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세한(歲寒)과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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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전남일보]서석대>세한(歲寒)과 의리
최도철 미디어국장
  • 입력 : 2024. 01.28(일) 15:18
최도철 미디어국장
 사람마다 좋아하는 계절이 다르다. 어떤 이는 봄을, 또 어떤 이는 여름이나 가을 절기를 좋아한다. 드물긴 하지만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눈 덮인 산하, 초롱초롱한 겨울밤의 별들, 마른가지 마다 피어있는 은빛 서리꽃, 숭겅숭겅 썰어 놓은 동치미와 군고구마…. 겨울의 제멋을 아는 사람들이다.

 섣달그믐이 가까워지면서 맵찬 바람과 함께 큰 눈이 내렸다. 이른바 세한(歲寒)이다. 몽글몽글 내려앉는 하얀 눈송이가 하도 예뻐서 집 가까운 산에라도 갈 욕심에 지인을 불러냈다.

 저홀로 정정한 겨울숲에 들어서니, 어느새 구름 걷히고 엷은 햇살이 솔가지 사이로 비낀다. 혀 아래에 단 것 하나 녹여두고 삭풍에 부대끼는 산죽 사이로 자박자박 걷다 보니 널따란 들이 나온다.

 흰눈 덮인 고즈넉한 들판, 키 크고 바짝 마른 소나무 몇 그루, 그 곁에 지붕낮은 스레트집 한 채. 신이 빚은 선경에 가탄도 잠시, 불현듯 한 그림이 떠오른다. 김정희필 세한도(金正喜筆 歲寒圖)이다.

 대한민국 국보 제180호 세한도는 조선 말기의 사대부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지에서 그린 문인화이다.

 초라한 집 한 채와 나목 몇 그루가 한천(寒天)에 떨고 있는 이 그림에는 각별한 사연이 있다. 추사는 정쟁에 휘말려 8년 여 동안 세한의 세월을 보낸다. 귀양살이 중에 가장 혹독한 절해고도 위리안치(圍籬安置)였다.

 언제 유배가 풀릴지 기약이 없었고, 외려 사약을 내리라는 상소마저 끊이지 않을 때 변치않고 추사를 섬긴 제자가 있었다. 추사의 유일한 낙인 독서를 위해 중국에서 진귀한 책들을 구해 전해준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등을 돌려도 언제나 변함없이 대해준 제자의 절개와 의리에 감복한 추사는 한 점 그림을 그렸고, 그 그림의 끝에 의미있는 인장을 찍었다.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시구인 ‘장무상망(長毋相忘)’이다.

 세한도는 ‘논어’의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라는 경구를 인용했다.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되어서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라는 뜻이다.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샅바싸움이 치열하다. ‘정치적 의리’는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의리일 뿐인가. 오로지 공천장을 거머쥐기 위한 정치꾼들의 협잡과 모리가 몹시 거슬린다. 참 의리도, 염치도 없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