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서산대사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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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서석대>서산대사의 경계
이용환 논설실장
  • 입력 : 2023. 11.23(목) 17:09
이용환 논설실장
‘모름지기 한 생각 놓아버려라/놓아버리고 또 놓아버리면/본래의 청정한 본성이 그대로 드러날지니…’. 임진왜란 당시 승군으로 활약했던 서산대사는 불교계의 거목이다. 과거에 낙방한 뒤 지리산 등을 유람하다 불법에 심취했던 그는 어느 날 낮 닭이 홰를 치며 크게 우는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이후 33세 되던 해 승과에 장원으로 급제했지만 승려의 본분을 따라 금강산과 묘향산 등을 돌며 공부에만 집중했다. 임진왜란 때는 속세 나이 73세에 8도 도총섭에 올라 1500여 명의 승군을 이끌었다.

서산대사는 조선 시문학을 완성시킨 선시의 대가로도 유명하다. ‘좋은 철 좋은 경치 헛되이 보내지 마라/소나기와 모진 바람 때 없나니’라는 선시에서 보듯 그의 깨달음은 깊었다. “삶이란 한조각 뜬 구름이 잠깐 일어나는 것/죽음은 한조각 뜬 구름이 스러짐이라/뜬구름 자체가 본래 없는 것이니/나고, 죽고, 오고, 가는 것도 그와 같다네.”라는 입적송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된다. 노산 이은상은 서산대사의 시를 “사상으로는 너무 문학적이요, 서정으로는 뜻이 너무 깊다.”고 했다.

서산대사는 해남 대흥사와의 인연도 깊다. 출가 후 잠시 대흥사에 주석했던 서산은 임진왜란이 터지자 제자인 처영과 함께 승군의 총본영을 이곳에 세웠다. 입적하기 전에는 대흥사가 전쟁과 전염병, 기근 등 삼재를 피할 수 있는 명당이라며 자신의 가사와 발우를 이곳으로 옮겼다. 평안도 안주에서 태어나 묘향산과 금강산에서 평생을 수행했던 대사가 대흥사를 서산문중의 본산으로 삼은 것은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고, 호국불교의 요람인 대흥사의 가치를 알아본 혜안 때문이었다.

윤재갑 민주당 국회의원이 대흥사에서 열린 서산대사 추모 추계 제향에 참석한 뒤 스님들과 고깃집에서 폭탄주를 곁들인 식사를 했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서산대사를 추모하는 자리에서 정치인이 스님들과 술과 고기를 먹은 것을 정당화 할 수는 없다. 승려의 기본인 5계(五戒)를 어긴 스님들의 행태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서산대사는 생전 ‘성내는 마음이 지옥/탐욕이 아귀/어리석은 마음이 축생’이라고 했다. 탐욕과 집착에 대한 경계다. 불교계를 먹칠한 일부 승려와 정치인의 도리를 망각한 윤 의원에게 서산의 경계를 전하고 싶다. ‘세상 잇속에 물든 수행자는 권력에 아부해 흩날리는 먼지처럼 살다가 도리어 세속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고. 이용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