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데스크칼럼>혁신이 권력을 만났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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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데스크칼럼>혁신이 권력을 만났을때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국장
  • 입력 : 2023. 11.29(수) 13:03
김선욱 부국장
정당은 위기를 맞게되면 ‘전가의 보도’처럼 띄우는게 있다. 국민 눈높이에서 당 쇄신을 하겠다며 꾸리는 혁신위원회다. 주로 외부 인사를 영입해 당내 변화를 꾀하려고 한다. 특히 총선 전에는 매번 구성된다. 유권자에게 공천 혁신과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 한 표라도 더 얻으려는 정치적 행위다. 지지층을 결집하고 성난 민심을 달래기에 이 만큼 가성비 좋은 위원회는 없을 것이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역시나 거대 양당의 혁신 경쟁이 뜨겁다. 그런데 양당의 혁신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엇비슷하다. 말과 구호는 요란하고 결실은 미미해 보인다. 혁신인듯 , 혁신 아닌 듯하다. 혁신 작업이 당 안팎의 권력에 휘둘리면서 권력과 혁신 사이에서 ‘무늬만 혁신’이 되어가는 것 같다.

혁신위를 먼저 띄운 건 더불어민주당이다. 이재명 당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지난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사건의 위기 속에 ‘김은경 혁신위’가 꾸려졌다. 하지만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이 대표가 주도한 탓에, ‘이재명 친위부대’란 비명(비이재명)계의 비판이 쏟아졌다. 내놓는 쇄신안마다 ‘거부’당했다. 1호 혁신안인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은 의원들이 보기 좋게 뒤집어버렸다. 대의원 표와 권리당원 표를 1대1로 하자는 제안은 ‘개딸정당’ 논란만 키웠다. 3선이상 동일 지역구 공천 금지를 논의하다가 ‘중진 불출마 촉구’로 물러섰다. 김 위원장 자신도 부적절한 언행으로 구설에 올랐다. 당권세력의 ‘친위 혁신위’라는 불명예만 남기고 용두사미로 끝났다.

국민의힘의 혁신위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의 충격 속에 ‘인요한 혁신위’를 띄었다. 인 위원장의 첫 일성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였다. 김기현 지도부도 전권을 부여했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1호 안건인 ‘대사면’은 당사자들에게 외면받았다. ‘중진·친윤(친윤석열)인사 험지 출마’는 표적이 된 의원들의 거센 반발로 멈춰섰다. 인 위원장이 ‘대통령실의 의중’을 꺼내며 압박했지만 반발은 더 커졌다. 오히려 인 위원장은 대립각을 세워온 이준석 전 대표에게 “도덕이 없는 것은 부모 잘못”이라는 실언을 했다가 하루만에 사과했다. “혁신위를 혁신해야 한다”는 비아냥이 당에서 나왔다.

사실 ‘인요한발 혁신’은 권력 투쟁 성격이 짙다. ‘윤심’을 업고, 구윤세력(옛 윤핵관)을 축출해 당 권력 지형을 바꾸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검찰 중심의 신윤계(신윤석열)로 당 핵심세력을 바꾸려는 ‘윤의 해결사’같이 행동한다. 여당발 혁신은 대통령실과 당의 수직적 관계를 수평적 관계로 전환하는 게 출발점이 아닐까. 대통령만 바라보는 ‘용산바라기당’으로는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얻을 수 없다.

거대 양당의 혁신 작업은 권력에 기댄 실패한 혁신이다. 이럴거면 왜 혁신위를 만들었는지 의아스럽다. 지난 1년 반 동안 대한민국의 정치는 실종됐다. 민주적 합의 절차와 여야 협치, 희망의 정치는 보이지 않았다. 양당의 극한 대립과 ‘팬덤 정치’,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극단적 혐오 정치가 난무했다. 만약 내년 총선에서 양당 정치에 대한 심판론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정말 이상할 것 같다.

요즘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말이 있다. 지금의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의 민주당’과 다르다는 얘기다. 일부 강경파가 당내 목소리를 주도한다. 성인지 감수성은 현저히 떨어져 있다. 팬덤의 정치화, 진영 정치, 방탄 국회는 고착화된 느낌이다. 무엇보다 당이 점점 늙어가고 있다. 여기에는 586정치인이라는 ‘아픈 손가락’이 있다. 한때는 진보정치의 아이콘이었지만, 지금은 ‘5060정당’으로 가는 얼굴이다. 돈봉투 사건, 청년비하 현수막, 여성 혐오 논란 등이 왜 나왔을까. 구태와 꼰대 마인드, 오만함에 당이 젖어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한 고민을 해봐야 한다.

지금의 민주당은 도덕적으로 여당을 압도하는가. 누구도 그렇다고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김남국 코인사태’로 도덕성에 큰 생채기가 났다. 재판을 받고 있는 당 대표를 비롯해 ‘돈 봉투’ 사건에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소속 의원들도 꽤 있다. 야당은 도덕적 우위에서 밀리면 당 간판을 내려야 한다. 어느 때 보다 선당후사의 자세가 필요하다. 선거제 개편은 개혁적 우위에 서는 ‘바로미터’다. 민주당이 국민의힘 요구대로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한다면 명백한 퇴행이다. 연동형제를 스스로 파기한다는 것은 당이 지켜온 오랜 가치이자 대의인 개혁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혁신은 기득권과 정치공학적 낡은 생각을 버리는 것으로 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희생과 헌신으로 마무리된다. 국민들은 혁신이 무엇인지를 잘 안다. 내년 총선에서 투표로 증명해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