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이윤선의 남도인문학>60세 정명(正名), 평생의 성과를 갈무리하기 위해 자찬묘지명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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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전남일보]이윤선의 남도인문학>60세 정명(正名), 평생의 성과를 갈무리하기 위해 자찬묘지명을 쓴다.
354.환갑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
“하늘이 내게 주신 명(命)과 스스로 지은 이름을 올바르게 세우기 위해 또 하나의 탯줄 끊어 재갑(再甲)을 시작한다. 이 자찬묘지명은 70세에 수정하고 만약 살아있다면 80세에 다시 수정한다.”
  • 입력 : 2023. 07.13(목) 12:42
17세기 중엽 유원지가 쓴 조부 유성룡 연보 초기(고문서에게 물은 조선 시대 사람들의 삶, 국사편찬위원회, 2009에서 발췌)
나신걸이 아내 신창맹에게 쓴 최초의 한글편지(무덤발굴, 국가문화재 보물), 사진 문화재청
이황이 쓴 할아버지 이계양의 묘갈명(고문서에게 물은 조선 시대 사람들의 삶, 국사편찬위원회, 2009에서 발췌)
이황이 죽기 직전에 쓴 유계(고문서에게 물은 조선 시대 사람들의 삶, 국사편찬위원회, 2009에서 발췌)
자신의 죽음을 예정해두고 장차 묘지에 묻을 말을 스스로 쓰니 자찬묘지명(自銘)이다. 고려시대 김훤(1258~1305)의 글이 가장 오래되었다 하고,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의 글이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좁은 의미에서는 한문 글쓰기의 형식에 제한하여 논하지만, 더욱 확대해 말할 수 있다. 지(誌)와 명(銘)을 합하니 묘지명이다. 전통적으로 지는 산문이고 명은 운문(詩文)이다. 이 장르로 다룰 수 있는 것들이 자일시(自挽詩), 자제문(自祭文),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 자서전(自敍傳) 등인데, 화상자찬(畵像自撰) 즉 그림을 그려 자신의 족적을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자전문학의 범주로 말하면 서문(序文), 연보(年譜), 필기잡록(筆記雜錄) 등으로 확대할 수 있다. 땅 위의 비석에 새기기도 하고 묘지에 묻기도 한다. 신분에 따라 5품 이상은 묘비(墓碑), 그 이하는 묘갈(墓碣), 신분 상관없이 쓴 것이 묘표(墓表)다. 2022년 말에는 조선 성종 시기 무신 나신걸(1461~1524)이 아내에게 썼던 편지가 국가보물로 지정되기도 했다. 아내 신창맹씨의 무덤에 묻힌 편지이니 부찬(夫撰)묘지명이라고나 할까. 그러고 보면 향가의 제망매가나 삼국 시기 목간에 나타난 연서들, 조선시기 가장 호방했던 선비였던 백호 임제의 ‘물곡사(勿哭辭)’ 등도 이 범주에서 다룰 수 있겠다. 버나드 쇼가 백호를 훔쳐보기라도 했던 것일까.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묘비명은 오역(誤譯)의 의도만큼일까, 생각보다 널리 알려져 있다. 『문체명변』에 의하면 죽은 자의 세계(世系), 명자(名字), 작위(爵位), 향리(鄕里), 덕행(德行), 치적(治積), 수년(壽年), 졸(卒), 장(葬)의 날짜와 자손의 대개(大槪)를 기술하는 것이 전통이다. 하지만 형식에 상관없이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살다가 또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핵심이다. 동양의 전통이기도 한 육십갑자 즉 시간의 처음과 끝으로 인식했던 환갑이라는 기점을 맞이하면서 드는 생각들이 주마등을 이룬다.



베이비붐 세대의 마지막 환갑(還甲)



베이비붐 세대의 마지막 연령이랄까. 1963년 계묘생이 2023년 환갑을 맞이했다. ‘베이비붐’ 혹은 ‘베이비부머’는 전쟁 끝나고 태어나 자란 세대를 향한 특별한 호명이다. 역사적 사회적으로 또 나라별로 간격이 들쭉날쭉하긴 하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출산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이차대전 이후 1946년생부터 출산율이 완화되는 1963년생 정도를 말한다. 북미에서는 1946년생부터 1964년생까지 포함한다. 몇 년 전 송가인 신드롬을 세 번 정도 본 지면에 다루면서 ‘묻지마라 갑자생’부터 ‘오팔년 개띠’까지 사회적 의미들을 분석한 바 있다. 송가인 신드롬을 견인하는 주역들이 베이비붐 세대라는 것이 내 주장의 요지였다. 사실상 중간에 끼인 층이 베이비붐 세대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몸 바쳐 자식들 키웠으나 불가피하게 부모들 요양원으로 보내야 했고 자식에게는 버림받은 세대라고나 할까. 그런 세대의 마지막 연령이 환갑에 들어섰다. 돌이켜보니 아픔도 많고 회한도 많다. 환갑(還甲)은 육십갑자의 갑(甲)으로 되돌아온다는 뜻이다. 일흔을 바라본다는 뜻의 망칠(望七), 한주기를 돌았다 해서 주갑(周甲), 화갑(華甲), 일반적으로는 돌아온 갑자(甲子)라 해서 회갑(回甲)이라 한다. 장차 앞으로 더 나아간다는 뜻으로 진갑(進甲)이라고도 쓴다. 대개 자찬묘지명을 환갑에 썼던 것은 환갑을 하나의 죽음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환갑을 맞는 이의 수가 많지 않던 시대의 전통이다. 하지만 지금은 백세 시대다. 운 나쁘면 100세 이상 생존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죽음의 인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묘지명이 쓰여야 할 시대를 맞이했다. 나는 지난 칼럼에서 장자의 오상아(吾喪我)를 아상오(我喪吾)로 바꾸어 읽기를 제안한 바 있다. 장자가 <제물론>에서 말한 ‘오상아(吾喪我)’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나(吾)를 죽여야 올곧은 나(我)를 발견한다는 뜻이었다. 변하지 않는 본질이 있다는 전제가 장자를 비롯한 수많은 동서양 철학가, 종교가들의 주장이었다. 나는 이를 뒤집어 오히려 통고집 나(我)를 죽여 끊임없이 변화하는 나(吾)를 얻으면 족하다고 주장했다. 아상오(我喪吾)는 수년 전부터 여러 차례 본 지면에 소개한 탯줄 자르기, 태반(胎)의 장례와도 다르지 않다. 탯줄을 잘라내지 않으면 내가 어머니로부터 분리되지 못하듯이 내 이전의 세계를 잘라내지 않으면 독립된 개체로 거듭날 수 없다. 나는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이며 그 변화의 곡절마다 기점마다 거듭나고 재생하며 부활한다. 시간에 매듭을 두어 명절(名節)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그 기점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거듭남의 이치다. 작게는 소소한 명절이 그러하며 크게는 육십갑자에 들어서는 환갑이 그러하다. 베이비붐 세대의 마지막 연령이 환갑에 드는 지점에 자찬묘지명을 환기하는 이유다. 이치가 이러하니 베이비붐 세대가 어찌 중간에 끼인 존재만이겠는가. 사실 기왕의 완고한 부모세대와 곤핍한 미래세대를 아우르고 중재할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소명, 이를 알아차리는 이들을 재갑(再甲)이라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창조세계, 또 다른 나를 다시(再) 잉태하는 탯줄을 잘라야 할 시간을 맞이한다.



남도인문학팁

나의 자찬묘지명

집중본(集中本)은 장차 풀어쓰겠으되 광중본(壙中本, 묘지에 넣을 글)만 소략해둔다. 의도치 않게 내 인생이 대략 10년 단위를 기점 삼아 매번 새로운 길을 도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회한도 있고 자긍심도 있다. 고향마을 친구들을 보아하니 1/3쯤 질병이나 사고로 죽고 2/3쯤 남았다. 살아남은 친구들이 자랑스럽다. 내 여기 자찬묘지명을 밝히니, 환갑에 들어선 베이비붐 마지막 연령층, 살아남은 내 벗들에게 도움 되길 바란다. “길은(吉隱) 윤선(允先)의 묘이다. 본은 경주, 계묘년 오월 스무나흗날 유시(酉時)에 진도 지산면 고길리(개골)에서 1898년생 이동희와 자식을 낳지 못했던 이삼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슬하에 아들이 없던 아버지가 씨받이 어머니 강유심을 들여 이룩한 사건이었다. 위로부터 받은 호는 건덕지(乾德地, 乾德池), 고선(鼓仙), 삼오(三悟) 죽오(竹奧)등이며 본명은 장손이었다가 스무 살에 스스로 윤선(允先)으로 개명했다. 생모께서 2017년 오월 스무나흗날 유시, 나의 생월일시에 돌아가시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이를 계기로 평범하지 않은 출생과 버림받음(棄兒)과 구제와 자력갱생 자수성가의 내력을, 나아가 자미원의 궁문 열어 작은 생명 이 땅에 내신 뜻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10세 지설(志說), 이야기에 뜻을 두고 공부했으나 아버지가 돌아가셨기에 헤어나기 어려운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20세 학생(學生), 절 생활, 노동자 생활, 예수교 신앙생활, 농사, 유랑 등 산전수전 겪다가 공직 잡아 주경야독하며 배우고 익혔다. 30세 정진(精進), 운명처럼 아내를 만나 결혼하여 아들 둘을 두고 새로운 학문의 세계를 탐구하며 정진했다. 작은 아이가 2,000년생이므로 3대가 19, 20, 21세기에 걸치는 내력을 갖게 되었다. 40세 극생(剋生), 뒤늦게 박사학위를 마치고 연구원, 교수 등 학교생활에 매진하며 생극(生剋)의 삶을 실천했다. 50세 지천명(知天命), 하늘이 내신 뜻을 알아차리고 HK교수직을 그만두었다. 일본, 베트남, 중국 등지에서 교수 생활하며 인도에서 태평양까지 아시아를 집중탐험하였다. 60세 정명(正名), 환갑을 맞이한 지금, 평생의 성과를 갈무리하기 위해 자찬묘지명을 쓴다. 하늘이 내게 주신 명(命)과 스스로 지은 이름을 올바르게 세우기 위해 또 하나의 탯줄 끊어 재갑(再甲)을 시작한다. 이 자찬묘지명은 70세에 수정하고 만약 살아있다면 80세에 다시 수정한다.”



이윤선<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