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유순남>단 십 분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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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유순남>단 십 분의 인연
유순남 수필가
  • 입력 : 2024. 04.10(수) 15:58
유순남 수필가
그것은 순전히 그곳에 바다가 있어서다. 영광에도 근무할 자리가 있었고, 강진 쪽에서도 근무해달라는 전화가 왔었는데, 교통비는 말할 것도 없고 시간도 훨씬 더 드는 완도, 그것도 배를 타고 들어가는 섬 중학교를 택했다. 바다보다 더 낭만적인 장소가 있으랴! 나에게 바다는 아직도 첫사랑처럼 설레고 가슴을 뛰게 한다. 그런데 관사가 없단다. 이유는 예전에 없던 공존 교실 지원 강사 같은 자리가 새로 생기고, 학생 수가 늘어서 그동안 없었던 특수 교사, 위 클래스 교사, 진로 교사 등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는 학생 수가 줄어가는데, 우리 학교는 3학년이 36명, 2학년은 49명, 1학년은 44명으로 늘었다. 이 학생들이 태어날 무렵 주민들의 수입원인 전복 값이 좋아 젊은 부부들이 늘어서 출생률도 덩달아 올라간 것이다. 채용이 결정된 2월 말. 공인중개사무소에 가서 원룸을 알아보니 빈방이 없었고, 일반 주택 건물은 방 세 개에 화장실이 공용이었고, 남녀 구분이 없었다. 다리 건너 섬에 원룸 하나가 있었는데,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샤워 시설도 없고 새집증후군 때문에 살기 힘들 것 같았다. 학교로 다시 가서 토박이인 행정실 주무관과 야간 지킴이 김 선생님에게 염치없이 방 좀 알아봐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출근 하루 전날인 3월 3일. 전화를 해보니, 김선생님이 시골집 하나가 있는데 2년 전까지 사람이 살았으니 살만할 것이라고 했다. 김 선생님이 소개한 시골집은 아담한 남향집이었다. 짐을 내리고 구석구석 둘러보니 손볼 곳도 많은 데다 샤워 시설이 없고 화장실은 밖에 있었다. 이삿짐을 다시 싣고 김 선생님과 함께 옆 섬 원룸으로 갔다. 원룸 주인에게 전화하니 종교단체에서 4박 5일로 수련회 중이라며 나흘 동안을 모텔에서 지내라고 했다.

날은 저물고 처량한 나그네 신세가 되었다. 멀리 보이는 바다는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출렁거리며 파도를 만들고 있었다. 통화 내용을 들으며 짐을 내리던 김 선생은 “선생님, 우리 집으로 갑시다!” 하더니 내린 짐을 자기 트럭에 실었다. 당황스러워서 “사모님께 먼저 전화를 해보세요.”라고 했는데, 못 들은 척하며 출발해 버렸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김 선생님 트럭을 따라갔다.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그 댁 안주인은 “오메! 팔 년을 혼자 자서 좋더니, 이틀 동안 저 양반 때문에 잠을 못 잤는디, 인자 혹까지 달고 왔네!” 하며 활짝 웃었다. 겸연쩍고 미안한 마음에 나도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집은 컸지만 쓰는 방이 하나라 셋이 한방에서 잤다.

다음 날 동료들이 방은 구했냐 해서 전날 일을 얘기했더니 “부부가 자는 방에 껴서 잤냐?”며 놀렸다. 옆자리에 앉은 선생님이 자기가 사는 고등학교 구 관사 2층에 방 하나가 비어있는데 작년에 누군가 살았다 하니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점심시간에 가보니 여태 본 세 개의 집보다 훨씬 나았다. 행정실장에게 그곳에 살수 없겠냐고 물으니 고등학교 행정실장에게 전화 해주었는데, 작년 장마철에 비가 새서 방수공사 전에는 입주가 불가하다며 책임 소재 때문인 듯 결정을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에게 미뤘다. 교장실로 가서 그간에 있었던 일을 소상히 얘기하고 도움을 청했다. 교장선생님은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에게 전화해 주었고, 다행히 그날 퇴근 후 고등학교 구 관사에 입주할 수 있었다. 김선생님에게 관사 입주를 알렸더니 본인 일처럼 기뻐하며, 자기 집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반찬을 가지고 와서 이삿짐 중 무거운 것들을 2층으로 올려다 주었다.

김 선생님은 어쩌면 내가 만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2월 말까지 근무하고 떠나는 사람이고, 나는 3월부터 근무할 사람이었다. 2월 마지막 날 적당한 방을 구하지 못해 다시 학교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퇴근 시각이 지난 후였다. 교무실 문이 잠겨 행정실로 들어가 김 선생님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행정실 주무관님은 오랫동안 함께 근무한 큰형(78세) 같은 김 선생님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이별주를 나누고 있었다. 잠깐 그 분위기에 함께하다가 배 시간 때문에 두 사람에게 주변에 빈집이 있으면 알아봐달라고 부탁하고 나왔다. 그와 내가 함께했던 시간은 딱 10분이었다. 그런데 그 짧은 인연으로 그렇게 성심을 다해줄 사람이 또 있을까? 나는 김 선생님의 사람을 대하는 진심 어린 마음 때문에 편히 지낼 수 있는 집을 만났다. 아니 이곳에서 ‘바다’보다 낭만적인 ‘사람’을 만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