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 서석대>‘연대’와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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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 서석대>‘연대’와 ‘정의’
곽지혜 경제부 기자
  • 입력 : 2023. 10.11(수) 16:35
곽지혜 기자
자본주의 초기, 영국의 농촌에서 강제로 추방돼 도시로 몰려든 노동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기 노동력을 자본과 교환해야 했다. ‘노동 노예’가 된 이들은 궁핍한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역별 노동자들끼리 모여 우애조합이나 독서클럽, 축구클럽 등 각종 모임을 만들어 다수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노동자 공동체’를 만들었다.

박지성, 손흥민 등 대한민국 최고의 축구선수들이 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토트넘 등 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축구 클럽 뿌리도 바로 이 노동자들의 축구 클럽이라고 한다.

물론 해당 팀들의 경기는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입장료로 오늘날 영국 노동자들이 가벼운 유흥으로 즐기기에는 어려운 귀족 상업 축구로 변했다.

1970년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자기 몸에 불을 붙인 전태일을 기점으로 1987년 6월 항쟁, 노동자 대투쟁 등을 거치며 한국 사회에도 현재의 노동조합들이 제대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노동조합은 가혹한 노동 착취와 산업재해로부터 노동자와 그의 가족들을 보호했다. 불합리한 대우에 대처하고 적법한 이익을 누리기 위해 연대의 힘으로 파업 등 단체행동을 벌이고 임금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운동 등도 전개해 왔다.

하지만 최근 한국 사회에서 노동조합은 그다지 호의적인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해관계로 점철되다 못해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흥망성쇠가 결정되기 일쑤다. 그들 안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어 새로운 ‘연대’를 만들어 내고 있다.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을 추구하는 데만 목소리를 키우는 노동조합은 국민들에게 경제의 발목을 잡는 무책임한 이기주의자들로 여겨지고 일부 대기업 노동조합에는 ‘귀족 노조’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다.

올해 호실적을 보인 국내 완성차업계가 이례적으로 추석 전 임금 및 단체협상 타결에 성공했다. 하지만 기아 노사는 결국 협상을 타결하지 못하고 파업 단행 소식을 전해왔다. ‘재직 중 질병으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이나 정년퇴직자 및 25년 이상 장기 근속자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는 고용 세습 조항을 삭제하려는 사측과 정년 연장 및 임금 인상안을 관철시키려는 노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조합은 원래 노동자들의 이익을 요구하는 ‘이익집단’이 맞다. 하지만 그 이익이 모든 국민에게 균등한 권리를 침해할 경우 그들이 외치는 것은 더 이상 ‘정의’도 ‘연대’일 수도 없다. 닫힌 성 안에서의 투쟁은 그 끝이 정해져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