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 위협하는 '상가 통유리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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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사생활 위협하는 '상가 통유리건물'
광주 A아파트 인근 신규 상가 신축
아파트와 불과 33m…외벽 통유리
낮엔 다 보이고, 밤엔 빛반사 고통
단지 내 동 이격거리 외 기준 없어
강은미 의원 “사생활침해 막아야”
  • 입력 : 2023. 07.16(일) 18:26
  • 김혜인 기자 hyein.kim@jnilbo.com
지난달 광주 서구 금호동의 한 아파트 단지내에 통유리로 된 상가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독자 제공
“상가 공사할 때만 하더라도 전혀 몰랐어요. 건물 전체를 온통 유리로 뒤덮어서… 반사된 이웃들 모습을 보는것, 민망함을 넘어서 불쾌하고 두렵죠.”

광주 서구 금호동의 한 아파트에서는 한여름에도 불구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베란다 문이나 커튼을 활짝 열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월부터 완공돼 가는 아파트 단지 입구에 들어선 통유리로 된 상가 건물 때문이다. 해당 건물의 모든 외벽이 유리로 마감돼 있어 불과 30여m밖에 떨어지지 않은 107동 주민들은 사생활침해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었다.

지난 10일 찾아간 해당 상가.

이곳은 준공검사를 앞두고 있지만 벌써 3~5층에 사우나와 헬스장이 들어선다는 소식이 현수막에 커다란 글씨로 쓰여있었다.

‘ㄴ’자 형태의 5~10층 통유리 상가에 들어가서 테라스 공간에서 본 107동의 모습은 모든 세대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커튼으로 가리지 않으면 훤히 노출될 수 밖에 없었다.

실제 주민들과 상가에 진입해 6층 테라스에서 107동을 바라보니 베란다에 널려있는 빨래부터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는 모습까지 눈에 들어왔다.

107동 주민인 김모(41)씨는 “한 번은 공사기간에 아이가 베란다에서 공사장 인부들을 향해 ‘아저씨’라고 부르자 바로 소리를 듣고 대답을 해준적도 있다”며 “그만큼 가까운 곳에 큰 상가가 세워지는 것도 답답했는데 통유리라는 걸 깨닫고는 ‘정말 주민들을 위한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107동 주민은 “입주자들 단체로 건물을 시찰했을 때 어느 한 분이 자신의 집에서 딸이 옷을 제대로 입지 않은 채로 돌아다니는 모습이 훤히 보이는 걸 목격하고 곧바로 딸한테 전화를 걸었다”며 “이 상가에서 마음만 먹으면 어느 집이든 거실 모습부터 옷차림까지 다 지켜볼 수 있는 셈이다”고 설명했다.

지난 10일 광주 서구 금호동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 들어서는 통유리 상가 건물 테라스에서 바라본 아파트의 모습. 김혜인 기자
뿐만 아니라 밤에는 해당 상가의 유리벽이 아파트 세대를 반사시켜 대형거울이 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주민들의 불편은 더욱 가중되는 상황이다.

특히 야간 시간에는 상가에서도 낮 시간보다 더 뚜렷하게 세대 내 모습들이 비쳤고, 아파트의 불빛 또한 통유리 건물에 반사되면서 밤낮 가리지 않고 피해를 보고 있다.

상가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외벽에 비친 모습때문에 인근을 걸어다니는 사람에게도 맞은편 107동의 모습이 모두 노출되면서 사생활 침해 우려가 심각해지고 있다.

주민들은 해당 상가의 사생활침해를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공사를 허가해준 광주 서구에게도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관할 관청인 서구는 이격거리나 외벽 마감등의 내용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 조치를 취하기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서구 관계자는 “아파트 동 간 이격거리에 관한 법적기준은 존재하지만 그 외에 상가건물과의 거리는 별도의 규정이 없어 강제로 조치할 수 있는 사유가 없다”며 “다만 주민들의 큰 불편이 예상되는만큼 건축주에게서 피해 방지대책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문제가 빨리 해결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주민들은 서구의 중재 하에 ‘외벽을 불투명한 소재로 다시 씌워 피해를 예방하라’고 건축주에 요구했으나 건축주가 마땅한 합의안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강은미 국회의원은 “전면유리 때문에 누군가가 늘 내 집안을 볼 수 있다는 불안감을 일으키는 것은 일종의 사생활침해다”며 “관련법망은 마련되지 않았지만 전국 곳곳에서 통유리 건축물로 인한 피해를 인정하는 판례가 나오고 있다. 관련법이 없다고 해서 그 잣대로만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상식선에서 통유리가 주민들에게 끼칠 수 있는 영향까지 조사하고 피해가 예상될 때에 관청에서 이를 제지할 수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10일 광주 서구 금호동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 들어선 통유리 상가 건물에 세대 내 모습이 반사되고 있다. 독자 제공
김혜인 기자 hyein.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