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시(時)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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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서석대>시(時)성비
곽지혜 경제부 기자
  • 입력 : 2023. 11.19(일) 16:22
곽지혜 기자
전남지역의 한 공공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Y(34)씨는 일주일에 두 번, 야간에 광주지역으로 대학원 수업을 가기 위해 탄력근무제도를 유용하게 이용하고 있다. 하루 8시간 근무에서 2시간을 일찍 퇴근함으로써 자신이 보유한 1개의 연차 휴가 중 0.25 분량을 사용하는 것이다. 갑작스럽게 몸이 아파 출근 전 병원 진료가 필요하다면 당일 지참을 내고 1시간 늦게 출근하는 것도 가능하다. Y씨에게 하루 8시간의 근무시간 중 1시간은 추상적인 숫자가 아니라 ‘0.125’라는 숫자로 명확하게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Y씨와 같이 최근 하루 단위로 사용하는 연차 휴가를 2시간 단위의 ‘반반차 휴가’로 쪼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관과 기업, 직장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부에서는 반반차를 다시 반으로 쪼갠 반반반차(1시간 단위 휴가)를 넘어 30분 단위 휴가를 사용하기도 한다. 바쁜 일상을 의미하는 ‘분초를 다투며 산다’는 말은 이제 단순한 관용어가 아니라 실제 우리 일상에서 이뤄지고 있다.

매년 연말 대한민국의 소비트렌드를 전망하고 있는 ‘코리아 트렌드’에서는 내년 핵심 키워드 중 하나로 ‘분초사회’를 꼽았다. 시간의 중요성이 매우 강조되는 사회로, 볼 것, 할 것, 즐길 것이 넘쳐나는 시대적인 흐름 속에서 자원인 돈만큼, 어쩌면 돈보다 더 ‘시간’의 가치가 월등히 높아지고 있음을 말한다. 저렴한 가격에 좋은 품질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원하는 ‘가성비’, 가격과 상관없이 만족스러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가심비’에 이어 시간을 투자해 얻는 가치와 만족도에 주목하는 ‘시(時)성비’의 시대인 것이다. 방금 전 우리가 무심코 넘겼을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속 숏폼이나 1.5배속으로 돌려본 넷플릭스 속 콘텐츠들 역시 시성비 현상의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널리 알려진 아프리카 속담처럼 속도와 시간에 너무나 치중된 삶은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속도를 배속으로 올려 시청한 유튜브 영상의 정보가 잘못된 정보임을 인지하게 된 경우는 이미 허다하다. 단편적인 정보를 빠르게 습득해 의사를 결정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을 초래할 수 있고, 이는 다시 정보에 대한 불안감을 가중시킬 수 있다.

빠르게 정보를 소비하고,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빠르게 삶을 즐기는 것은 우리 인생을 좀 더 효율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도록 돕겠지만, 오랜 시간을 투자하고, 고민하고, 반복하는 일 역시 그만한 보상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빨리 해야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한 시기인 것이다.

우리 삶에는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능력도 필요하지만, 오래 집중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 서너 시간 차분히 앉아 책 한 권을 읽어본 때가 언제인지 기억 속에 희미하다. 오늘 저녁은 유튜브 숏폼 대신 먼지 쌓인 책 한 권과 ‘시간’을 보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