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황지 기자 |
정부의 공세가 세질 수록 지역사회 불안감도 커진다. 정부가 이렇게까지 반대하는데 굳이 사업 추진을 강행하는 것이 맞냐는 회의적인 분위기도 감지되고 나아가선 정치·행정적 불이익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보수·진보 집권과는 상관없이 광주시가 20년 넘게 추진중인 사업은 정부의 공세가 세질 수록 ‘불온한 사업’이 되고 있다. 한중 우호 협력을 위해 정부가 먼저 추진했던 사업을 광주시가 문화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이번 사업 추진이 이념·사상논쟁과 결부되면서 광주는 더더욱 외딴섬이 되고 있다. 힘과 권력을 앞세운 중앙정부를 상대로, 광주시가 ‘철지난 이념’이라며 맞서고 있지만 누가봐도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으로 비쳐지고 있다.
한편,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의 흉상도 이전될 것으로 보인다. 홍 장군의 인생 궤적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업적보다 소련 이주 후 공산당원으로서의 활동에 현 정부는 낙제점을 줬다. 홍범도 장군과 음악인 정율성은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역사적 인물이기 때문에 더더욱 신중한 평가와 논의가 이뤄져야 하지만, 정부의 결정이 시급하게 이뤄졌다는 점에서 불편한 마음도 든다. 더욱 찝찝하게 하는 건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광복절 78주년에 “공산 전체주의 세력에 굴복하거나 속으면 안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을 바탕으로 이번 일련의 사태를 추론하면,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했더라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위한 건국운동이 아니라면 그것은 반국가적인 활동이다. 이것은 21세기 윤 대통령이 쏘아올린 이념논쟁의 시작이고, 극단으로 분열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양극을 더욱 부추기는 양자택일의 정치다.
우리가 가진 사상 자체에 반하면 ‘적이다’라는 이념은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을 수 있는 경직된 사회를 만든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의 역사관은 우리사회의 다양한 개개인을 대변할 수 없다. 역사적 평가는 권력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국민들이 하는 게 맞다. 광주시는 정율성에 대한 사업을 추진하면서 인간 정율성의 명과 암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를 영웅화하지도, 추앙하지도 않았으며 삶의 궤적을 전시해 많은 관람객들에 그 평가를 맡겨왔다. 그렇다면 정부는 광주시와의 고민을 나눠지고, 사업 수정이 필요하다면 협의를 통해 수정하면 된다. 냉전 시대의 철지난 논쟁을 끌어와 “반국가적 인물”이라며 혈세를 한푼도 쓰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지 않아도 충분히 절충안을 찾을 수 있다. 권력은 타자에게 동질성을 요구하는 순간 폭력성을 발현하게 된다. 공동체 안에서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용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윤석열 대통령이 주장하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