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공연된 광주시립오페라단의 ‘라 보엠’ 중 제2막 카페 모뮈스 앞의 크리스마스 축제. |
12월이면 세계 유수의 오페라 극장에서는 앞다투어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 La Boheme, 1895년 이탈리아 토리노 오페라 극장 초연>을 올린다.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품 중 하나인 12월의 오페라 <라 보엠>은 프랑스의 앙리 뮈르제(Henri Murger, 1822-1861)의 소설 <보헤미안의 생활 정경-Scenes de la vie de Boheme, 1851>을 푸치니와 황금기를 같이 이끌었던 주세뻬 자코자(Giuseppe Giacosa), 루이지 일리카(Luigi Illica)의 대본으로 완성됐다. 파리의 가난한 예술가들의 청춘을 묘사한 이 작품은, 완성도 높은 대본과 푸치니의 수려하고 매혹적인 선율, 그리고 그의 흥행사적 기질이 녹아들어 완벽한 작품이다.
프랑스어 ‘보엠’은 ‘보헤미안을 이야기한다. 보헤미안은 유럽을 유랑하며 살았던 집시들을 지칭하기도 하고, 가난하지만 사회규범과 성공에 매달리기보다는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을 가리키는 단어이기도 하다. 소설 <라 보엠>은 파리와 견줄 수 있는 이탈리아의 가장 화려했던 도시 밀라노에서 가난한 유학 생활을 했던 푸치니에게는 자전적인 소재로 다가왔을 것이다. 푸치니가 다락방에서 가난과 싸워가며 동료 예술가들과 함께 꿈을 펼쳤던 당시 보헤미안적 삶의 추억은 오페라 <라 보엠>의 구석구석 디테일을 담는 중요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오페라 ‘라 보엠’ 중 제2막 카페 모뮈스 크리스마스 축제 군악대 행진.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
오페라 <라 보엠>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시작되는 주인공 시인 로돌포와 그의 연인 미미의 사랑 이야기로 파리 뒷골목의 가난한 예술가들의 사랑과 낭만을 담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순수한 예술가들의 보헤미안적 삶을 볼 수 있는 에피소드와 가녀린 미미와 로돌포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죽음으로 이끌어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사실 이 작품을 먼저 시도한 사람은 <팔리아치 Pagliacci, 1892>를 쓴 레온까발로였다. 그러나 그는 푸치니보다 1년 늦게 완성하긴 했지만, 레온까발로(Ruggiero Leoncavallo, 1858-1919)의 <라 보엠>은 푸치니의 작품보다 드라마틱하고 직설적이어서 원작 소설의 분위기에 훨씬 가깝다는 평을 얻었고 초연도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이러한 장점과 성공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푸치니의 오페라처럼 서정적인 멜로디를 다양하게 구사하지 못해 점점 인기가 떨어져 현재는 공연되지 않고 있다.
오페라 ‘라 보엠’ 중 제2막 카페 모뮈스.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
푸치니의 <라 보엠>은 아이러니하게도 원작 소설 속 진실과는 다르다. 원작 소설에서는 바람기 많은 미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조연으로 등장하는 무제타는 오페라에서는 화려하고 다수의 남자를 거느리는 여자로 이야기되지만, 원작에는 순정파 여인으로 등장한다. 원작에서 과연 미미의 삶을 바꾼 푸치니의 의도는 무엇일까? 간혹 호사가 중에는 애증의 관계이면서 강한 성격을 소유했던 자신의 아내 엘비라 때문에 푸치니가 엘비라와 반대되는 청순가련형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묘사했다는 이야기가 들리곤 한다. 그러나 가장 타당성 있는 이유로, 당시 사실주의 오페라 여주인공들이 <라 보엠>의 미미처럼 청순가련형 여인으로 안타까운 죽음의 결말을 맞이하는 것이 당시 유행이라는 주장과 오페라 제작자나, 오페라를 후원하는 이들이 거의 남성이다 보니 남성이 원하는 시각으로 제작될 수밖에 없었다는 반 페미니즘적 주장에 무게가 더 실린다.
‘라 보엠’을 각색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렌트. |
막이 오르고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1830년대 파리의 낡은 아파트의 꼭대기 층에서 시인 로돌포, 화가 마르첼로, 철학자 콜리네, 음악가 쇼나르는 집세를 받으러 온 집주인 베누아를 골탕 먹이고 함께 카페 ‘모뮈스 Momus’로 간다. 친구들을 먼저 내보내고 잠시 혼자 방에 남아 원고를 마치려던 로돌포에게 이웃에 사는 미미라는 처녀가 촛불이 꺼져 불을 얻으러 찾아오고, 그녀는 열쇠를 잃어버리고, 촛불까지 다시 꺼져버리지만 두 남녀는 손을 잡고 어느새 운명적인 상대방과 마법처럼 한순간에 사랑이 이루어지는 환상적인 장면이 전개된다.
친구들의 재촉에 미미와 로돌포는 2막의 배경인 카페에서 친구들과 함께 식사하게 된다. 광장은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려는 인파로 가득한데 예전 화가 마르첼로의 연인이며 바람둥이로 유명한 미녀 무제타가 알친도로라는 돈 많은 노인을 애인으로 거느리고 카페에 들어선다. 하지만 마르첼로와 무제타는 여기서 서로에 대한 열정이 그대로임을 확인하고 계산서를 모두 알친도로 테이블에 떠넘기고는, 함께 카페를 떠난다.
‘라 보엠’ 중 제3막 파리시 관문인 앙페르문 앞.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
두 달 후 이른 새벽 파리시의 관문인 앙페르 문 앞이 3막의 배경이다. 무제타와 마르첼로는 이곳 술집에 방을 얻어 함께 살고 있고, 병색이 짙은 미미가 마르첼로를 찾아와 로돌포의 질투와 변심으로 헤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하소연한다. 마르첼로는 이후 로돌포에게 이렇게 행동한 이유에 관해 묻고 로돌포는 가난한 자신과 함께 살아서 미미의 폐결핵이 더욱 악화하여 너무나 괴롭다고 말한다. 가난이 결국 미미를 죽일 것이라는 로돌포의 회한에 찬 말을 듣고, 숨어서 둘의 이야기를 듣던 미미는 흐느끼다가 기침 발작을 일으키고. 로돌포와 미미는 조용히 이별의 노래를 부르며 결국 헤어진다.
‘라 보엠’ 중 제1막 로돌포와 미미.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
4막은 다시 네 친구가 함께했던 다락방이다. 로돌포와 마르첼로는 헤어진 두 여인을 생각하고 있다. 이때 무제타가 달려 들어와 병이 위중해진 미미를 데려왔다고 말한다. 로돌포가 미미를 부축해 침대에 누이고 의사의 왕진비와 약값을 마련하고, 미미에게 토시를 사다 주기 위해 둘만 남겨두고 나간다. 둘만이 남은 다락방, 1막에 들었던 멜로디가 흐르며 미미는 로돌포와 처음 만났던 날을 기쁘게 회상한다. 이때 무제타가 들어와 토시를 건네주고, 마르첼로는 의사를 불렀으니 곧 올 거라 이야기하고 있지만 잠이 드는 듯했던 미미는 조용히 숨을 거둔다. 늦게 미미의 죽음을 알아차린 로돌포는 서럽게 미미를 부르며 울며 막이 내린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흥행사 푸치니의 주요 작품들은 현대에서도 다시 뮤지컬로 제작됐다. <라 보엠> 역시 <렌트>라는 뮤지컬로 만들어져, 현대 사회의 내음을 물씬 풍기며 브로드웨이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만큼 후대까지도 작품의 구조와 스케일이 현대 작품으로 각색되더라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작품의 스토리와 구성이 뛰어나다 보니 <라 보엠>은 여타 다른 오페라보다 이질감 없이 오랫동안 세계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세계인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는 <라 보엠>을 이 지역에서도 12월, 광주시립오페라단의 ‘월드 클래식 오페라 시리즈 Ⅲ 스페셜 갈라’로 만나볼 수 있다. 오는 12월, 신이 인간에게 선사한 가장 감동적인 무대, 푸치니 <라 보엠>과의 만남은 특별한 겨울을 우리에게 선사할 것이다. 최철 조선대 초빙교수·문화학박사
광주에서 12월에 가장 인기 있는 공연은 광주시립오페라단의 월드 클래식 오페라 시리즈다. 품격과 재미, 그리고 다양함을 내재한 이 시리즈는 항상 전석 매진이라는 수식어가 함께 한다. 12월 2일~3일 양일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만날 수 있는 ‘월드 클래식 오페라 시리즈Ⅲ 스페셜 갈라’ 푸치니의 <라 보엠>은 첫째 날 한국 최고의 지휘자 정치용과 국내 정상급 연주자들이 함께한다. 이튿날은 국내 최고의 합창 지휘자인 민인기 교수와 광주 성악가 70명이 함께 하는 장대한 솔리스트 앙상블로 가곡과 주옥같은 오페라 합창을 선사한다. 공연예약: 티켓링크 전석 2만원/문의: 062-412-2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