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庭園·임효경>학교라는 울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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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칼럼
배움의 庭園·임효경>학교라는 울타리
임효경 완도중 교장
  • 입력 : 2024. 07.09(화) 18:17
임효경 완도중 교장.
능소화들이 있습니다. 그 넝쿨 식물이 여기저기 울타리를 타 오르고 또 담장을 기어 오르더니 마침내 오묘한 여름 산호색을 띤 꽃송이를 하늘 향해 나팔 모양으로 피어 올렸습니다. 왠지 외국물을 먹은 듯한 세련된 그 꽃 색을 보면 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는 것은 아마, 여름방학이 다가오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배꽃이 피는 것보다, 수국을 보는 것보다 더 반갑습니다. 배꽃이 피면 1학기 중간고사 문제 출제를 해야 하고, 수국이 무성하게 피어오르면 기말고사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능소화는 보기엔 우아하고 세련되었는데, 향기가 없어서 나비가 날아들지 않을 뿐 아니라, 꽃과 잎의 수액에 독성이 있어서 가까이 하지 않아야 한다고 합니다. 겉으로는 안 보이는 독이 있다니, 다시 보아지는 꽃입니다.

우리 학교 울타리에도 인간 능소화 한 그루가 피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유복한 가정의 아들들인데, 늘 표정이 어둡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핸드폰 게임을 즐깁니다. 여러 운동을 통해 근육질의 몸을 가지고 있지만, 친구들과 축구하는데 함께 하지 않고 벤치만 지키고 있습니다. 잠깐 교장실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중학생답지 않은 부정적 시각으로 선생님의 처사를 비판합니다. 학교가 공정하지 않다고 비난합니다. 그래서 학교를 믿지 않고, 선생님도 믿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아버지도 ‘학교가 해 준 것이 무엇이냐?’고 합니다. ㅠ

260여명의 아이들이 뛰어 놀고, 배우는 우리 학교. 한 아이도 소중합니다. 모든 학생에게 공정하고 공평해야 할 것입니다. 학교는 우리 학생들이 어른이 되어서 함께 살아갈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좀 더 리더십이 있어서 학급 임원이나 학생 자치부 임원으로 활동합니다. 어떤 학생들은 좀 더 운동 신경이 뛰어나서 학교 대표 선수로 경기에 출전해 메달을 따고 좋은 성적을 올려서 학교의 이름을 드높입니다. 누구는 인문학적 독서나 토론에 관심이 많아서 전남인문학아카데미에 참여하고, 완도선상인문독서대회에 참여하여 자신의 관심사를 토로하고 타인과 소통하며, 그 영역을 넓히고 돌아오기도 합니다. 또 누구는 춤에 진심이고, 악기 연주에 진심이어서, 학교 축제에서 현란하게 춤 솜씨를 자랑하고, 학교 밴드부로서 축제의 피날레를 멋지게 장식합니다. 이렇듯 다양하게 자신의 실력을 키우고 날마다 성장하는 학생들의 행복한 소리를 듣는 것에 너무 몰두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좀 멀리서 바라보다보니 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좀 더 가까이서 보면 가슴에 상처를 입었고, 마음에 증오와 원망을 키우고 있는 이런 능소화 같은 학생이 있겠구나 싶어집니다. 조금만 건드리면, 톡 터질 것 같은 눈물 자루도 지니고 다니는 학생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엄마라는 따듯한 단어의 의미를 모르고 살아가는 아이도 있겠습니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좀 더 세심하고 개별적인 보살핌과 좀 더 공정하고 다양한 돌봄이 일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교문맞이 하면서 아이들의 표정을 살펴보며, 참 안타깝게 든 생각이 있습니다. 가방이 무거운 듯 어깨가 처지고, 표정이 밝지 않은 학생들이 대부분 아침밥을 먹지 않고 집을 나온다는 것입니다. 공부를 하려면, 뇌 속에 산소를 공급하고 피를 원활하게 돌려 줄 연료인 탄수화물 흡수가 필수적인데 말입니다. 배가 고프니, 선생님의 수업 시간에 뇌로 가야 할 새로운 정보나 지식들이 배 속 창자에서 꼬르륵~!하고 사라져 버리는 것이 족히 상상이 됩니다. 학생이나 부모는 그 결과를 보고 불만과 짜증이 쌓이게 됩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가정에서 원하고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뒷받침해 주는 수고와 노력이 더 필요합니다. 학생들의 슬기롭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위해서 학교와 가정이 서로 도와야 하는 것 아닐까요?

지난 목요일에는 네 명의 2학년 학생들과 해남에 몸 풀러 갔습니다. 늘 말도 없고 표정도 없는 현이, 아직 피아노 영어 철자도 모르는 경이, 마스크를 절대 벗지 않아서 입가에 부스러기 피부염이 생긴 정이, 예사롭지 않은 눈빛과 말투로 늘 혼자 다니는 건이. 이 아이들에게 새로운 관계 형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신 지혜로우신 한 선생님의 관심과 배려로 사제동행 프로그램을 하게 된 것입니다. 완도에는 볼링장이 없어서, 해남까지 원정을 갔습니다. 해남 볼링장에는 기말고사를 마친 해남고등학교 학생들도 보였는데, 그 학생들의 멋진 폼과 스트라이크를 구경도 하고, 우리는 또 우리 나름대로 폼을 개발하여, 스트라이크와 스페어를 하며 환호하고 기뻐했습니다. 키 크고 날렵한 정이가 연습게임에서는 제일 잘 했고, 내기게임에서는 경이가 이겼습니다. 경이는 할머니와 아버지를 모시고 살면서 소, 염소, 닭 키우는 이야기를 늘 하는 아이입니다. 집안일을 잘 도우니, 하늘이 돕는다고 했습니다.

지난 6월에는 완도 빙그레영화관에서 함께 판타지 영화도 보았습니다. 영화 감상 후, 롯00아에서 햄버거 세트를 시켜 함께 나눠먹으며 우리 여섯이 얼마나 수다를 떨었는지 모릅니다. 그 말없던 현이도 빙긋이 웃었습니다. 캐릭터 중에 누가 제일 멋지다, 어떤 장면이 제일 인상 깊다, 제각각 영화 평론이 제법 진지했습니다.

‘능소화 학생과 학부모’가 저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그들이 했던 ‘학교가 도대체 무엇을 해 주는가?’라는 질문에 당황했습니다. 망치 한 대를 맞은 느낌입니다. 진심어린 사과를 합니다. 능소화의 아름다움만 즐기려 했던 것 같습니다. 속마음이 아프고 어려운 학생들에게 좀 더 세심하게 개별적으로 접근하고, 좀 더 배려해서 각각의 아픔을 달래주어야 했습니다. 어린 학생들 개개인의 가슴에 억울함으로 인한 상처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했습니다. 부디, 용서를 하고 다시 새로운 시작을 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