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역사의 문에서 박관현 열사 제41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김혜인 기자 |
박관현 기념재단은 12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역사의 문에서 박관현 열사 제41주기 추모식을 열었다.
50여명이 참석한 이날 추모식은 국민의례를 시작으로 △이사장 인사말 △추모사 △열사 육성청취 △유족 인사말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헌화·분향 순으로 진행됐다.
지난 40주년에 비해 규모가 간소화됐지만 추모식 현장은 박관현 열사를 그리워하는 목소리로 가득 찼다.
5·18 최후 수감자인 최운용씨는 추모사에서 “교도소에서 6일 동안 단식 투쟁을 벌였는데 박관현 열사가 제게 그만두라고 설득했다. 본인이 대신 할 테니 복식 하라면서 말이다”며 “수감된 상황에서도 동지들을 걱정하고 처우개선을 요구했던 박관현 열사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박관현 열사의 유족들은 40년이 지나도 한결같이 뜨거운 추모 열기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박관현 열사의 누나인 박행순씨는 “매년 10월에 빠짐없이 참석해 준 분들에게 감사하다. 함께 슬퍼하면서 추모하는 마음 변치 않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후 다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후 국립5·18민주묘지 제 1묘역에 안장된 박관현 열사의 묘 앞에서 헌화, 분향 및 제례를 진행하면서 추모식이 마무리됐다.
박관현 열사는 1980년 5월14일부터 이틀간 전남도청 앞에서 광주 시민과 함께 ‘민족민주화대성회’를 주도했다가 전두환 군부의 비상계엄 확대로 수배된 뒤 도피 생활을 했다. 이후 2년 동안 서울 도봉구 일대에서 공장 노동자로 지내다가 동료 노동자의 밀고로 경찰에 체포, ‘내란 주요임무 종사자’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5·18 진상규명과 교도소 수감자들의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40일간 옥중 단식 투쟁을 벌이다 1982년 10월12일, 29세의 나이로 운명했다.
김혜인 기자 hyein.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