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딸기와 스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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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딸기와 스파이
김성수 논설위원
  • 입력 : 2024. 04.30(화) 14:33
김성수 논설위원
프랑스 루이 14세는 1712년 스페인의 식민지인 칠레의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 아메데 프랑수아 프레지어 중령을 스파이로 파견한다. 프레지어는 칠레의 토종 딸기를 연구하는 식물학자로 위장했다.

프레지어는 식물학자처럼 풀과 나무를 조사했다. 조사내용은 수첩에 기록됐는데 물론 칠레 지역의 정치, 군사적 정보에 대한 암호들이었다. 식물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으나 덕분에 이것 저것 배우게 됐고, 몇몇 인상깊은 것들은 메모하고 종자를 채집했다. 루이 14세는 프레지어가 보낸 정보를 보고 매우 만족했다고 한다. 1714년 프레지어는 임무를 마치고 귀국할 당시 칠레산 야생딸기 종자를 가지고 왔다. 지금 먹는 딸기의 역사는 국가 간의 치열한 스파이전에서 유래됐다.

프레지어가 가지고 온 딸기는 진짜 식물학자와 육종학자의 연구 끝에 1764년 거의 50년 만에 신품종 딸기로 재탄생하게 된다.

한국에 딸기가 보급된 것은 불과 100여년 전이다. 유럽에 퍼져나간 딸기는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에 의해 국내로 들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후 일본의 개량딸기인 ‘육보’나 ‘장희’품종이 국내 점유율 86%(2002년 기준)를 차지했다. 당시 한국 품종은 1%에 그쳤다. 연간 60억원의 로열티 사용료가 일본으로 빠져나갈 위기에 있었으나 2005년 한국산 토종 재배품종인 ‘설향’이 큰 성공을 거뒀다. 10년 뒤인 2015년 국내 점유율이 90%에 육박했다. 하지만 단일품종 탓에 전염병이 확산되자 품종 다변화를 통해 현재는 국내 품종은 20여개에 달한다.

100여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 한국 딸기는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품종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해 수출액이 6467만달러(2021년 기준)로 딸기 수출국 세계 5위에 올랐다.

최근엔 담양 딸기가 해외에서 첫 로열티를 받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담양군은 최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TES 그룹과 ‘담양산 딸기 죽향·메리퀸 로열티 계약’을 체결했다. 군은 계약을 통해 향후 10년간 딸기 재배 기술을 지원하고 1억원의 로열티를 받는다. 담양딸기는 인도네시아 시장에 이어 몽골, 베트남에도 수출을 했고, 중동 유럽 미국에 딸기 원묘 수출도 추진하고 있다. 첫 로열티를 받는 담양 딸기가 전국 3대 주산지를 넘어 ‘세계화’를 향해 전진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