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보이콧(Boyco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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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보이콧(Boycott)
곽지혜 취재1부 기자
  • 입력 : 2024. 05.12(일) 18:26
곽지혜 기자
‘보이콧(Boycott)’은 정치·경제·사회·노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행위에 맞서 집단이나 조직적으로 벌이는 각종 거부운동을 말한다. 얼핏 보면 영어 합성어쯤으로 짐작될 수 있지만, 보이콧의 어원은 실존 인물이었던 찰스 커닝엄 보이콧(1832~1897)으로부터 나왔다.

잉글랜드에서 태어난 찰스 보이콧은 군 장교로 임관하면서 아일랜드로 가게 된다. 그는 제대 후에도 아일랜드 지역의 한 경작지 지배인으로 토지 관리에 대한 경험을 쌓다가 메이요(Mayo) 주에서 토지 대리인으로 활동하며 생활을 꾸려나가게 된다.

찰스 보이콧이 아일랜드에 자리 잡은 시기는 기후변화로 감자 생산량이 급속히 줄어들면서 800여만명의 아일랜드 인구 중 200여만명이 굶어 죽는 대기근의 시대였다. 이러한 고난의 시기에도 소작료를 쓸어가는 지주들의 횡포는 변함이 없었고, 아일랜드인들은 단체를 만들어 지주들과 맞서기 시작했다. 특히 1879년 결성된 ‘아일랜드 토지연맹’은 영국 의회를 상대로 소작농의 권리 개선을 강력하게 요구했는데, 이 사회운동이 찰스 보이콧이 관리하던 토지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찰스 보이콧은 아일랜드 토지연맹의 운동에 참여한 소작농들을 강제로 추방했다. 이에 분노한 농민들은 노동을 거부하며 마을 사람들과 힘을 모아 모든 상점에서 찰스 보이콧에게 어떤 물건도 팔지 않기로 결의했다. 일하던 노동자들은 그를 떠났고, 마을의 우체부들은 그와 관련된 우편물과 배달물들을 전달하지 않았다. 마을에서 아무도 그를 상대하지 않는 것으로 찰스 보이콧을 ‘보이콧’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찰스 보이콧은 마을에서 완전히 격리됐고, 그가 관리하던 토지에서는 어떤 농작물도 수확할 수 없었다. 다만, 결말은 다소 씁쓸하다. 격리된 찰스 보이콧은 외부에 도움을 청했다. 신문 기사와 찰스의 서신을 통해 상황을 파악한 아일랜드 치안판사는 경찰과 주둔군을 마을로 보내 그를 탈출시키고 남아있던 농작물까지 모두 거둬간다.

전남권 국립의대 유치를 추진하고 있는 전남도는 최근 순천대와 목포대, 순천시와 목포시가 모두 참여하는 ‘5자 회동’을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순천지역에서 참여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의과대학을 유치할 지역대학을 공모로 선정하고자 한 전남도의 방침에 순천지역은 일종의 ‘보이콧’을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벌써 수차례의 입장 표명을 통해 순천시는 공모 방식에 대한 불공정성과 불참 의사를, 전남도는 공모 방식에 대한 적합성만을 입이 닳도록 외치고 있다.

물론 순천지역의 보이콧과 전남도와 의대 유치를 희망하는 각 지역, 대학의 상황은 지주와 소작민들의 갈등에 빗댈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다만, 직접적인 대화는 거부한 채 자신들의 입장을 지속적으로 표명하는 방식으로의 소통은 결과를 도출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됨은 물론, 그 누구도 수확을 거둘 수 없는 씁쓸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현재 시간은 전남도, 순천지역 그 누구의 편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