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중재 전 교장 |
젊은 교사 시절, 제자들을 바르게 가르치려고 회초리를 들었고, 심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수없이 반성문도 받았고, ‘벌’로 화장실 청소시키는 것은 보통이었다. 그래도 그런 일로 학부모의 항의를 받아 본 일은 없었다. 자기 자식이 잘못되지 않도록 매라도 때려서 바르게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옛날에는 친구의 물건을 훔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도벽증은 고쳐 주어야 하기에 철저히 지도했다. 좋은 만년필은 학생들이 선호하는 물건이었다. 그것을 찾으려고 학급 전체 아이들에게 단체 기합을 주기도 했다. 책상 위에 꿇어 앉혔다. 자로 손뼉을 때리기도 했다. 지금 이라면, ‘교사가 학생 폭행’으로 신문 지상에 오르내렸을 것이다. 학년 초가 되면 새로운 학생들 중에서 다루기 힘든 학생이 없기를 기대하나 꼭 그런 아이들은 한두 명 있었다. 그런 아이들은 하교할 때까지 눈길을 뗄 수가 없었고, 그 한 학생 생활지도가 나머지 학생들의 생활지도보다도 힘들었다면 믿기지 않을 것이다.
시골학교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 생각난다. 긴 복도에서 동학년 교사들이 모여 점심을 먹고 있는데 복도의 끝 쪽에서 몇몇 학생들이 두꺼운 하드보드 책받침으로 배드민턴을 치면서 떠드는 것이었다. 동학년 교사들 중에서 필자가 제일 젊었기 때문에 일어나서 호통을 쳤다. “밖에 나가서 치지 못해!”그래도 내 말은 듣지 않고 계속 공을 쳐댔다. 내가 쫓아가니 교실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교실로 들어가 덩치 큰 학생을 책받침으로 때린 것이 상처가 나고 말았다.
퇴근 후, 아이 집에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했으나 아이 엄마는 용서할 태세가 아니었다. ‘아니다. 아이 아버지를 만나 죽게 두들겨 맞더라도 용서를 구해 보자.’무릎을 꿇고 “용서해 주세요. 학생이 아무리 잘못했더라도 체벌은 안 되는데 제가 잘못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귀 따귀라도 때릴 줄 알았는데 웃으면서 “선생님! 빨리 일어나세요. 무슨 그런 말씀을 다 하십니까? 학생들이 잘못하면 선생님은 타이르고 가르쳐 바로 잡아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생님께서 젊으시니까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 걸 따지면 어찌 학생들을 바르게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이 아버지의 말이 귀에 쟁쟁하다. 예수님께서 ‘일곱 번이 아니고 일흔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라고 한 말씀을 실천하는 학부모라고 생각했다. 필자의 교직 초년시절에 큰 교훈이 되었다.
제사상에 ‘초율시이(棗栗枾梨)’로 감을 세 번째 놓았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데 감은 그렇지 않다. 감의 씨를 심으면 고욤나무가 난다. 좋은 감나무를 잘라 이 고욤나무에 접을 붙여야 좋은 감이 열린다. 고욤나무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상징한다. 생가지를 칼로 잘라 접붙일 때처럼 아픔이 따른다. 그 아픔을 겪으며 선인(先人)의 예지를 받을 때 비로소 하나의 인격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교육의 아픔을 겪어야만 참 사람이 된다는 뜻이 담겼다. 감나무는 아무리 커도 열매가 한 번도 열리지 않은 나무 속에는 검은 심이 없으며, 감이 열린 나무는 검은 심이 있다. 이것은 부모가 자식을 낳고 키우고 교육하는데 그만큼 속이 상한다는 교훈이다.
옛말에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라고 했다. 낳는 것은 부모이지만 사람은 선생님이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아이들의 다툼이나 선생님에게 꾸중을 들었더라도 ‘학교폭력’으로 몰아세워 고소·고발의 인격적인 모독행위까지는 지나친 행동이 아닌가? 학생의 인권도 중시해야 한다지만 교권이 바로 서지 않고서 어찌 참 교육이 이뤄질까? 아무리 교권을 바로 세우기 위한 좋은 법을 열 번 만들어 낸다고 해도 ‘교사·학생·학부모’사이에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마음이 없다면 공염불이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