동적인 수공업자의 작품이 아니라 자기 집에 두고 즐길 애장품을 작곡하는 심정이었다.”라고 이야기했다고 전해진다.
오페라 ‘팔스타프’ 공연 중 주인공이 두 여인에게 보낸 편지를 읽는 장면.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
팔스타프라는 원작 폴스타프의 이탈리아어식 발음이다. 대본가 보이토가 만든 팔스타프는 세익스피어의 ‘헨리 4세, 1598’,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 1597’에 등장하는 인물로, 원작인 두 작품을 기반으로 제작했다. 특히 니콜라이(Otto Nicolai, 1810~1849)의 오페라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 참고로 하여 역동적이며 활달한 <팔스타프>가 탄생하였다고 한다. 베르디의 팔스타프는 ‘헨리 4세’에 등장하는 상황에 대처하는 기지와 통찰력까지 겸비하였지만, 과대망상을 지닌 인물이다.
3막으로 이루어진 <팔스타프>의 배경은 15세기 초 영국의 윈저지방이다. 오페라 시작은 가터 여인숙으로 뚱뚱한 주인공 존 팔스타프는 자신의 두 하인과 함께 자신의 지갑을 훔쳐 갔다고 항의하는 카이우스 박사를 내쫓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빈털터리 팔스타프는 자신의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마을의 부잣집 여인인 알리체 포드 부인과 메그 페이지 부인을 유혹할 계획을 세운다. 이런 자신의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두 하인에게 연애편지를 전달하라고 명령하지만, 명예를 운운하며 거절하자 두 하인 역시 쫓겨나고 만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두 여인에게 똑같은 연애편지를 이름만 바꿔 전달되었는데, 함께 편지를 읽은 두 여인은 조소하며 이러한 상황을 파악하고 팔스타프의 얕은 수작에 분노하며 골탕을 먹이기로 한다. 그리고 여기에 팔스타프가 자신의 아내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것을 안 남편 포드와 페이지, 그의 딸 나네트와 그녀의 애인 펜턴이 함께하고 여기에 팔스타프에게 모욕을 당한 카이우스 영감과 그녀의 하녀 퀴클리 부인이 팔스타프를 골탕 먹이는 데 동참하기로 한다.
2막의 시작과 함께 수단 좋은 퀴클리 부인이 팔스타프를 만나 메그의 남편은 거의 외출하지 않아 불가능하지만 알리체는 팔스타프와 밀회를 나누길 희망하며 오후 두 시와 세시 사이에 남편 포드가 출타하니 잘해보라고 전한다. 이 말을 들은 팔스타프는 자신의 매력에 의기충천하여 신이 난 상태이다. 이때 폰타나라는 가명을 쓴 알리체의 남편 포드가 찾아와 자신은 그녀를 유혹하려 했지만, 상처만 받았다며 팔스타프가 일단 작업을 성공시켜 놓으면 자기도 그녀를 다음에 쉽게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며, 돈까지 주고 간다. 얼마 후 알리체를 찾아간 팔스타프는 자기가 젊었을 때 얼마나 날씬하고 잘났는지 자랑을 늘어놓는다. 이때 남편인 포드가 집으로 돌아오고 포드 부인인 알리체는 성미가 고약한 남편이 갑자기 귀가하니 이젠 죽었다면서 팔스타프를 벽장 속에 다음에는 빨래통 속에 숨으라고 한다. 포드는 카이우스와 팬턴 등과 함께 들어와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분명 어떤 놈이 숨어 있군”이라고 소리 지르며 들어온 사람들과 함께 온 집 안을 샅샅이 뒤진다. 이때 알리체는 하인들을 불러 팔스타프가 숨어 있는 빨래통을 어서 강에 던지게 한다.
베르디의 부파 오페라 ‘팔스타프’ 공연 장면. 출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
당시 80세 노년의 베르디가 <아이다>의 장대한 스케일의 작품과 비통함과 비열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오텔로>를 이은 마지막 작품이, 모두가 예상했던 통렬한 비극이 아니라 가벼운 희극이라는 점에서 충격이었을 것이다. 베르디는 인생의 마지막을 크게 웃고 싶었나 보다. 푸치니의 마지막 완성작이었던 <삼부작-잔니 스끼끼> 역시 단테의 ‘신곡-지옥편’의 잔니를 소환하여 천국으로 가는 길을 해학과 웃음으로 마무리를 지었듯이 인생을 관조하며 삶의 뒤안길을 돌아볼 때, 예술가들도 마찬가지로 용서와 화합 그리고 해탈과 자조 섞인 외침을 음악 속에 담고 싶었나 보다. 우리의 삶이 힘들 때 해학이 듬뿍 담긴 오페라 부파 한 작품 즐겨보는 건 어떠할까? 광주시립오페라단 예술감독·문화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