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취재수첩>'효율적 운영'의 답이 '예산 삭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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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전남일보]취재수첩>'효율적 운영'의 답이 '예산 삭감'?
강주비 사회부 기자
  • 입력 : 2023. 10.03(화) 16:15
강주비 기자
지난겨울 ‘카임’이라는 이름을 가진 캄보디아 국적의 한 이주 노동자를 취재한 적이 있다. 그의 ‘집’이라는 5평 남짓한 작은 방에서 만난 카임씨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사정을 들어보니 카임씨는 그의 고용자와 고용센터 간의 소통 오류로 고용허가 기한을 놓쳐 졸지에 불법체류자가 된 상황이었다. 광주에서 터를 잡고 생계를 꾸려온 지 수년째였음에도 막상 어려움이 닥친 그가 도움을 청할 사람은 없었다.

그가 기댈 수 있는 곳은 몇 없는 ‘지원 기관’ 뿐이었다. 광주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가 그 중 하나였다.

카임씨는 센터의 도움을 받아 외국인노동자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한 변호사를 만나고 법적 대응 등을 준비했다. 그 결과 몇 개월 뒤 카임씨는 ‘노동청은 자신의 귀책 사유 없이 구직등록기간이 경과해 미등록 외국인 신분으로 체류 중인 이주노동자에 대해 구직등록기한의 연장 등 적절하고 적극적인 구제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답변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카임씨와 같은 사례는 기대하기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정부가 내년도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의 예산을 전액 삭감키로 했기 때문이다.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는 지역 외국인노동자를 대상으로 근로 중 발생한 고충 상담과 권리 구제를 비롯해 한국어·생활법률·정보화 교육 등을 제공하는 곳이다. 외국인노동자에겐 한국 정착에 있어 ‘필수’로 거쳐 가는 기관이자, 유일한 ‘소통 창구’이기도 하다.

지난 2004년 첫 개소 이후 현재까지 전국 9개 거점센터와 35개 소지역센터로 확대된 것만 보더라도 그 중요성은 크다. 광주 센터 역시 지난해에만 2만1391건의 상담과 1만5752건의 교육사업을 진행하는 등 좋은 실적을 내왔다.

그런데 돌연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각 센터 대표들을 불러 모아 ‘내년 예산을 전액 삭감하니 폐지를 준비하라’고 통보했다. ‘효율적 운영’을 위해 센터를 폐지하고 상담 사업은 고용노동부의 각 지방관서로, 교육 사업은 한국산업인력공단으로 이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센터 측은 주장처럼 외국인노동자의 프로그램 참여율은 주말이 월등히 높은데, 주말에 일하지 않는 관공서서 해당 업무를 도맡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욱이 고용노동부는 사업장별 외국인노동자의 고용한도를 2배 이상 늘리고 내년 12만명 이상의 외국인력 도입을 발표하는 등 외국인노동자를 확대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현재도 국내 외국인 취업자 수는 공식 통계로만 84만여명, 이들이 받지 못한 체불 임금 규모는 매년 1000억 이상이다. 외국인력이 늘어나면 이들이 겪는 문제는 더욱 다양하고 많아질 것이 자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오랜 기간 관련 사업을 전담해 왔던 기관을 한순간에 없앤다면 부작용도 불 보듯 뻔하다.

외국인력 확대에 관한 ‘효율적 운영’의 답이 ‘예산 삭감’이라는 건 좀처럼 납득키 어렵다. 일방적 통보의 대화 방식로는 더욱 그렇다. 어딘가 분명히 존재할 또 다른 카임씨를 위해서라도 현실과 동떨어진 센터 폐지 방안은 다시 한번 검토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