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일상을 향한 애정 어린 시적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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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일상을 향한 애정 어린 시적 눈길
그날 밤 물병자리
황형철 | 시인의일요일 | 1만2000원
  • 입력 : 2024. 02.01(목) 10:26
  •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
그날 밤 물병자리.
밀도 있는 서정시의 세계를 보여준 황형철 시인이 세 번째 시집 ‘그날 밤 물병자리’를 펴냈다. 이번 시집은 일상에서 발견한 크고 작은 흔적을 섬세한 시선으로 살피고 사유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시 곳곳에서 정제된 목소리와 살가운 언어적 생동감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유연하고 탄력 있는 사유와 감각이 혜안으로 이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수록작 ‘뜬구름’을 보면 이와 같은 시인의 성정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평생 떠돌 수 있는/가벼운 무게를” 가졌지만 “우레와 번개 아무리 법석거려도/본디 모습으로” 돌아와서 “산그림자 번지는 고요를” 익힌다. 끝내는 “눈도 비도 품어서” 나아가고자 한다.

“떨어진 기운도 차리고 헐한 걱정(시 ‘푼푼한 점심’ 일부)”을 비워내고 “자유로운 잠행(시 ‘일요일’ 일부)”을 바라는 것은 ‘뜬구름’과 다른 것이 아닌데, 생의 근원적 결핍을 성찰하고 치유해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배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또 5.18민주화운동이나 제주4.3과 같은 비극의 현대사와 반지하 방에서 고독사한 사건까지 역사에서부터 주변의 일상에 이르기까지 그만이 가능할 것 같은 감각의 서정으로 간절하고 뜨겁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평소 제주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시인으로서 제주의 자연과 역사를 그만의 따뜻한 시선으로 노래하고 있다. 제주 사투리나 섬 만의 특유의 관습 같은 게 눈에 띄는데 특유의 역동성과 생동감으로 섬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 시 읽기의 즐거움을 더한다.

수록작 ‘한통속’을 보면 제주에서는 성별이나 성씨, 고향, 친소관계 같은 걸 따지지 않고 자기보다 나이 많으면 ‘삼춘’을 붙이는데, 이 말은 너울에 헐고 바람에 깎여 모난 데를 “따뜻한 벳이 녹여주는 말”이다.

“만 팔천이나 되는 신이 있어(시 ‘제주특별자치도 취업난’ 일부)”라는 시구처럼 제주는 그 어느 곳과 비교도 안 되는 신성의 땅이다. 시인은 그네들과 한통속 되기를 통해 “더 넓은 바당으로 잔잔히 나아가는(시 ‘서귀포’ 일부)” 것이다. 그리고 그가 재현하는 제주어는 “세상 깊은 잠언 같아/어떤 간절이(시 ‘대추하다’ 일부)” 그 안에 있다. 제주라는 장소성은 물론 특정 지역을 초월한 보편적 가치를 통해 서정시의 기본 원리를 충실하게 보여준다.

황형철 시인은 199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2006년 계간 ‘시평’으로 등단했다. 첫 시집 ‘바람의 겨를(2013)’과 두 번째 시집 ‘사이도 좋게 딱(2020)’을 펴낸 바 있다.
황형철 시인.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