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This, too, shall p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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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전남일보]서석대>This, too, shall pass.
최도철 미디어국장
  • 입력 : 2023. 10.12(목) 15:44
최도철 국장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는 세간에서 많이 인용되는 문구 가운데 하나다. 이 말은 유대인들이 즐겨 읽는 성경해석서 ‘미드라시’에 기록돼 있다. 대강은 이렇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유명한 양치기 소년 다윗은 나중 사울왕에 이어 이스라엘의 2대 왕으로 등극한다. 그는 40년간 통치하면서 왕국을 통일시키고 오랜 시간 평화를 이룩해 이스라엘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왕위에 오른 다윗은 적국들과의 전쟁에서 연일 승전가를 울린다. 싸움에 나가면 늘 승리했지만 현명한 다윗왕은 언젠가는 패배할 날이 오리라 생각했고, 그때 마음을 추스릴 좌우명이 필요했다.

그는 세공사를 불러 “날 위한 반지를 만들라. 거기에 전쟁에서 이겨 환호할 때도 교만하지 않게 하며, 내가 큰 절망에 빠져도 좌절하지 않고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글귀를 새겨넣으라”고 명했다.

세공사는 심혈을 기울여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으나, 빈 공간에 새겨 넣을 적절한 문구가 떠오르지 않아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생각끝에 세공사는 지혜로운 왕자 솔로몬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때 솔로몬이 알려준 경구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이다. 반지를 받은 왕은 몹시 흡족해 했고 평생동안 끼고 다녔다고 한다.

이 잠언에 함축된 메시지는 “기쁜 상황도, 슬픈 상황도 결국 지나가니 ‘일희일비’하지 말고 의연한 태도를 지녀라” 이다. 하지만 정반대의 상황을 직관적으로 잘 조합한 본래 의미와 다르게, 현대에 들어서는 자신에게 곤경이 닥칠 때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고 잊혀질 것이라는 의미만이 부각되는 경향이 있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 또한 지나리라’를 뼈에 새기고 훗날을 도모한 사람들이 많다. 과하지욕(袴下之辱)의 수모를 견뎌내고 한나라를 세운 한신(韓信)과 같은 인물이다.

조선말 흥선대원군도 개중 한 사람이다. 이하응은 60년 넘는 안동 김씨들의 세도정치로 왕손들의 목숨이 위태로웠을 때,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짐짓 미친 척하며 부랑인 행세를 했다. 왕위에 오를만한 왕족들이 세도정치기를 거치면서 모두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당대 세도가들의 능욕으로 기생의 치맛자락까지 기어들어 가야 했던 대원군은 훗날 자신의 둘째 아들을 왕으로 만들며 안동김씨들에게 멋진 복수를 한다. 고종황제이다.

태종의 맏아들 양녕도 아버지의 뜻이 동생 충령에 있음을 알고 일부러 광인(狂人) 행세를 하고 술주정뱅이로 주유천하한다. 어쩌면 괴로운 심정에 쓰디 쓴 잔을 기울일 때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되뇌었을 지도 모른다.

10월 중순. 결곡한 가을하늘은 저리도 아름다운데, 세상은 더 없이 소란하고 음습하다. 무도한 무리들이 완장을 차고 패악을 부리는 세상이 언제나 지나가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