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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전남일보]취재수첩> 바다 황제의 몰락
김은지 전남취재부 기자
  • 입력 : 2023. 09.21(목) 12:35
김은지 기자
바다의 황제라 불리며 고급 수산물의 대표로 꼽히던 전복의 명성이 무너지고 있다.

최근 전국 전복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완도에서는 전복 어민들의 파산신청이 급증하는 추세다. 전복 가격 폭락이 지속되면서 전복 양식 어가의 소득이 급감하고 결국 어가 부채 증대로 이어져 지역 경제 위축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어릴 적 완도에서 살았던 나 역시 이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어느 자리를 가나 완도가 고향이라 밝히면 되돌아오는 질문은 항상 “부모님이 전복 양식을 하시나요?”였다. 부모님이 전복 양식을 짓지는 않으시지만, 친척들이나 이웃사촌, 친구들의 부모님 등 한 다리만 건너면 전복 양식을 짓고 있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정도이긴 했다. 그만큼 완도는 오래전부터 전복 양식 어가가 즐비한 상황이었다.

수치로 살펴보면 2008년만 하더라도 36만칸이었던 전복 해상가두리 시설량은 지난 2020년 기준 110만칸으로 10년 새 3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복 생산량 역시 6000톤에서 1만4411톤으로 2배 넘게 늘었다.

이 같은 전복 양식시설 확대로 인한 과잉 생산은 매년 전복값을 폭락하게 만들었다. 전복 가격은 1㎏(10마리) 기준으로 2014년 5만3236원이었으나 2015년 4만4750원, 2016년 3만9451원, 2017년 4만1800원, 2018년 3만4430원, 2019년 3만6100원, 2020년 3만5000원을 기록했고 2021년 3만2000원으로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배출에 따른 소비 위축까지 겹치며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하지만 전복의 몰락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결과가 아니다. KMI 수산업관측센터는 10여년 전부터 보고서 등을 통해 완도군의 전복 양식장에 밀식에 따른 높은 폐사율과 생산량 증가에 따른 가격 하락으로 상황이 악화될 것이라 꾸준히 우려해왔다.

수년 전부터 이미 레드오션이었던 전복 양식이었지만 이를 무시하고 그저 수입이 크다는 이유로 전선에 뛰어든 어민들 그리고 제한 없이 무작위로 양식을 허가한데다, 불법 가두리 시설을 관행이라 넘기고 관리하지 못한 지자체에 그 책임이 없다고 볼 수 없는 이유다.

이제는 소비 촉진과 같은 소비자에 의존하는 일시적인 방안만으로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

전복 양식이 이뤄지고 있는 지자체와 전복 양식 어가는 전복 생산량을 시장에서 감당할 수 없는 ‘수급 불균형’ 상황임을 받아들이고 생산성 제고와 적정 생산을 위한 구조조정과 산업 안정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