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서 공부도 e스포츠도 둘 다 잡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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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서 공부도 e스포츠도 둘 다 잡을 거예요”
● 전국 첫 e스포츠부 훈련현장
지난달 광주 2개 고교에 창단
방과 후에 모여 팀 훈련 매진
선수 미등록·전문 코치 ‘과제’
교육청 “학업·선수 인정 고심”
  • 입력 : 2023. 09.21(목) 17:59
  •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
지난 18일 광주공업고등학교 e스포츠부 학생들이 팀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정성현 기자
“나 먼저 가 있는다! 빨리 와!”

광주 북구 광주공업고등학교에는 수업이 끝나는 오후가 되면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일과를 마친 한 고등학생 무리가 가방을 둘러메고 다른 교실로 뛰어가는 것이다. 그들이 향한 곳은 학교 내 컴퓨터실.

학생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의 프로그램을 켠다. 프로그램 이름은 라이엇게임즈의 ‘리그오브레전드’. 이는 최근 ‘2023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e스포츠 게임이다. 게임이 켜질 때까지 웃던 학생들은 이내 경기가 시작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집중했다.

이 생소한 광경의 주인공은 고교 ‘e스포츠 운동부 선수’들이다. 지난달 31일 광주시교육청을 통해 △광주공업고(10명) △광주자연과학고(6명) 두 곳에 전국 최초로 창단됐다. 감독은 각 학교 체육 교사가, 코치는 광주아시아e스포츠산업지원센터에서 맡았다. 훈련은 매주 월·수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2시간 동안 진행된다. 주요 종목은 앞서 소개한 ‘리그오브레전드’다.

이날 훈련에는 개인 사정 등으로 참여하지 못한 학생을 제외하고 6명의 선수들이 모였다. 이들이 컴퓨터실에 들어오자마자 곧장 게임을 킨 까닭은 ‘손을 푸는 행위’ 즉, 준비 운동을 하기 위함이었다. 코치의 현장 교육에 앞서 손의 긴장감을 풀어줘야 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박성현(17) 선수는 “게임에 접속해 1:1 대련을 하거나 팀을 짜서 네트워크상의 상대방과 겨룬다. 단순히 그냥 게임을 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에게는 이게 ‘연습 경기’”라며 “하루 종일 펜을 잡고 있다 보면 손이 굳는다. 10~20분 정도 풀어주면 점차 제 컨디션을 찾는다. 오늘은 이론과 실습이 함께 진행된다 해 개인적으로 살짝 연습만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광주공업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코치에게 게임 전술 및 보완점 등을 전달받고 있다. 정성현 기자
이어 훈련이 시작됐다. 주제는 ‘리그오브레전드 전술 이해 및 모의 실습’이다. 이는 가상 프로그램을 이용해 실제 대련을 하지 않더라도 경기 과정을 유추해 낼 수 있는 훈련법이다. 상대방의 전술에 여러 가지 상황을 대입해 보며 좋은 결괏값을 도출해 낼 수 있다. 지도는 호남대 e스포츠산업학과에서 파견된 강지원 MGT 코치가 했다.

학생들은 전술마다 달라지는 결과들에 머리가 아픈 듯 깊은 탄성을 내쉬었다. 이따금 자신이 정한 대결 구도가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주먹을 불끈 쥔 채 기쁨의 함성을 지르기도 했다.

주장 조수원(18) 선수는 “평소 게임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e스포츠부에 들어와서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여실히 느끼고 있다. 팀 게임이다 보니 개인 실력보다 ‘호흡’의 중요성에 대해 깊게 깨닫고 있다”며 “코치님에게 전문적인 교육을 받다 보니 매번 새로움으로 자극이 된다. 또 학교에서 게임을 배우니 신기하고 더 집중이 잘 된다. 올해 안으로 이 팀원들과 e스포츠 대회에서 꼭 입상하고 싶다. 공부와 e스포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강지원 코치는 “학생들이 정말 열정적이다. 교육을 여러 차례 나갔지만 이처럼 관심을 보인 적은 없었다”며 “일반적인 게임과는 달리 e스포츠는 ‘데이터’를 활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대부분 어려워한다. 두뇌와 순발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동부라 그런 지) 확실히 남다르다. 교육하는 입장에서도 너무 즐겁다”고 말했다.

학내 운동부로 소속돼 열심히 훈련에 매진하고 있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특히 현 제도상 e스포츠가 공식 교육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가장 크다.

오명훈 광주공고 e스포츠 담당 교사는 “현재 e스포츠부 학생들은 대한체육회 선수로 등록되지 못해 (야구·축구 등) 타 체육 엘리트 선수에 비해 불편함이 있다”며 “대표적인 사례가 교육을 방과 후에 진행하는 것과 교육청으로부터 ‘전문 체육 지도자’를 배정 받지 못하는 것 등이다. 학생들이 e스포츠인으로 향후 진로를 정하고 굳건히 연습에 매진할 수 있도록 국가·교육 기관에서 더 많은 도움과 지원을 고려해 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광주시교육청 체육예술인성교육과 관계자는 “이제는 e스포츠가 단순한 게임이 아닌 체육의 한 종목으로서 분류됐다. 교육청도 교육과 스포츠 사이의 ‘미래 투자’로 e스포츠부를 신설한 것”이라며 “학업·선수 인정 문제 등에 대해 함께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e스포츠부가 창단된 두 학교는 내년부터 광주시교육청을 통해 유니폼·각종 용품 및 대회 참여비·연습 공간 리모델링 등 일반 운동부와 동일한 지원을 받을 예정이다.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