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격동의 현대사 '역사현장 지켜본' 17개 지하철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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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격동의 현대사 '역사현장 지켜본' 17개 지하철역
역사를 품은 역, 역세권
박은주 | 미디어샘 | 1만7800원
  • 입력 : 2024. 02.01(목) 10:09
  •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
역사를 품은 역, 역세권.
5·18민주화운동 43주기를 3주 앞둔 27일 오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과 옛전남도청 앞에서 현장학습을 온 지역 초등학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뉴시스
1980. 5. 19. 도로에서 끌려온 한 시민은 공수부대에게 끌려와 페퍼포그 차량 옆에 선 다. 십자 완장을 찬 위생병마저 저항할 의지조차 없는 학생을 곤봉으로 힘껏 내려치고 있다.
광주 지하철 1호선 문화전당역은 옛 도심 중심인 동시에 역사를 품은 ‘역세권’이다. 도서 ‘역사를 품은 역, 역세권’은 문화전당역을 유동인구가 많은 도심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바라본다.

1980년 5월 당시 전남매일신문 나경택 기자는 지금의 문화전당역 일대에 있었다. 호주머니에는 흑백필름을 가득 채웠고 목에는 80~200㎜ 카메라와 28~85㎜ 카메라, 두 대를 매고 다녔다. 그는 현재 문화전당역 4번 출구로 나가면 있는 전일빌딩245 건물, 문화전당역 3번 출구로 나가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아우른 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옛 전남도청 건물, 분수대를 품은 5·18민주광장, 바로 옆 금남로에서 사진을 찍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지요. 광주 거리는 전쟁터였어요. 그날 막 일요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참이었는데 최루가스 한 덩어리가 코로 파고드는 거예요. 공수부대원들이 사람들을 두들겨 패댔죠. 저는 다음 날 19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전남도청이 내려다보이는 이곳 전일빌딩으로 달려왔어요. 회사에서는 금남로가 잘 보이지 않거든요.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지요.”

무자비한 공수부대원들과 피를 흘리는 무고한 광주시민들, 공중을 선회하는 군용헬기, 상무대의 수많은 시신 등의 모습이 렌즈에 비쳤다. 하지만 나경택 기자는 이사진을 단 한 장도 신문에 싣지 못했다. 광주 소식에 대한 계엄사의 언론 통제 때문이었다. 언론은 계엄사 발표를 앵무새처럼 읊조릴 뿐이었다. 급기야 21일 이후 광주로 들어오는 교통도 차단되고 시외전화 등 통신도 불통됐다.

그래도 나경택 기자는 카메라 셔터 누르기를 계속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전남도청 정문 앞까지 밀린 공수부대원 무리에 속하게 됐는데 한 통신병이 “발포 명령 떨어졌습니다!”라고 외쳤다. 그때부터 시민을 향한 계엄군의 발포가 시작됐다. 갑작스러운 총격에 도청 안으로 피신한 그는 그 때를 회상하면 마음이 무너진다. 어쩌면 발포 명령에 대한 진실규명 키 포인트가 될 수 있었던 당시 현장사진을 제대로 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다. 그는 당시 집단 발포 참혹한 피해 현장을 제대로 담지 못한 자신을 평생 탓하면 살고 있다.

어느 기자의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어떤 때는 잘 해내지 못했다는 회한이 깃든 지금 이곳 문화전당역 일대에서 44년 전 참혹했던 풍경이 잘 상상되지 않는다. 뒤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들어서 있어 시민들은 문화생활을 즐기고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누린다. 예술가들이 모여 거리공연을 선보이는가 하며 벼룩시장 장터가 열리기도 한다. 청소년들은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젊음을 만끽한다. 책은 문화전당역 인근에서 일상을 살아가며 자칫 희미해진 그 날의 풍경을 상기시킨다.

책에는 광주에서 역사를 품은 역 ‘역세권’인 문화전당역을 비롯해 서울 1호선 종로3가역, 3호선 독립문역, 6호선 망원역 등 17개 지하철역 사례가 소개된다. 익숙하게 알고 있는 정거장들이다. 하지만 이 정거장 근처에는 경술국치의 뼈아픈 역사가 담긴 ‘서대문형무소’(3호선 독립문역)에서부터 전두환 정권의 군사쿠데타 12·12사태가 촉발한 6월 민주항쟁 현장 ‘연세대학교’(2호선 신촌역)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사를 품은 공간이 가까이 있다. 이 책은 가장 가까운 지하철 정거장에서부터 ‘아름다운 역사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에세이이자 역사기행서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